기사입력시간 : 2010-01-14

일본의 어이 없는 주장을 살펴본다



10월 28일, 한국 연합통신 인터넷판은 「"대마도는 한국령“ 옛 지도 2점 첫 공개」라고 보도하고, 쓰시마를 한국령으로 한 고지도가 처음으로 공개됐다고 전했다. 이 2점의 고지도는 모리 고안이 1756년 4월 10일에 그린「대마여지도(對馬輿地図)」와, 김정호가 1834년에 제작한「청구도(青邱図)」라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모리 고안의「대마여지도(對馬輿地図)」에는「釜示准朝鮮国地之例則府郷郡令之470里」(쓰시마의 부(府)・향(郷)・군(郡)은 모두 법적으로는 조선국 부산에 준하고 있으며, 거리는 470리(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김정호의「청구도(青邱図)」에는「本隷新羅水路四百七十里在東莱府之東南海中至實聖王七年戊申倭置営於此島」(대마도는 볼래, 신라령에 예속되어 있고, 실성왕(實聖王) 7년까지 동래부(東莱府)에 속한 섬으로, 470리의 거리, 동남쪽 바다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쓰시마는 한국령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고지도를 발견했다는 부산 외국어대학 김 문길 교수의 한문해석에는 오류가 있다. 연합통신 인터넷판에 함께 첨부된 영상은 정밀도가 낮고, 판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470리]([거리는 470리])라고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쓰시마의 부(府)・향(郷)・군(郡)은 모두 법적으로는 조선국 부산에 준하고 있으며」라고도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영상의 정밀도가 낮지만 다시 부기(付記)를 판독해보자, 「대마여지도(對馬輿地図)」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나중에 정정할 예정이지만, 잠시 동안 아래와 같이 판독해 두었다.)



  「所図、輿地図、有郡郷之界分。當對馬図者、上縣・下縣二郡耳。按彼国之□□□、□釜?。亦准朝鮮国地之例、則府郷郡□之四品歟」(지도로 만든 곳의 여지도에는 군향(郡郷)의 경계가 있으며, 이 대마국(對馬国)에는 상현(上縣)과 하현(下縣), 2군(二郡)이 있을 뿐이다. 아마도 이 나라의 □□□는 □부(釜). 또한 조선국지(朝鮮国地)의 예에 준하면 즉, 부(府), 향(郷), 군(郡), □의 4종류라 할 수 있다)



  모리 고안(森幸安)의「대마여지도(對馬輿地図)」에서는 쓰시마섬(対馬島)이 한국령이라고도, 부산에서 쓰시마섬까지의 거리가 470리라고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모리 고안은 1754년, 「대마여지도(對馬輿地図)」를 그리기 전에『일본분야도(日本分野図)』를 작도(作図)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조선으로부터 쓰시마섬까지의 거리가「이 조선의 부산포에서 쓰시마의 완노우라까지 25리(此ノ朝鮮ノ釜山浦ヨリ對馬ノ鰐ノ浦へ二十五里)」라고 명기되어 있다. 이를「470리(470里)」로 한 건 김정호의「청구도(青邱図)」등에서 「수로470리(水路四百七十里)」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일 것이다.



  연합통신은 쓰시마섬을 한국령이라고 한 지도를 발견했다고 전했지만, 이 보도는 전혀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모리 고안은 『일본분야도(日本分野図)』나『일본분토도(日本分土図)』(1755년)에서 쓰시마섬을 일본령으로 하고 있어, 그 일부를 구성하는「대마여지도(對馬輿地図)」에서 쓰시마섬을 조선령으로 삼으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김 문길 교수는 무얼 근거로 쓰미마섬을 한국령이라고 하는 것일까. 「대마여지도(對馬輿地図)」에는 쓰시마섬을 한국령이라고 하는 기술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거짓 보도를 하고 있는 건 김정호의「청구도(青邱図)」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다. 김 문길 교수는 「至實聖王七年戊申倭置営於此島」를 해석해, 이를「실성왕(實聖王) 7년까지 동래부에 속한 섬」이라고 하고 있지만, 원문에는「동래부에 속한 섬」이라는 표현은 없다. 이 김정호가 재인용한「至實聖王七年戊申倭置営於此島」이란 기술은『삼국사기(三国史記)』기술에 유래하며, 이 삼국사기에서는 실성이사금(實聖尼師今) 7년(408년) 봄 2월, 일본이 쓰시마섬에 군대를 주둔시켰다고만 했을 뿐, 쓰시마섬이 「동래부에 속한 섬」이라고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삼국사기(三国史記)』의 기술이 주목받는 건 조선이 쓰시마섬을 침공한 1419년, 변계량이「유대마주서(諭対馬州書)」를 쓰고, 이 안에「對馬為島、隷於慶尚道之鶏林。本是我国之境。載在文籍」(대마도라는 섬을 경상도 계림에 예속했다. 본래 우리나라의 경계라고 문헌에 기재되어 있다)라고 하고 있어, 「문헌에 기재되어 있다(文籍に在り)」라고 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조선군을 이끌고 동정(東征)을 나간 이종무는 패하고, 조선에서는 종주국인 명나라의 허락 없이 군대를 움직인 사실이 명나라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쓰시마정벌은커녕, 조선군은 일본의 반격으로 어쩔 수 없이 철퇴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시마네현이 제정한「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에 대항해 조선국이 마산에서 출항한 6월 19일을「대마도의 날(対馬の日)」로 정하고 있지만, 이는 (일본과의 싸움에서)패한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한편, 1421년 4월, 쓰시마 소우 사다모리(宗貞盛)의 부하인 구리안(仇里安)은 조선으로부터 「쓰시마 경상도에 예속, 고서에 기재(本島の慶尚に隷う、古籍昭然)」라고 문책 당하자,「쓰시마는 일본의 변경으로 쓰시마를 공격하는 건 일본을 공격하는 것과 같다(對馬島、日本の辺境、対馬島を攻めるは、これ本国(日本)を攻めるなり)」라고 반론하고 있다.



  이것이『동국여지승람(東国輿地勝覧)』(1481년)에서는 변계량의「유대마주서(諭対馬州書)」를 답습하는 형태로「舊隷我鶏林。未知何時、為倭人所據」(본래 우리 계림에 예속된다. 알지 못하는 어느새 왜인들을 위한 곳이 됨) 이라고 기재되어, 문헌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채 쓰시마섬은 신라에 예속되어 있었다고 되어버린 것이다.



  이후, 조선에서는『삼국사기(三国史記)』의「신라본기(新羅本紀)」실성이사금(實聖尼師今) 7년 봄 2월조에「王聞倭人於對馬島置営。貯以兵革資粮。以謀襲我」(왕은 왜인이 쓰시마섬에 병영을 설치하고, 병기∙무구(武具)∙자재(資財)∙식량을 비축해 우리나라 습격을 꾀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라고 되어있는 것을 근거로 쓰시마섬은 신라영토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같은『삼국사기(三国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실성이사금(實聖尼師今) 원년 3월조에서는「奈勿王子未斯欣」을 왜(倭)의 인질로 삼았다고 하고 있고, 실성이사금 4년 여름 4월조에서는「왜병이 와서 명활성을 공격하다(倭兵来たりて明活城を攻める)」며, 경주 명활성(明活城)이 왜의 습격을 받은 기술이 있고, 6년 봄 3월조에서는「왜인 동변(東辺)을 침략하다. 여름 6월에 또 다시 남변(南辺)을 침략하다(倭人東辺を侵す。夏六月、また南辺を侵す)」라고 하고 있다. 실성이사금 7년 8월, 왜가 쓰시마섬에 병영을 설치하기 이전부터 신라는 왜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를 김 문길 교수는「至實聖王七年戊申倭置営於此島」를 해석함에 있어「실성왕 7년까지 동래부에 속한 섬」이라고 하고 있지만, 이는 역사를 무시한 작문에 불과하다. 한국의 연합통신은 아무런 근거 없는 자의적 해석을 아무런 비판 없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참고자료>

                                            대마도는 한국 땅' 옛지도 2점 첫 공개


부산외대 김문길 교수, 마산서 공개


대마도(쓰시마.對馬島)가 한국 땅으로 표기된 옛 지도 2점이 처음으로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부산외국대 일본어학부 김문길 교수는 28일 경남 마산문화원에서 열린 `대마도 고지도 전시회'에서 대마도가 한국 땅으로 표기된 `대마여지도(對馬與地道)'와 사본을 전시했다.





대마여지도는 1756년 6월 일본 지리학자인 모리고안(森幸安)이 에도(江戶) 시대 막부의 명을 받아 제작한 뒤 공인을 받은 것으로 현재 원본이 교토 기타노덴만쿠(北野天滿宮)에 소장돼 있는 것을 김 교수가 찾아냈다.



2003년 출간된 모리고안 지도(森幸安地圖)에 수록된 이 지도에는 `부시준조선국지지례칙부향군령지470리(釜示准朝鮮國地之例則府鄕郡令之470里)'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대마도의 부ㆍ향ㆍ군 모든 법칙은 조선국 부산에 준한 것이다. 거리는 470리다'라고 풀이된다.



김 교수는 "지난 여름 일본에서 이 지도를 찾아냈는데 사본으로만 볼 수 있어 아쉬웠지만 일본의 지리학자가 공식적으로 직접 표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1834년에 제작된 청구도 동래부 기장현은 현재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데 김 교수가 직접 확인해 사본으로 햇빛을 보게 됐다.



이 지도에는 `본예신라수로470리재동래부지동남해중지실성왕7년무신왜치영어차도(本隸新羅水路四百七十里在東萊府之東南海中至實聖王7年戊申倭置營於此島)'라고 적혀 있다.



이 글귀는 `대마도는 원래 신라 땅에 예속되어 있고 실성왕 7년까지 동래부에 속한 섬으로 470리 거리 동남쪽 바다에 있다. 무신년에 왜(일본인)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다.



김 교수는 "이 지도는 동래부 기장현을 중심으로 그린 것으로 대마도를 지금의 부산 동래부 기장현에 예속된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오후 마산문화원 초청으로 마산 3.15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동북아에 있어서 대마도 영토문제 연구'를 주제로 특강에서도 한국 땅으로 표기된 대마도의 실체를 알렸다.



김 교수는 "역사를 되짚어 각종 자료와 고증을 통해 대마도가 한국 땅이고 그 땅에 대한 정확한 역사인식을 후세에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대마도의 실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영주 마산문화원장은 "2005년 `대마도의 날'을 조례로 제정한 마산에서 한국 땅으로 표기된 대마도 지도를 처음으로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고토 대마도에 대한 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2010. 1. 14.  독도본부 www.dokdocenter.org



  기사입력시간 : 201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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