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 2007-05-16

'한반도기' 사용 문제점 지적하자

'한반도기' 사용 문제점 지적하자  

 


  영토의식 희석, 회복 노력에 덫 된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관중석에 ‘한반도기’가 장관을 이룰 것 같다. 북한이 부산아시안게임에 참가키로 함에 따라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북한을 응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일부 단체와 모임에서는 북한팀 서포터스를 자청하고 있다. 월드컵의 함성이 채 가시지는 않는 시점이고 북한의 참가로 축제분위기가 무르익는 상황이어서 한반도기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열정적으로 휘날릴 것이고 이 광경은 TV를 통해 국내는 물론 아시아 전역으로 전달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취돼 흔드는 한반도기에 영토에 대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잘못된 영토의식과 자기폄하 말이다.


다른 상징물을 찾자


이 지적이 옳다면 아시안게임에서 한반도기가 응원 소도구로 사용돼서는 안되고 앞으로도 남북한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쓰여지지 않아야 한다. 남북한을 함께 아우르는 다른 상징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반도기는 남북한이 하나된 모습으로 남북한 동질성이나 화합을 상징하는 징표로 유용하게 사용돼 왔다. 그러나 한반도기에 우리의 영토를 한반도로 한정하는 함정이 있고 이를 국내외에 표현-그것도 분명하고 적극적이며 공식적으로-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한반도기는 다음 여러 가지 이유에서 통일된 조국 또는 통일의지를 담아내는 표상으로서 적절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여론으로 형성하고 시대와 사회의 거울을 자임하는 언론이 앞장서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한반도기는 국민들의 의식 속에 우리 영토를 한반도로 국한하게 하고 만주(간도)와 연해주 등 엄연한 우리 영토이거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지역에 대한 회복의지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반도기가 처음 등장한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신문과 방송은 이에 대해 한번도 지적한 적이 없다. 심지어 한반도기가 남북한을 상징하는 상징물로서 매우 적절하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독자에 앞서 앞을 내다보고 비판의 보루가 되어야 할 언론이 한반도기에 담긴 함정을 읽어내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오류를 시정할 마지막 희망마저 잃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영토의식 희석


한반도기는 우리의 영토의식을 희석시키는 것 외에도 실질적으로 만주(간도)와 연해주에 대한 영토 회복 노력에 의외의 덫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국제 영유권 다툼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국민의 영토의식이나 영토 지배의지에 심대한 귀책 사유가 될 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실효적 지배에 대한 이의제기를 간접적인 형식으로 포기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 신문 방송은 이제부터라도 한반도기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새로운 상징물을 찾도록 여론을 주도해야 하며 무신경한 영토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기회에 걸핏하면 스스로 ‘한반도’ 또는 ‘약소국’이라 지칭하는 버릇도 고쳐야 한다. 이같은 말들은 스스로를 폄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인구, GDP 등의 기준으로 봤을 때도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가까운 장래에 꼭 회복해야 할 우리의 영토를 감안할 때 우리는 결코 작은 땅덩어리의 나라가 아님을 자각해야 한다.


한 나라 국민의 영토개념은 그 국민의 잠재 의식 속 공간개념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중국인과 미국인들이 갖는 생활 공간으로서의 영토개념과 한국인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우리 국민을 한반도라는 한정된 공간에 가두지 말자. 우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라도 언론이 나서 한반도기의 문제점을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차제에 우리의 흐리멍텅한 북방영토에 대한 영토의식을 바로 잡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자기폄하 태도에서 탈피해야 한다.


자기 폄하태도 탈피하길


한반도기는 우리의 북방영토를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기에 그려진 한반도에는 엄연한 우리 영토인 만주의 북간도와 우리가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연해주를 배제하고 있다. 통일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남북 쌍방이 잃었던 남과 북의 지역을 하나로 합해 한반도를 상정했다면, 이는 불완전한 상징물에 그치고 만다.


진정한 남북의 통일을 상징하려 한다면 분단으로 잃었던 북방영토를 그림에 추가해야 한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국제 분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또한 우리 국민들이 수십년간 북방영토를 잊은 채 지내왔고 영유권을 주장한다고 해서 당장 실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허황된 주장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잠깐 시각을 바꿔 보자. 최근 스페인과 모로코가 지중해의 작은 섬을 놓고 군대 까지 동원했던 영유권 분쟁은 아무리 사소한 영토라 하더라도 나라와 국민에게 있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깨워주고 있다. 페레힐이라는 작은 섬을 놓고 양국간 벌어졌던 긴장은 세계 주요외신으로 수일간 타전됐으며 세계 각국에 영토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동해안의 작은바위섬 독도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돌이켜보면 얼마나 영토가 중요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하물며 2만 1,000㎢에서 최대 4만㎢(남한 땅의 2분의 1)에 이르는 만주의 간도지역은 넓이도 넓이려니와 비옥한 토양으로 인해 값어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곳이 우리 조상 대대로 숨결이 스며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우리 영토가 확실하지만 지금은 러시아 영유로 돼 있는 두만강 하류의 녹둔도가 서울대 지리교육과 이기석 교수에 의해 탐사됐는데, 이를 계기로 우리의 북방영토에 대한 관심이 환기된 적 있다. 퍽 다행한 일이다.


간도와 연해주 등 우리의 북방영토로 통칭되는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우리의 영토임을 입증하는 많은 기록과 물증이 있다. 녹둔도를 탐사한 이기석 교수는 이곳에서 20세기 초까지 한국인이 거주했다는 사실을 밝혀줄 깨진 놋쇠밭솥과 수레바뀌 등의 유물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간도는 유사이래 우리 민족이 거주하면서 현실적으로 우리 영토로 편입돼 있었으나 일제가 1909년 청과 간도협약을 맺으면서 청에 넘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간도(북간도)는 1712년 조선과 청이 영토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면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당시 조선과 청은 압록강과 토문강을 국경선으로 한다는 데 합의했으나 나중에 청은 토문강이 두만강이라 주장하며 간도의 영유권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조선은 이 땅이 역사상 조선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우리 민족이 개간해 살고 있었던 점을 들어 청에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실제로 1881년 고종은 어윤중을 서북경략사로 이곳에 보내어 북방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다시 선언함은 물론 주민들에게 조세를 받는 등 실질적인 지배가 지속되고 있음을 과시했다.


연해주도 국제법적으로 우리가 영유권을 제기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이 곳은 러시아가 1860년 청과 베이징조약을 맺고 청으로부터 할양받은 곳이지만 국제법상으로 청이 이 지역에 대해 러시아에 할양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왜냐하면 베이징조약 이전인 1712년 조선과 청이 조약을 맺을 때 연해주를 양국이 일방적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지역으로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해주를 청이 러시아에 할양한 것은 국제법 위반으로 무효라는 것이다.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연해주는 제쳐 두더라도 간도와 녹둔도 등의 북방영토는 우리의 땅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가 영토를 표현할 때는 이 곳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 그것도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영토의 그림을 채택하고자 할 때는 더욱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영토를 보존하는 방법에는 실효적 지배와 영유권 주장의 지속적인 표현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실효적 지배와 영유권의 지속적인 주장은 못할망정 세계인이 다 보고 있는 국제적인 행사에 영토를 스스로 방기하는 그림을 상징물로 삼는 행위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반도기는 국민의 영토의식을 왜곡한다.


도덕경에 ‘無恒産이면 無恒心’이란 말이 있다. 먹고 살만큼의 자산이 없으면 마음의 평화도 얻기 어렵다는 뜻이다. 똑같은 이치가 영토에도 적용된다. 영토가 없거나 위태로우면 국민의 평화와 안녕을 기약하기 어렵다. 그 좋은 예가 50여년간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아랍세계와의 갈등이 아닌가. 시오니즘은 20세기 초반이나 지금이나 가장 강력한 이스라엘 민족의 지주가 되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를 위하여


그만큼 영토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단위의 공간적 정신적 울타리이다. 국가가 형성되기 위해서 국민 다음으로 핵심적 요소가 영토이고 영토는 평화와 안녕을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다. 더욱이 그것은 국민의 물질적 공간임과 동시에 정신적인 공간, 나아가 관념적인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한 나라 문화와 사상의 근저를 이룬다. 그리고 그것은 생활 자체가 된다. 독도에 대한 국민들의 열렬한 관심과 애정이 이를 입증한다. 독도가 어찌 됐든 나의 일상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가령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해서 지금 여기 나의 삶이 위협받거나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일본의 망발에 나의 일처럼 관심을 갖고 노여워 한다.


영토란 무릇 그런 것이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것 같고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정신세계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우리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마치 지난 월드컵 때 내남없이 온 국민이 열광했던 것처럼 영토란 까닭 없이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원초적인 둥지’인 것이다.


이제 한반도기가 국민들의 잠재의식 속에 영토의지를 흐리게 하는 이유가 명백해졌다. 무엇보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통일된 조국의 강토를 한반도로 한정하도록 만드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신문과 방송이 나서서 한반도기의 맹점을 직시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반도기에 대한 재검토부터


◆한반도기 문제를 계기로 북방영토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자.


한반도기가 영토에 관한 국제관계를 고려할 때 적절한 상징물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발생할 시 중국이나 러시아가 한반도기를 제시하며 한국이 이 곳을 자신의 영토로서 여기지 않았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한반도기가 법적 구속력을 지니지 않는 단지 남북한 화합의 상징물이라고 반박할 것이지만 만약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판례의 전제가 될 때는 이런 행위가 국제법상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북방영토를 연구하고 영유권을 위한 제반 역사적 자료를 축적하고 있는 백산학회에 따르면 국제법상 영토 주장의 시효기간은 50년에서 100년이라고 한다. 간도협약이 맺어진지 2009년이면 100년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간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기간은 불과 6년여 밖에 남지 않았다.


따라서 한반도기를 계기로 잠자고 있는 북방영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하고 정부로 하여금 간도가 우리 영토임을 공식적으로 주장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분단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고려해 영유권 주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유권 주장의 실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언젠가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당당히 영유권 주장을 제기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실효적 지배에 대항해 이곳이 영유권 분쟁대상 지역임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 그 전에 해야할 일이 바로 한반도기에 대한 재검토이다.


이규화(디지털타임스 디바이스·방송콘텐츠부장)

  2002.09 : 381호 : 39-43    신문과 방송  

  기사입력시간 : 2007-05-16

이 뉴스클리핑은 http://dokdocenter.org/dokdo_news/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