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 2007-04-16

[칼럼] 대마도의 한식 산성

최근 대마도(對馬島)의 입국 절차가 까다롭다. 입국심사대의 “최근의 정세 때문”이라는 안내문은 독도 문제 때문임을 짐작하게 한다. 대마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인 이키섬(壹岐島)은 73Km인 반면 부산은 불과 49Km로서 한국이 훨씬 가깝다. 역사 유적이나 출토 유물도 한국 역사와 더 가깝다. 대마도의 미네마치(峰町)에서 출토된 세형동검은 이 지역이 고조선 문화권이었음을 말해 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왜(倭)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는 독로국(瀆盧國)은 변한(弁韓) 소속인데 오늘날의 대마도인 것으로 학계에서는 해석한다.



대마도 미쓰시마마치(美津島町) 성산(城山) 꼭대기의 금전성(金田城)은 더욱 명백한 한국 역사 유적이다. 안내책자에는 “백촌강(白村江) 해전(663)에서 패배한 덴지(天智) 천황이 나라를 지키는 최전선에 쌓은 일본 최고(最古)의 성적(城跡)”이라고 적혀 있지만 한식(韓式) 산성이기 때문이다. 덴지 천황은 2만7000명에 달하는 백제 구원군을 보냈고 그 결과 663년 음력 8월 백제․왜 연합군과 나당 연합군이 지금의 금강 하구 또는 동진강 하구로 추정되는 백촌강에서 맞붙는다. 대해전(大海戰) 결과 나당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일본서기’ 덴지 천황 조는 일본의 국인(國人)들이 “백제의 이름은 오늘로써 끊어졌다. 조상의 분묘가 있는 곳을 어찌 또 갈 수 있겠느냐”라고 한탄했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지배층들에게 백제 지역은 ‘조상의 분묘가 있는 곳’이었다.



그 직후 일본 여러 곳에 한식(韓式) 산성이 축성된다. 대마도에도 금전성 외에 이즈하라(嚴原)의 유명산(有明山) 꼭대기에도 한식 산성의 흔적이 있다. 일본식 산성과는 다른 한식 산성은 천지 천황이 아니라 백제계 유민들이 대거 이주해 쌓은 것임을 말해 준다.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예상한 방어선인데, 대마도뿐만 아니라 이키섬과 규슈(九州), 그리고 당시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奈良) 지역에도 존재한다. 현지에 가서 한식 산성, 또는 조선식 산성을 물으면 대개 알고 있다. 유적은 그 어느 문헌 못지않게 왜곡되지 않은 과거 역사의 진실을 들려 준다.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  [조선일보 2006-05-2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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