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 2007-04-16

대마도 종씨(宗氏)의 유래 전설

울산과 대마도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 아니었다. 우리의 울산에는 기이하게도 대마도에 관한 전설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것은 다름 아닌 두왕동의 대마도주등(對馬島主嶝)에 관한 전설이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울산의 두왕동은 대마도주의 시조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두왕동이라는 지명도 대마도주의 탄생과 관련 있는 말이라고 향토사학자 이유수씨는 설명하고 있다. 즉 대마도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여 처음에는 '도왕동(島王洞)' 또는 "도왕동(道王洞)'이라 했다가 임금왕 자를 쓰는 것은 왕을 거역한다 하여 왕성할 '왕(旺)'자로 고치고 섬 '도(島)'자 또는 길 '도(道)'자 대신에 말 '두(斗)'자를 사용하여 오늘의 '두왕동(斗旺洞)'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네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1910년경에 일본사람들이 "배미골이 있는냐?"며 이 근처를 찾아온 일이 있고, 또 어떤 때는 비석도 만들어 찾아오곤 했으나 묘지를 찾지 못하고 물 속으로 던지고는 되돌아갔다고도 한다. 그리고 향토사가 강길부씨의 말을 빌리면, 그 대마도주의 시조 분묘에는 팔괘형(八卦形)의 석조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묘석을 1945년 해방 후 청량지서의 돌담을 쌓을 때 빼어 써버렸기 때문에 현재는 팔괘현의 석조물이 없고 단지 평장묘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강길부, 『향토와 지명』, 정음사, 1985년)



이러한 전설이 어찌하여 우리 울산에 전하여 오는 것일까?  실제로 대마도주의 성씨인 종씨(宗氏: 소우씨)는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외자 성씨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성씨는 일본보다 우리나라에 더 가까운 편이다. 과연 이 소우씨의 뿌리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일설에 의하면 대대로 대마도를 통치하였던 종씨 일가는 일본천황의 핏줄을 이어받은 자라기도 하고, 또 원씨일족(源氏一族)들에 의해 멸망당한 평씨일족(平氏一族)의 후손이라고 전하여 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마도주인 종씨에게는 후자인 평씨 일족의 후예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다. 그 단적인 예로서 1643년(인조21년)에 일본으로 갔던 조선통신사의 기록에서 엿볼 수 있다. 즉 우리측의 사신이 대마도주에게 묻기를 "종씨가 대대로 대마도를 지켰으니 태수의 본성이 원래 종씨입니까? 그리고 지금 몇 대나 되었습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도주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의 성은 본래 평씨(平氏)였는데 남의 부하로 있을 때 그 주장(主將)의 성이 종씨여서 이 때문에 종(宗)자를 붙인 것입니다. 그리고 대마도를 지킨 것은 이제 23대가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신이 또 묻기를 "당의 아버지 의지(議智)가 보검을 가졌다는데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까?" 하니 도주가 말하기를 "아버지가 보검을 가지고 있어서 가보로 삼았는데 지난해에 엄만(嚴萬)에게 전했습니다."라 했다는 것이다(『계미동사일기』7월7일자 참조)



이상의 야마토의 내용을 쫓아서 정리하여 간다면, 당시 우리측의 통신사와 야마코를 나눈 대마도주가 의지의 아들이라면 그의 이름은 의성(義成)임에 틀림없다. 그가 23대째 대마도주를 하고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보아, 아마 그는 그이 선조 종중상(宗重尙)이 1245년 대마도의 실력자 아비류(阿比留)씨족을 토벌한 것까지 넣어서 계산한 것 같다.



그런데 그의 말을 빌리면 자신의 씨족 뿌리는 한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즉 그는 그가 사용하고 있는 종씨는 원래는 고대에 있어서 대표적인 귀족의 집안이었던 평씨(平氏)였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훗날 자신이 섬겼던 주군으로부터 종씨라는 성을 하사받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학문적 결과는 그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종씨의 시조가 1245년 대마도의 권력자 아비류씨족을 토벌한 종중상이라는 점은 역사가들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이 성씨의 뿌리가 평씨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종씨의 시조 종중상의 본명은 코레무네 시게히사(惟宗重尙)였다고 보고 있다. 즉 그이 본래 성은 평씨가 아니라 '코레무네(惟宗)라는 것이다. 초대 시조인 시게히사는 규슈의 행정관이었던 '대재부(大宰府)의 관료를 역임하면서 대마도를 정벌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종씨(宗氏)라 함은 '코레무네(惟宗)'의 첫 글자인 유(惟)자를 생략한 결과 생겨난 씨족의 명칭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본다면 일단 대마도의 도주 종씨는 그의 선조가 울산의 두왕동에서 유래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사실과는 관계없이 대마도주인 종씨의 시조가 울산의 두왕동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왜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정확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현대의 나로서는 앞으로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가지고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역사학계에 알려진 바대로 종씨의 시조가 감추어진 의미를 찾는 작업인 동시에,민중의 의식 속에 융해되어 있는 일본에 대한 인식을 규명해 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무튼 우리의 울산에 대마도주의 시조탄생 설화가 전하여 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의 흥미를 끌기엔 충분했다."(노성환『일본 속의 한국』에서 발췌)


김화홍(대마도도 한국땅, 知와 사랑)

  기사입력시간 : 2007-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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