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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카쿠제도(尖閣諸島)도 다케시마(독도)도 일본령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상)

(일본의)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중국어선 충돌사건으로 센카쿠제도(댜오위다오=釣魚島)의 영유권문제가 클로즈 업 됐다. 일본에서는 언론도 정치가도 좌파, 우파 모두 센카쿠제도가 일본령이라는 사실을 당연시하는 통일된 논조다.

그러나 이 논거를 검토하면 다케시마(독도)문제와 유사한 기만성을 확인할 수 있다. 떳떳하게 센카쿠제도와 다케시마(독도)를 일본령이라 주장하기에는 저항감이 있다. 

먼저 용어에 대해 말해 두겠다. 여기서는 센카쿠(尖閣), 다케시마(독도)로, 일본에서 쓰이고 있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단순히 본 기사가 일본에서 발표되고, 일본인을 주요 독자로 하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일본정부가 호칭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중국정부와 한국정부가 호칭하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일본정부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일본에게 센카쿠제도가 자국령이라는 사실은 자명한 일이 아니었다. 메이지정부는 센카쿠제도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판정한 후, 1895년 1월 14일의 각의결정으로 오키나와현에 편입했다. 이는 국제법상의 무주지 선점(無主地先占)을 토대로 한 행위다.

이 경위는 한국이 실효지배하는 다케시마(독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케시마(독도)에 대해서도 메이지정부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판정한 후, 1905년 1월 28일의 각의결정으로 시마네현에 편입했다.

다만 외무성 웹사이트의 「다케시마(독도)문제」에서는 무주지 선점을 전면에 내놓고 있지 않다. 여기서는 다케시마(독도)를 「우리나라(일본) 고유영토」라 주장하고, 다케시마(독도)영유의 기원을 에도시대로 하고 있다. 아래와 같은 역사적 경위를 언급하고 있다.

「1618년, 돗토리번(鳥取藩) 호우키국(伯耆国) 요나고(米子)의 상인(町人) 오오야 진키치(大谷甚吉), 무라카와 이치베에(村川市兵衛)는 돗토리번의 번주를 통해 막부로부터 울릉도(당시의「竹島」)로의 도해면허(渡海免許)를 받았습니다.」

 이후, 다케시마(독도)는 두 집안의 어업거점으로 이용됐다. 그리고 일본인의 해외로의 도항을 금지한 쇄국령 이후에도 다케시마(독도)로의 도항이 금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막부가 다케시마(독도)를 자국령으로 인식했었다는 근거로 한다.

그러나 위의 주장은 의문이 든다. 본래 자국령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막부에 도해면허를 요청할 필요는 없다. 도해면허란 기본적으로 외국에 도항하기 위한 허가장이다.

쇄국 후에도 다케시마(독도)로의 도항이 금지되지 않았다는 것도 자국령 인식과는 직결되지 않는다. 쇄국을 해외와의 교류를 끊는 정책이라 보는 견해는 전시대의 것이다. 실태는 막부에 의한 고도의 외교∙통상에 대한 관리정책이었다. 본래 「쇄국」이라는 용어자체가 후세의 것으로 막부의 정책담당자에게 쇄국이라는 인식은 없었다. 막부가 특정인물에 특정지역으로의 도항을 허가하는 건 「쇄국」정책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1905년 1월 28일의 각의결정으로 다케시마(독도)를 편입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 각의결정에서는 아래와 같이 무주지 선점을 전제로 한 표현으로 되어있다.

「타국에서 이를 점령했다고 인정될 만한 형적이 없다(他国ニ於テ之ヲ占領シタリト認ムベキ形跡ナク)」
  「국제법상 점령 사실로 인정해 이를 일본 소속을 한다(国際法上占領ノ事実アルモノト認メ之ヲ本邦所属トシ)」

이들 무주지 선점을 통한 영유경위에 대해 아래의 2가지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무주지 선점론의 식민지주의적 성격이다. 무주지 선점론은 어느 나라의 것도 아닌 토지는 먼저 지배한 나라의 것이 된다는 이론이다. 이는 대항해시대 이후 활발해진 유럽국들에 의한 식민지획득경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과거의 유물이다. 현실적으로 남극대륙과 달 표면 등, 현재에는 무주지 선점에 반하는 결정이 이뤄지고 있어 그 생각이 지지되고 있다.

무주지 선점을 근거로 한 자국령이라 주장하는 건 「우리나라(일본)는 제국주의적 팽창국가입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는 「항구적인 평화를 염원하고 인간상호의 관계를 지배하는 숭고한 이상을 깊이 자각한다」는 일본국 헌법정신에 반한다. 무주지 선점을 제기하는 건 평화국가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무성은 다케시마(독도)에서는 에도시대라는 경위를 내놓아 얼버무려 넘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PJ뉴스 2010.10.09

2010.10.13. 독도본부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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