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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첫 '독도는 한국땅' 팻말 세웠다

1947년 8월 과도정부·조선산악회 공동 '독도 학술조사대' 구성
부대장인 조선일보 홍종인 국장, 학술조사대 '공식 보고서' 작성
紙面으로 독도 알리기 앞장서… 송석하 등 전문가들도 대거 참여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한국현대사)는 새 저서 '독도 1947'(돌베개)에서 1947년 8월 남조선 과도정부와 조선산악회가 공동으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대'를 구성, 독도를 현지 답사한 사진과 자료도 공개했다.

1947년 8월 조선산악회 회장인 민속학자 송석하가 이끈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대'는 조선일보 홍종인 편집국장이 부대장을 맡았고 국어학자 방종현, 고고학자 김원용, '나비 박사' 석주명, 한학자 임창순, 역사학자 신석호 등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80여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학술조사대 파견은 민세 안재홍이 행정 책임자인 민정장관으로 있던 과도정부의 공식 사업이었다. 조사대는 1947년 8월 20일 독도를 찾아 동·식물 표본 채집, 목측(目測)에 의한 측량, 섬의 지형 파악, 사진 촬영 등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독도의 실태를 조사했다.


 ▲ 조선산악회가 1947년 8월 20일 독도에 설치한 영토팻말. /정병준 교수 제공

당시 조선일보는 '울릉도 학술답사대 독도 조사, 의외의 해구(海狗) 발견'(1947년 8월 23일자), '절해의 울릉도'(1947년 9월 4일자) 등 독도 관련 기사를 잇달아 실어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홍종인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과도정부 준기관지인 '한성일보'에 '울릉도 학술조사대 보고기'를 네 차례 연재했다. 조선산악회 부회장이었던 홍종인의 보고서는 학술조사대의 최종 보고서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또 1948년 6월 17일자 조선일보에는 '동해의 내 국토-슬프다 유혈의 기록'이란 제목 아래 1년 전 답사 회고기를 쓰기도 했다.

울릉도·독도 현지 조사는 이후 강연회, 전람회 개최, 조사보고서 작성과 신문 보도, 자료 공개로 이어져 '울릉도·독도 알기' 붐이 일었다. 조선산악회는 1947년 9월부터 홍종인·방종현·김원용·석주명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보고 강연회를 열었다. 그해 11월엔 서울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4층 갤러리에서 보고전람회를 개최했고 대구와 부산, 울릉도에서도 전람회가 열렸다.

▲ 조선산악회 울릉도·독도학술조사대. 가운데 와이셔츠차림에 넥타이 맨 이는 홍종인 조선일보 편집국장, 그 오른쪽은 방종현 서울대 교수다.

정병준 교수가 공개한 자료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학술조사대가 과도정부와 조선산악회 공동명의로 세운 영토 팻말 2개를 찍은 사진이다. 학술조사대가 1947년 8월 20일 독도의 동쪽 섬 동도(東島)에 세운 이 팻말에는 오른쪽엔 '조선 울릉도 남면 독도', 왼쪽엔 '울릉도, 독도 학술조사대 기념'이라고 한자로 썼다. 이 영토 팻말은 해방 이후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표시한 최초의 시설물이다. 학술조사대가 독도에 영토 팻말을 세웠다는 사실은 알려졌으나 사진은 소개된 적이 없다.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 수립되기도 전에 영토 팻말을 세운 것은 당시 한국 사회가 독도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2010.08.13. 독도본부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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