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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현판 글씨는 원래 더 날카로웠다

문화재청, 원형복원 추진

현재의 숭례문 현판〈왼쪽〉과 19세기 후반에 만들어 진 지덕사 소장 숭례문 현판의 탁본.‘ 崇’자와‘禮’ 자의 삐침과 폭 등에서 변형된 부분〈점선 안〉이 있음 을 알 수 있다.

  지난 2월 화재 당시 땅에 떨어져 훼손됐던 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남대문)의 현판이 1950년대 보수 당시 글자 일부가 원래의 모습과는 달리 변형됐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최근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옛 모습대로 복원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화재 현장에서 현판을 수습한 뒤 보존 처리 작업을 위해 해체 분석했고, 앞판과 뒤판이 수십 개의 조각으로 이뤄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원래는 하나의 나무 부재였던 앞판이 6·25전쟁 당시 포탄 파편 등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훼손되자, 나무판을 이용해 구멍이 뚫린 부분을 땜질식으로 수리했던 것이다. 그 결과 모두 38조각의 나무조각이 맞춰져 지금의 현판으로 보수됐다. 또 뒷면의 보강 덧판은 앞판을 고정하고 보강하기 위해 15조각의 판재를 가로로 잇대 붙여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 '보수' 과정에서 글자 모양까지 달라졌다는 것이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사당인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지덕사(至德祠) 소장 숭례문 현판 탁본자료와 일제시대에 촬영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사진을 입수해 현재 현판과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양녕대군의 후손인 이승보(李承輔·1814~1881)가 1865~1871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지덕사 탁본은 글자와 현판의 나뭇결까지 그대로 찍혀 있는 진본(眞本)이자 결정적 단서였다. 이승보는 고종 때 경복궁 영건도감(營建都監·조선시대 궁전이나 성곽의 건축 공사를 담당했던 임시 관서) 제조(提調·기술 계통의 관아를 통솔하던 관직)와 이조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탁본을 현재의 현판과 대조한 결과 '崇(숭)'자와 '禮(예)'자에서 개별 획 삐침의 형태, 폭, 연결 등에서 일부 달라진 부분이 확인됐다.〈사진 참조〉 문화재청은 "앞으로 더 많은 고증자료를 확보하고,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刻字匠)과 서예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완벽한 수리로 원래 자리에 현액(懸額·글자를 판에 새겨 문 위에 달아놓음)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조선일보 2008.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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