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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600년 타임캡슐’ 베일 벗었다

광화문 육조거리 조선 초-중기-구한말 3개 지층 드러나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이순신장군 동산 뒤편에 모습을 드러낸 육조거리.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 뒤편 광화문광장 조성 공사 현장. 지난달 19일 시굴(시험발굴) 결과 조선시대 주작대로인 육조거리 흔적이 발견돼 본격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14세기 조선 건국 당시의 최초 육조거리부터 20세기 초 최후 거리까지 온전한 모습이 드러났다.

서울 중심에서 조선 왕조 600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타임캡슐’이 베일을 벗은 것이다. 그동안 육조거리는 19세기 이후의 문헌과 지도로만 알려졌다.

    1890년 무렵 경복궁의 남쪽 정문인 광화문과 육조거리.
1395년 정도전이 태조의 명을 받고 조성한 거리로, 경복궁 광화문 좌우에 의정부, 한성부, 병조, 형조 등 관아가 배치됐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관아가 화재 피해를 입었으나 19세기 대원군 때 본격 재건됐다. 일제강점기 ‘광화문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유적의 지층은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강문화재연구원(원장 신숙정) 발굴단은 거리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층이 구분된 것으로 봤다. 유적을 파들어가자 조선 초∼말기의 도자기 파편이 발견됐다. 도자기와 조개, 뼈 등의 폐기물로 흙길을 다졌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단은 흙길을 다질 때 사용한 시대별 도자기 파편을 근거로 육조거리 층을 19∼20세기(구한말∼일제강점기), 16∼18세기(임진왜란 전후), 14∼15세기(조선 건국 시기)로 구분했다.

최초의 육조거리로 보이는 유적은 지하 3m에 있었다. 이 바닥면을 디디자 600년 전 시간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 1.5m가량 위에는 16∼1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생각되는 바닥면이 있었다.

서울시는 이곳에 광화문광장의 하나인 지하 광장을 조성하며, 광화문광장에 육조거리를 재현할 계획을 지니고 있다. 이번에 육조거리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만큼 그 원형을 보존해 관람할 수 있게 한다면 광화문광장의 역사적 가치도 더 높아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동아일보  2008.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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