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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침략을 실효 지배로 우김질하는 일본


        <1935년 12월 23일, 하마다시 자치연합회가 세운 아이즈야 하치에몬의 송덕비>

1618년, 일본 막부는 1430년부터 내려진 조선정부의 울릉도 쇄환정책을 틈타, 요나고 지역의 오오야 진키치와 무라카와 이치베에에게 울릉도 도항을 허가한다.

이들은 당시 일본에서 ‘다케시마(竹島)’로 불렸던 ‘울릉도’로 건너가 전복을 채취하고 대나무 등 희귀나무 등을 벌채했고, 울릉도로 가는 도중의 기항지 및 어로지로 독도(일본명⋅마츠시마)를 이용하기 시작. 결국 1661년경부터는 막부의 정식허가를 얻어 독도로도 건너가게 된다.

현재 일본은 일본 막부의 정식허가를 얻어 울릉도와 독도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위의 내용을 일본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역사적인 실효 지배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조선의 쇄환정책으로 조선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없는 틈을 타 빈집에 들어와 버젓이 살림을 차리고 주인행세를 하던 일본은 1693년, 울릉도에서 안용복 일행과 마주치게 된다. 결국 이를 계기로 조선정부와 에도막부는 외교교섭을 벌이고, 에도막부는 1696년에 울릉도가 조선영토임을 인정하고 일본인의 울릉도로의 도항을 금지한다.

그러나 일본 중앙정부인 에도막부가 울릉도에 대한 도항금지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호우키국(지금의 돗토리현)과 오키섬 주민들은 일본정부의 눈을 피해 울릉도와 독도로 건너가 조업했다. 이 대표적인 사건이 “아이즈야 하치에몬 사건”이라 하겠다.

현재 일본 시마네현 홈페이지에 게재되고 있는 ‘아이즈야 하치에몬(会津屋八右衛門)’이란 인물에 대한 일본 측 설명을 그대로 인용해보겠다.

지금부터 약 170년 정도 전에 마츠바라(松原)의 회선도매상(廻船問屋 *주1)인 아이즈야 하치에몬은 가운을 일으키고 궁핍했던 하마다번(浜田藩)의 재정에 기여하기위해 바깥 바다로 어떻게든 활로를 개척하겠다는 마음에 하마다번의 회계를 담당했던(勘定方 *주2) 하시모토(橋本三兵衛) 등과 함께 당시 금지되었던 해외밀항을 계획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케시마(竹島=현재의 울릉도)에서 커다란 대나무와 희귀한 나무, 큰 전복 등을 가져왔지만, 점차 탄력을 받아 조선과 중국 등과의 교역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이로 인해 하치에몬은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하마다번에도 막대한 헌상금을 납부해 하마다번의 재정확립에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1836년 여름 사츠마번(薩摩藩)의 밀무역을 내정(内定)하기 위해 산음지역의 길을 지나던 마미야 린조(間宮林蔵)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오사카 니시마치(西町)의 봉행(奉行 *주3)인 야베 사다노리(矢部駿河守定謙)의 탐색으로 적발되어 하시모토(橋本三兵衛)와 함께 잡혔습니다.

당시 금지되어있던 해외밀무역을 행한 일이 규칙에 어긋난다는 의미에서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마다(浜田)지역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한 일로, 쇼와초기 이후 [향토 하마다를 위해 힘을 쓴 사람] [대외무역의 선구자] 등으로 평가되게 되었고 마을을 사랑하고 스스로의 지혜와 행동력과 책임으로 멋진 마을을 만드는 사람들을 육성하는 운동인 [하치에몬 운동]으로 확산됐습니다.

일본정부의 추궁에 국가의 금기를 깬 아이즈야는 “마츠시마(松島=독도)로 건너가기 위해 죽도(=울릉도)로 도해했다”고 진술해 벌을 면하려 했지만 결국 처형당하고 만다.

현재 일본은 자국 정부의 공식 명령인 “울릉도 도해금지령”에 대해 “울릉도에 대한 도해를 금지한 것일 뿐, 마츠시마(독도)에 대한 도해를 금지한다고는 하지 않았다”며, 당시 일본정부가 독도에 대한 일본영유권을 포기한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이즈야 하치에몬’ 사건은 일본이 독도에 대한 실효 지배를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시마네현이 올해 6월부터 내년 2월까지 총 9회에 걸쳐 진행하고 있는 “다케시마(독도)문제를 배우는 강좌” 중, 오는 12월 14일로 예정되어 있는 제7회 “다케시마(독도)문제를 배우는 강좌”의 주제를 [죽도일건-아이즈야 하치에몬에 대해]로 삼고 있는 사실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즉, 당시 막부가 조선과의 외교교섭을 통해 울릉도를 조선에게 넘겨줬지만, 이는 원주인인 조선에게 넘겨줬다기보다는 당시 외교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조선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때문에 울릉도를 거점으로 독도를 기항지 및 어로지로 삼아 조업했던 상기 어부들(오오야, 무라카와, 아이즈야 등)의 불법적인 독도침탈을 실효 지배라고 우김질하는 것이다.    

위에서 들었던 시마네현 홈페이지에 게재되고 있는 ‘아이즈야 하치에몬’에 대한 인물상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향토 하마다를 위해 힘을 쓴 사람] [대외무역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인물로, “송덕비”까지 세워져 있다.

일본의 독도강탈 책동과 역사왜곡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우리 모두 정신을 바싹 차리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注>
주1: 에도시대, 화주와 선주 사이에서 짐을 취급했던 업자.
주2: 에도시대, 막부와 각 번에서 금전출납을 담당했던 관리.
주3: 주군 등의 명령을 받들어 집행하는 것. 또는 집행하는 사람을 말함.

*2008.07.04 독도본부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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