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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마도 되찾기 운동 대마도가 우리땅인 이유(3)

고려시대의 대마도

1389년 고려는 대마도에서 왜구를 정벌하여 우리영토임을 재확인 했다.

일본의 천태종 승려 현진의 저서 "산가요략기"에서 현진은 대마도를 가리켜 ' 대마도는 고려의 목이다"라고 했다.

또한 고려는 대마도에 만호 즉 지방관을 파견하여 다스렸다. 그러니까 대마도는 고려시대 부터 우리의 영토임이 밝혀진 사실이다.

심지어 일본의 승려까지도 대마도가 고려의 목이라고 했으니 대마도는 고려의 영토임이 확실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근대에 와서 역사연구법에 의한 한,일의 역사 연구는 그 시작이 끈질긴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먼저 시작됐고 불행하게도 일본인들은 그들의 역사서술 과정에서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킨 것이다.

이같은 자세는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 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를 전술의 방편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때 부터 오류를 범한 일본인들의 한국관은 패전 후 현재까지도 시정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대한해협과 일본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대하면서 3세기 이후부터 두 지역의 해상 교통은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행해졌다.

그러나 우리와 일본의 관계는 늘 가깝고도 먼이웃 이라는 개념이 지금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굳이 필자가 여기에서 지적하지 않아도 경제의 상태와 민족의 성격, 문화의 차이와 성질 등에서 파생한 것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일본은 늘 우리에게 노략질을 일삼은 섬나라 침략자의 인상이 우리 심상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그들의 노력질 근성은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면 수년전의 한일 어업협정이나 독도분쟁 등의 예를 보면 그들의 영토에 대한 집착은 가히 노력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우리와 일본의 관계는 정치, 외교, 무역 경제 등의 면에서 약간 침체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고려로서는 대륙의 정세와 왜구의 문제 등으로 거리를 두려는 양상이었다.

물론 고려때에도 왜와의 무역은 계속됐다.

470여년동안 고려에는 100년을 제외하고 수많은 이민족의 침입이 계속됐다.

이러한 고려의 민족관은 단순한 혈연적인 문화차이에서가 아니라 그 문화의 우열성을 깊이 인식하는 가운데 이민족 구분을 더욱 심화 시켰다.

신라가 무너지고 고려가 건국되는 전후의 한일 관계상 중요한 사건의 하나는 후백제의 사자가 대마도로 건너갔다.

당시 견훤은 두가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했다.

하나는 내적인 문제고, 또 하나는 외적문제였다.

견훤이 일본에 사자를 파견한 것은 전 시대인 삼국으로 부터 백제와 일본의 관계가 잘 이루어져 왔으며 후백제가 백제의 대통을 이었다는 역사성에 내세워 어수선한 후삼국의 국내외적으로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여 받고자 함이었다.

고려 후기의 대마도

고려는 계속하여 외침을 받았다.

10-11세기 거란의 침입, 12세기 여진침입, 13세기 몽고의 침입, 14세기 왜구의 침입, 홍건적 침입, 이같은 고려의 정치 경제적인 상황속에서 일본은 문화적으로 미개했을 뿐만 아니라 생필품과 특히 식량의 부족으로 생존상 필연적으로 무역을 해야만 했다.

대마도도 마찬가지의 입장에 처해 있었다.

당시 일본과 대마도는 조선술의 미약으로 원거리 무역은 어려웠고 오직 고려에 의하여 그들의 생존권을 의뢰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고려는 일본과의 무역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이때 왜구는 침략을 통한 자급자족의 경제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것만으로 부족했던 왜구는 1380년 후반기에 들어서자 고려와의 통상관계 개선만이 자신들의 경제적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하여 사적 통상이라는 무역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3세기 이후 고려는 몽고와의 거센 전쟁속에서 원거리에 있는 대마도와 울릉도 등의 통치에 소홀했고 몽고는 제주도와 대마도 등지에 목마장을 설치할 정도 였으니 이 때를 이용 왜구는 대마도와 고려의 남부 해안지역에서 계속 노력질을 일삼았다.

그러나 고려는 다시 군사를 재정비하고 1389년 대마도에서 왜구를 정벌하여 대마도가 우리영토임을 재학인 시켰고 대마도주와 도민을 위해 정치적 결속과 아울러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홍  식 (진해신문 대표이사, 시인 )  buhogun@hanmail.net   진해신문  2008-06-19 오전 11:3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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