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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마도 되찾기 운동 대마도가 우리땅인 이유(1)

한민족 중국대륙석권 내 몽고 시베리아 일대까지 진출 역사를 보는 눈 새롭게 가져야…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문, 일본 본토 토벌 복속 
 
"우리의 역사관을  반도사관, 식민사관, 소국사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안목을 가져야 한다"

지난호의 서론을 통해서 대마도가 우리땅임을 증명할 수 있는 여러가지 이유를 설명한바 있다.

대마도를 우리땅으로 주장하는데는 우선 우리 역사를 잘 알아야 한다.

오늘은 고대사의 논증을 통해 대마도가 분명한 우리땅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앞에 언급한 이들 책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 실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한단의 시대가 신화와 전설로 얽힌 내용이 아니라 그 시대가 실존 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역사서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갑게도 우리의 사학은 식민사관과 소국사관 등에 의해 옹졸하게 변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넓게 생각해 보면 우리 한민족은 중국대륙의 석권은 물론이고 우리민족인 동이, 구이, 이적 등이 중국을 세운 원조이고 내몽고와 시베리아 일대에도 분포했으며 게르만 민족을 이동시켜 로마를 멸망시킨 훈족도 우리의 조상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우리의 고대사를,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하는 넓은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한단고기에 나오는 태백일사 고구려 편에 나타난 대마도를 개괄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임나는 본래 대마도의 서북 어름에 있는 나라로 북쪽은 바다로 막히고 국미성(하 대마도)에 치소가 있었다.

둘째 동쪽과 서쪽에 각각 마을이 있어서 조공하기도 하고 배반하기도 하여 그 후 대마 두 섬(상도, 하도)이 드디어 임나에 지배 되었으므로 그 때부터 임나를 대마라 일컬었다.

셋째 예로부터 구주와 대마는 곧 삼한에서 나누어 다스린 땅으로 본래 왜인이 대대로 사는 지역이 아니었으며 임나가 또 나뉘어 삼가라가 되었는데 소위 가라라 함은 그 지방에서 중심되는 마을을 일컬음이었다.

다섯째 영락(광개토대왕)10년에 세 가라는 모두 고구려에 귀속되어 이로부터 바다와 육지의 모든 왜가 임나에 통합되어 열나라로 나누어 다스리니 연정이라 했다.

여섯째 고구려에 직할되어 열제의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생활할 수 없었다.

일곱째 영락대제는 군사를 이끌고 도일하여 왜인을 평정하고 임금이 되었는데 스스로 삼신(환인, 환웅, 단군)의 부명에 응한다고 하고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축하의식을 올리게 했다.

한단고기에 대마도는 한반도의 남해안에 떨어져 있으며 임나가라는 대마도를 중심한 일기도와 그 주변에 산재된 10여개의 소 도서국으로 구성된 연방체였다.

또 479년 고구려 선단이 대마도를 정벌하여 임나연정을 수립했다. 또한 일본 본토를 토벌하여 복속을 받았다는 기사와 임나에 관한 광개토대왕의 비문에 그 내용이 선명하게 적혀있다.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 조공을 바쳐왔다

신묘년(451년)에 구구려는 바다를 건너 일본을 파하고 항복을받았으며 백제신라인을 속민으로 삼았다."  

한단고기를 비롯한 고대사의 논증을 살펴 보아도 대마도는 분명 우리의 땅임을 알 수 있다.


김  홍  식 (진해신문 대표이사, 시인 )   buhogun@hanmail.net     2008-06-09 오전 9: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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