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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한 부여國 유물 ‘중국 문화재’ 둔갑

中 역사왜곡 현장 ‘요하문명展’ 가보니…

뿌리 같은 백제까지 중국사 편입 속셈 , “엉터리” 지적하면 “그건 당신들 생각”

랴오닝(遼寧)성 성도인 선양(瀋陽)시 시정부 광장. 인구 700만 선양시에서 통행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요하문명전(遼河文明展)’이 열리고 있는 랴오닝성 박물관은 이 광장과 인접해 있다. 6월 8일부터 예비전시가 진행 중인 요하문명전 포스터가 유독 눈에 띈다. 다른 전시 포스터보다 크기가 훨씬 크다. 시대별로 정리된 5개 전시관에는 안내원 2~3명씩이 배치된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그중 ‘화하일통’(華夏一統·‘중국은 하나다’라는 뜻)으로 명명된 제3전시관에는 진한시대 이후 중국 동북지방에서 명멸했던 여러 왕조들의 유물이 전시돼 있었다. 부여, 고구려 등 우리 민족의 뿌리를 이룬 나라들도 별도의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부여가 중국의 소수민족 국가? 중국 선양 랴오닝성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요하문명전’전시관 입구의 포스터.(사진 위) 전시실 내부에선‘부여’를 설명하며 “우리나라(중국) 동북 역사상 중요한 소수민족”“나라를 세운 이래 한(漢)왕조에신하로서 복종했으며 삼가 번국(藩國₩제후의 나라)의 예를 지켰다”고 써 놓았다.(사진 위쪽) /선양=이명진특파원

깔끔하게 정돈된 전시실에 들어서 안내문을 보는 순간,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진한 왕조의 중원 통일 이후 요하 유역은 대부분 중원(중국) 왕조의 판도였다. 그 왕조들이 쇠퇴하자 여러 소수민족들이 들고 일어났다. 서부의 선비모용씨, 북방의 부여, 동북의 고구려 등이 경쟁하면서 민족의 대융합을 이뤄냈다. 이들은 화하문명의 활기를 불어넣고 당 왕조를 성대하게 여는 바탕이 됐다.” 우리 민족 국가인 부여와 고구려가 중국 민족에 융합됐다니? 그리고 부여와 고구려가 화하(중국)문명이라고?

2평 남짓인 부여 전시실에 붙은 설명은 한술 더 뜬다. “부여는 동북지방에 최초로 왕조를 세운 소수민족으로 건국 이래 한(漢) 왕조에 신하로서 복종하면서 정성으로 예의를 지켰고, 연말에 풍족하게 조공을 바쳤다.” 그 설명문 옆으로 귀고리며 검(劍) 같은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중국 문화재’로 둔갑해 진열돼 있다.

안내원에게 “이 설명은 누가 붙인 것이냐”고 묻자, “경험 많은 역사학자들이 연구한 사실”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표정이다.

부여 전시실 뒤쪽에 마련된 고구려 전시실 역시 “중국 동북의 소수민족으로 중원과 인근 민족 문화를 흡수, 이를 기초로 독특한 문화풍속을 형성했다”고 설명돼 있다. 중국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오녀산성(고구려 첫 수도)의 대형 사진도 걸려있다. 이곳을 구경하던 한 단체관람객은 동료들에게 “오녀산성에 가봤는데 정말 좋더라”며 자랑하고 있었다.

박물관측은 조만간 예비전시를 마치고 본 전시에 들어갈 예정이다.

최근 요하문명전을 관람한 한 한국 주재원은 “동북공정이 진행되면서 중국의 일반 국민들 사이도 이미 부여나 고구려 문화가 자기네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시되고 있다”며 “왜곡된 것이라고 지적하면 ‘그건 당신들 생각’이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494년까지 800년 가까이 존재했던 부여(扶餘)는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가 된 국가였다. 그런데 중국은 현재 이 부여마저도 ‘동북공정’ 안에 포함시켜 중국사로 만들고 있으며, 결국에는 고구려와 백제도 중국사의 일부로 볼 수 있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종수 충남역사문화원 문화재센터 박사는 “1940년대 후반 터파기 등을 하다가 금귀고리나 철검 등 초기 철기시대의 위세품이 쏟아지자 마을 주민들이 마구 도굴했다”며 “한때는 500~600여기 이상의 고분이 도굴됐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그러자 중국 당국은 1956년 정식 수습 조사를 벌였다”고 말했다.

최근 이 전시회를 다녀온 강인욱 부경대 교수(고고학)는 “이 전시회의 모토는 전시회장 입구에 걸린 ‘다원일체 중화민족(多元一體 中華民族)’”이라며 “중국은 문화혁명 이후 1980년대부터 중국 영토 안의 모든 역사는 중국사라는 원칙 아래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선양=이명진특파원 mjlee@chosun.com)  조선일보 2006.09.0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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