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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두 산

‘산줄기가 요동 들판을 가로지르며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이 산은 조선 산맥의 한아비라. 그 꼭대기에 못이 있으니, 남으로 흘러 압록강이 되고 동으로 나뉘어 두만강이 된다. 백두산 한 가닥이 동남으로 내달으며 치솟아 도봉 삼각산을 이루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 해설문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그의 말대로 백두산이 있어 산자수명한 삼천리강산이 있다.

백두산은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아우르는 으뜸산이다. 그 산자락을 둘러싸고 살았던 민족과 종족들은 백두산을 신성시했다. 특히 백두산은 우리 겨레의 가슴에 살아숨쉬는 마음의 고향이다. 고구려 발해 고조선인들은 백두산을 경외했을 것이다. 요를 세운 거란이나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도 백두산을 성역으로 존숭했다. 중국의 사서는 ‘세상사람들은 이 산을 받들어 모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두산은 옛날부터 불함산, 개마대산, 태백산, 장백산 등으로 불려왔다. 고려사 광종 때 기록에는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 바깥쪽에서 살게 했다’고 되어있다. 백두산이라는 명칭이 처음 문헌에 나타난 것이다. 조선조 세종은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4군과 6진을 설치했다.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가 ‘장백산에 기를 꽂고 두만강에 말 씻기니’라고 읊었던 것도 이 때일 것이다.

사학자 문일평은 ‘금강산은 산의 재자(才者)이고 백두산은 산의 성자(聖者)’라고 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성산(聖山)인 백두산에 올랐다. 영조대 대제학을 지낸 서명응은 ‘백두산은 우리나라의 진산으로 온 백성이 우러러봅니다. 찬바람 찬이슬 맞으며 갖은 고초를 겪고 왔습니다. 산신령께서는 이런 정성을 살펴주소서’라는 제문을 지었다. 이같은 백두산은 항상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했다.

중국이 세계자연유산 추진과 인삼 개발 등 백두산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국인들은 백두산을 창바이산(長白山)이라 부른다. 새로운 중화(中華) 사관에 입각한 동북공정의 파장이 백두산까지 넘실대는 형국이니 우려된다.

〈이연재 논설위원〉 경향신문  2006년 08월 03일 18: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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