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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주장으로 꿰어진 일본의 괴기한 독도강탈 논거

[Web다케시마문제연구소]가 2008년 3월, (재)일본낙도센터홍보지인 [시마(しま)]에 [독도영토권 확립을 위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다케시마(독도) 영토권 확립을 위해

전후 50년 이상 한국이 계속 불법 점거하고 있는 다케시마(독도). 일본해의 기반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다케시마(독도)는 해양입국을 목표로 하는 국책의 미래를 크게 좌우할 존재이기도 하다.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해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냉정한 논의를 통해 진정한 해결로 이끌려는 시마네현의 노력에 국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의 불법 점거가 계속되는 다케시마(독도)
일본해에 떠 있는 시마네현 다케시마(독도)는 오키섬에서 북서쪽 약 157킬로미터에 위치하며,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한국이 일방적으로 [이승만 라인]을 설정한 1952년 이래, 다수의 일본어선이 나포되는 등 한국에 의한 불법 점거가 50년 이상이나 계속되고 있고, 현재도 (한국)영유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일반인의 주거와 관광선 취항 등, 우리나라(일본) 입장에서 용서하기 어려운 행위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케시마(독도) 문제는 일본해에서의 어업질서문제에도 악영향을 미쳐 1999년 1월에 발효된 [일한어업협정]으로 설정된 잠정수역이 양국이 공동이용, 공동 관리하는 수역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한국어선에 점령되어 (한국의) 무질서한 어업으로 자원고갈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본래 영토문제는 국가간문제로 양국의 외교노력으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만 하는 것이지만, 현재까지 일한 양국의 외교교섭은 전혀 진전이 없고, 반대로 (독도) 문제가 잊혀지는 것마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2005년 3월에 시마네현의회에서 의원제안으로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가 가결되어 이를 계기로 다케시마(독도)문제에 대한 관심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2006년 6월에는 많은 현민들의 서명을 받은 [다케시마 영토권 조기 확립에 관한 청원]이 중참 양원 본회의에서 채택되어 같은 해인 7월에 개최된 전국지사모임에서 다케시마(독도)문제에 관한 [긴급성명]이 전원일치로 채택되는 등, 국민여론 환기라는 점에서 큰 성과가 나타나 이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강하게 요구됩니다.

시마네현에서는 국가에
① 국제사법재판소로의 제소를 포함한 새로운 외교교섭 진전을 도모할 것
②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획정교섭에서도 다케시마(독도) 영토권 조기 확립에 입각한 교섭을 추진할 것
③ 북방영토와 마찬가지로 국가에 다케시마(독도)문제를 담당할 조직을 설치해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계몽활동에 주체적으로 대처할 것
④ 학교교육에서 다케시마(독도)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기 위해 학습지도요령에 다케시마(독도)를 다룰 것
을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케시마(독도)를 둘러싼 영유권다툼의 경위
다케시마(독도)는 시마네현 오키군 오키노시마쵸에 속하고 오키섬 북서쪽 약 157킬로미터, 북위37도14분, 동경131도52분에 위치하며, 동섬(東島)과 서섬(西島)의 2개의 주요 섬과 수천 개의 암초로 구성되며 이 총면적은 23만967평방킬로미터로 동경 돔 약5배의 넓이에 해당합니다. 다케시마(독도)는 식수가 부족하고 사람이 상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섬 주변 일대는 남쪽으로부터의 쓰시마난류와 북쪽으로부터는 리만한류가 만나는 곳으로 어류, 패류, 해조류의 종류와 수량 모두 매우 풍부합니다.
배타적 경제수역 200해리시대를 맞이한 현재, 다케시마(독도) 주변해역은 시마네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일본)에게도 수산업 발전과 수산자원확보라는 관점에서 매우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케시마(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일본과 한국과의 다툼은 1952년 1월 18일, 한국 이승만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해양주권선언(소위 [이승만 라인 선언])을 발표하고 다케시마(독도)를 이 이승만 라인 안으로 포함시킨 데서 시작됩니다.
이후, 일한 양국은 서로 영유권주장을 되풀이하고 조사단파견, 상대국 조치에 대한 항의 등이 계속됐지만 1954년에 한국은 무장요원을 상주시켜 다케시마(독도)를 점거했습니다.
1960년, 정권교체로 12년간의 이승만 정치가 끝나고 양국간 대화도 추진됐습니다. 1965년, [일한기본관계조약]이 체결되어 국교가 정상화됐지만 기대되었던 다케시마(독도)문제 해결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1978년 4월, 한국은 자국연안에서 12해리를 영해로 삼고, 이후 다케시마(독도) 주변 12해리에서 우리나라(일본) 어선을 쫓아냈습니다.
현재 다케시마(독도)는 한국이 등대, 감시장, 병사숙소 등을 세우고 경비원을 상주시켜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일본)의 시정권(施政權) 행사가 방해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나라(일본)는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하겠다는 기본방침에 서서 여러 기회를 통해 끈기 있게 교섭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다케시마(독도) 영토권을 확립하고 어업의 안전조업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케시마(독도)문제를 바르게 이해해 국민적 여론을 고조시켜 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다케시마(독도)에 관한 일본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다케시마(독도)가 발견된 정확한 연대는 불명확하지만 적어도 에도시대초기에는 일본인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1618년경부터 요나고 오오야 진키치, 무라카와 이치베에라는 사람들이 막부로부터 허가를 얻어 현재 한국영토인 울릉도(당시 [다케시마(竹島)]로 불렸다)로 건너가 전복, 강치 등의 어로와, 나무와 대나무 벌채 등을 실시했습니다. 이 울릉도로 가는 도중에 기항지로, 그리고 어업지로 다케시마(독도)(당시 [마츠시마(松島)]로 불렸다)를 이용했습니다. 1661년경부터는 [마츠시마(松島)](오늘날의 다케시마=竹島)에도 정식으로 막부의 허가를 얻어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에도막부는 조선과의 다툼으로 1696년에 울릉도로의 도항을 금지했지만 마츠시마(현재의 다케시마)에 대해서는 도항을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1836년에 하마다(浜田)의 이마츠야 하치에몬이라는 사람이 금지령을 깨고 울릉도로 건너간 벌로 처벌되었지만 이 재판기록 중에는 마츠시마(松島)로 건너갈 명목으로 도해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마츠시마(松島)에 대한 인식은 책자나 지도에 기록되어 에도시대를 통해 유지되었습니다.
메이지시대에 들어 일본인에 의한 울릉도로의 도항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많은 어민이 울릉도로 가게 되었고 가는 도중에 다케시마(독도)로 기항했습니다. 메이지20년대 말부터는 오키(隠岐) 주민들이 다케시마(독도)에서 전복과 강치 등의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다케시마(독도)는 역사적으로 보아 일본영토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국제법에 비추어 다케시마(독도) 영유권을 검증해 보겠습니다.
1904년, 오키섬 주민인 나카이 요사부로라는 사람이 다케시마(독도)에서 강치잡이를 행하기 위해 정부에 다케시마(독도) 영토편입 및 사용허가를 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1905년 1월 28일의 각의에서 이 섬을 정식으로 [다케시마(독도)]라고 명명하고 일본소속, 시마네현 오키도사(隠岐島司) 소관으로 한다는 내용을 결정했습니다. 이를 기초로 시마네현 지사가 같은 해인 1905년 2월 22일자로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이 내용을 공시했습니다.
또한 같은 해인 1905년에는 오키국(隠岐国) 4개 군(郡)의 관유지대장에 등록, 어업단속규제에 의한 강치어업허가, 가설 망루 설치, 지사 시찰, 그리고 다음 해인 1906년에는 시마네현 제3부장 등의 현지 실태조사가 이루어져 이후에도 어업자에 대한 관유지 대부(貸付)와 사용료 징수 등, 행정권 행사가 계속해서 실시되었습니다.
국제법상 영토취득을 위한 요건은 [국가에 의한 해당 토지의 실효적인 점령]입니다. 일본은 다케시마(독도)에 대해 역사적인 권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20세기 이후의 조치로 근대국제법상의 요건도 완전히 충족되었습니다.
다케시마(독도)는 국제법에 비추어도 우리나라(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3번째 [다케시마의 날]을 맞이하며
시마네현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를 2005년 3월에 제정해 우리나라(일본)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독도) 영토권확립을 위한 대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2008년 2월 22일 [다케시마의 날]에는 기념행사로 시마네현민회관 중홀에서 [다케시마의 날 기념식전]과 [영토문제강연회]를 시마네현, 다케시마북방영토반환요구운동 시마네현민회의, 시마네현의회의 주최로 개최했습니다.
3번째를 맞이한 올해는 처음으로 전국적인 조직으로 일본청년회의소의 대표를 초청한 것을 비롯해 현 선출 국회의원과 현내 시쵸손(市町村)의 장(長) 등, 많은 내빈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공모에 의한 일반 참가자, 현민회의 가입단체 등의 연대단체로부터의 참가자 등, 작년을 웃도는 약 500명이 모여 주셨습니다.
인사를 한 미조구치 젠베에 시마네현 지사는 작년 4월에 문을 연 [다케시마자료실]과 인터넷으로 다케시마(독도)문제에 관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Web다케시마문제연구소]개설 등, 최근 1년간의 대처를 소개하고 더불어 다케시마(독도) 영토권 확립을 위해 앞으로도 국가를 상대로 다케시마(독도)문제 조기해결을 강하게 요구해 나가겠다고 말하고, 나아가 [다케시마(독도) 문제해결은 국민들의 이해와 여론 고조가 불가결]하다며 참가자들에게 지원과 협력을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내빈 인사로는 일본청년회의소의 우치야마(内山智一郎) 부회장이 다케시마(독도) 문제에 대해 시마네현과 연대해 전국차원에서의 계몽활동을 위해 노력할 생각을 표명해주셨습니다.
다케시마(독도)가 속해있는 오키섬에서는 [다케시마영토권확립 오키기성동맹회] 회장인 마츠다(松田和久) 오키노시마쵸(隠岐の島町)의 장(長)은 진전이 보이지 않는 외교교섭과 국내 계몽 등의 정부 움직임에 대해 [영토문제를 담당하는 부서를 마련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는 절실한 호소가 있었습니다.

기념식전에 이어 효우도우 나가오 前 동경경제대학 교수와 시모죠 마사오 타쿠쇼쿠대학 교수에 의한 [영토문제강연회]를 개최했습니다.
효우도우 나가오 씨는 외무성에서의 경험 등과 함께 북방영토문제의 현 상황과 문제점, 다케시마(독도) 문제와의 관련에 대해 말씀하시며, [영토문제는 일본에 결여되어 있는 주권의식을 되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반환실현은 최종적으로 폭 넓은 국민들의 지지로 결정된다. 다케시마(독도)와 북방영토 문제를 연대한 계몽이 필요하다]는 흥미로운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이어 시모죠 마사오 씨는 다케시마(독도)문제의 한국 측 주장이 역사적으로 명확한 논거가 없다는 사실 등을 영상과 지도를 이용해 자세히 설명하시고,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일한관계를 분석하고 [지금이야말로 일본정부와 국회의원이 주장할 절호의 기회로 다케시마(독도) 문제해결을 위해 양국이 냉정하게 대화할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움직여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념식전이 열린 로비에서는 이번에 첫 번째 시도로 [다케시마(독도) 상품]판매를 실시했습니다. 현내 업자들에 의해 새롭게 상품화된 일본 술과 흑요석으로 만든 액세서리 등이 판매되었으며, 품절되는 상품도 나오는 등, 다케시마(독도)를 가까이에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기념식전 당일은 한국 정치단체의 항의행동도 있었지만 큰 혼란 없이 행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냉정한 논의가 필요하며 다케시마(독도)문제 해결과 진정한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앞으로도 연구자 등에 의한 의견교환을 호소해나갈 생각입니다.
이 밖에도 [다케시마의 날]기념사업으로 현청 앞에 있는 옛 박물관 내에 위치한 다케시마자료실에서의 특별전시를 3월 21일까지 개최했습니다. 전시내용은 에도시기에 미토번의 지리학자였던 나가쿠보 세키스이가 그린 다케시마(독도)를 포함한 일본지도와 한국과 견해가 다른 다케시마(독도)와 러일전쟁에 관한 자료 등, 다케시마(독도)가 일본영토였다는 사실을 실증하는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시마네디자인전문학교 학생이 만든 다케시마(독도)가 마지막 생식지로 불리는 일본강치에 대한 일러스트도 전시해 관람자들에게 여러 관점에서 다케시마(독도) 문제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다케시마(독도) 영토권확립을 목표로
현재의 [낙도진흥법] 제1조에서는 낙도를 [우리나라(일본) 영역, 배타적 경제수역 등의 보전, 해양자원의 이용, 자연환경보전 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낙도의 국가적인 역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 4월에 성립한 [해양기본법]에서는 국제협력아래 새로운 해양입국을 실현하는 것의 중요성과 국가의 낙도에 대한 보전을 위한 책무가 명확하게 되었습니다.
다케시마(독도)는 국경의 섬으로 어업자원과 해양자원개발 등, 우리나라(일본) 영역과 배타적 경제수역 등의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케시마(독도) 영토문제 해결은 낙도가 지닌 국가적 역할을 다하는데 기본적이며 나아가 대전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본래 영토문제는 국가가 책임지고 외교교섭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지만 이 해결을 뒤에서 강하게 지원하는 국민 여론 확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시마네현은 각종 계몽활동을 통해 현내외로 정보를 발신하고 더불어 국가에 새로운 외교교섭 전개와 담당조직설치 등에 대해 요망활동을 끈기 있게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다케시마(독도) 영토권확립은 낙도만에 머물지 않고 일본의 장래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전국 여러분들의 이해와 협력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독도가 일본영토임에도 불구하고 1952년 이승만대통령의 이른바 [이승만라인]을 계기로 현재까지 한국에 의해 불법 점거당하고 있다는 억지 주장으로 일관된 이 일본의 괴기한 독도강탈 논거는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 하겠다.

 

*2008.05.01 독도본부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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