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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오딧세이 1 - 조선의 국경은 압록강이 아니었다

 
조선 현종 3년 1662년의 일이다. 영의정 정태화가 임금께 아뢰었다.
“압록강을 경계로 해야 마땅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반드시 저 나라(청)와 의논해서 정하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임금이 말했다.
 
1708년 프랑스 선교사 레지 신부가 만든 지도. 조선과 청의 국경선(분홍색 선)이 압록강과 두만강 위에 있다. 

“압록강을 경계로 삼을 경우 우리 땅이 저들에게 들어가니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왕조실록의 이 기록을 본다면 어리둥절해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압록강이 우리의 국경선이 아니란 말인가. 국경이란 개념이 분명하지 않던 이 시절에도 현종은 압록강을 청과 경계로 한다면 사리에 맞지 않다고 영의정의 청을 물리쳤다.

압록강 몇십 리 너머에 변문·책문 기록
이 땅은 바로 압록강 너머에 있는 서간도 지역을 말한다. 옛날 사신들은 압록강을 건너는 것을 국경을 넘어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압록강을 건너 몇십 리를 지나 변문과 책문을 통과해야 중국 땅에 들어섰다. 변문이나 책문이라는 지명 자체가 국경을 뜻한다. ‘열하일기’에서 연암 박지원은 책문을 들어서며 “한 번 이 문을 들어서면 중국 땅이다. 고국의 소식은 이로부터 끊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780년의 일이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압록강은 국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동쪽의 두만강은 어떠할까. ‘세종실록’의 기록을 들여다보자. 세종이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에게 말했다.
“공험진을 동북의 경계로 삼았다는 말이 전해온 지가 오래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공험진이 백두산의 북쪽에 있다 하나 사실인지 알지 못한다. ‘고려사’에 이르기를 ‘윤관이 공험진에 비를 세워 경계를 삼았다’고 하였다. 지금 듣건대 선춘령에 윤관이 세운 비가 있다 하는데, 공험진이 선춘령의 어느 쪽에 있는가. 그 비문을 사람을 시켜 찾아볼 수 있겠는가.”

‘세종실록’에는 더 이상의 기록이 없다. 김종서가 세종의 명을 받고도 선춘령에 있는 비석을 찾지 못했던 것일까. 선춘령은 조선 선비들의 글과 일부 지도에서 두만강 건너 북간도 지역에 모습을 나타낸다. 1766년 홍문관 부제학 서명응은 ‘유백두산기’라는 글에서 “대개 온성의 서남쪽 100리에 분계강이 있어서 선춘령 밑에 고려 시중 윤관의 정계비가 있는데, 강의 이름과 비로 추정하건대 이곳이 우리나라의 경계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썼다.

두만강 건너 북간도 지역도 우리 조상들 ‘삶의 터전’
두만강 너머에 국경이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중국과 국경선이라고 알고 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서간도와 북간도에 흩어져 살며, 그곳이 남의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땅을 갈고 오순도순 살았다. 그 곳에 시인 윤동주가 별을 헤던 용정이 있고,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이 있다. 지금은 남의 땅인 것으로 당연하게 알고 있고, 그렇게 되어버렸다.

지금 천년을 거슬러올라가 고구려와 발해의 옛땅을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다. 조선 중기때부터 우리 조상이 머물던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의 땅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때 이랬더라면’이라고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강대국에 눌렸던 우리나라의 역사 공부는 늘 서글프고 안타깝다.

<윤호우 기자>   2008 02/19   뉴스메이커 7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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