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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류 실천 핸드북] - 반일망언 격퇴 매뉴얼 다섯 번째 이야기

종전직후, 99%의 재일한국인은 본인의 의지로 일본에 왔다?

오늘은 다섯 번째 이야기로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징용’문제에 관한 일본의 진실(?)을 들어보겠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망언> 조선인을 일본본토로 강제 연행했다!

<일본의 진실> 일본으로 건너오길 누구보다 바란 건, 조선인 자신이다!

현재 (한국인은) ‘징용’을 ‘강제연행’으로 부르고 혼동하는 경향이 있지만, 징용은 戰時(전시)하에 국민에게 과해지는 의무였다. 당시 일본의 일부였던 조선반도에 징용이 적용되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징용제도는 1938년에 성립된 ‘국가총동원법’을 기초로 1939년에 발령됐지만, 조선반도에 징용이 적용된 건 1944년 9월부터 관부연락선이 폐쇄된 1945년 3월까지로 반년동안 뿐이었다. 이 동안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은 2000명으로 추정된다.

현재 일본에 있는 재일한국인 1세 대부분은 ‘강제연행’이라 부르는 ‘징용’과는 관계없이 자유의사로 일본에 도항ㆍ잔류자다.

이 책은 일본의 침략으로 식민지화되었던 당시의 조선을 ‘일본의 일부’라고 표현, 일본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총동원법’을 일본 국민인 조선인에 적용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법적으로도 문제없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리곤 선심 쓰듯이 1939년에 발령된 징용제도로 일찍이 일본국민은 전쟁터에 나가야 했지만, 조선엔 1944년 9월부터 종전까지인 약 6개월밖에 적용하지 않았다고 언급하고 그 숫자 또한 2000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노동자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민간업자에 의지했던 조선인 노동자모집을 나중엔 조선총독부가 모집하게 되었지만, 이는 아무런 문제없는 행위고 강제연행이 아니었다며, 오히려 총독부와 조선인 노동자사이에서 알선 행위를 했던 조선인브로커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는 애매모호한 언급으로 말을 맺고 있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일본이 아니라 조선 내부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던 조선인브로커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당시 본인의 의사로 건너왔던 조선인에 의해 일본국내는 치안이 악화되는 등의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며 정작 일본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고 강변한다.

정말 우리들은 ‘징용’을 ‘강제연행’으로 착각ㆍ혼동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들이 일본에게 주장하는 ‘강제연행’은 피해의식에 쪄든 ‘망언’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2007.08.01 독도본부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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