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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26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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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헌법 9조 위험 신호

일본 헌법 9조 위험 신호!

‘개헌’에 유리한 ‘국민투표법안’ 강행, ‘새 헌법’이란 이미지에 가려 평화 헌법 조항 사라질지도

 

▣ 이준규 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 minoritylee@hanmail.net

일본 중의원이 지난 4월13일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안’을 통과시켰다. 자민당과 공명당 두 연립여당의 찬성으로 가결된 국민투표법안은 현재 참의원 헌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참의원도 연립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연립여당은 ‘일본국 헌법’ 시행 60주년이 되는 5월3일을 통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환갑을 맞은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게 되는 셈이다.

호헌운동은 봉쇄하다

일본이 개헌을 위해 우선적으로 ‘국민투표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는 현행 헌법이 개헌 절차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 96조는 헌법 개정 조건에 대해 △중·참 양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발의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에 대한 ‘절차’는 마련돼 있지 않아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하려면 국민투표를 위한 절차법이 필요하다. 국민투표법 마련은 헌법 개정을 위한 준비작업이란 얘기다. 아베 신조 총리는 국민투표법안의 중의원 통과 뒤 “임기 내에 개헌을 이루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특히 이번 국민투표법안의 통과 과정은 초스피드로 진행되고 있다. 4월13일 오전 중의원 헌법조사특별위원회를 통과하고, 같은 날 오후에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아베 총리의 강경 드라이브 이면에는 급격히 떨어지는 내각 지지율 만회를 위한 ‘보수층 결집’이라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교육재생 관련 3개 법안’과 ‘주일미군재편 추진법안’ 등 취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아베 총리의 ‘강경 우경화 드라이브’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민당은 특히, 제1야당인 민주당과 단일안을 마련하려고 했다. 공식적으로는 ‘논헌’(論憲·헌법 개정을 논해볼 수 있다)의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의 ‘개헌’ 방침을 가진 민주당과의 연계가 확실한 개헌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연립여당안에 대해 수정안을 제출한 민주당과의 협의를 무시하고, 연립여당안을 강행 통과시켰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오자와 이치로 당수를 비롯한 지도부가 전면에 나서 아베 내각과 자민당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민당의 몇몇 중진의원을 중심으로 한 ‘반아베 그룹’도 아베 총리의 성급함 때문에 민주당과의 ‘개헌 연대전선’이 깨졌다고 비판한다. 연립여당안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킴으로서 개헌 추진에 대한 정치·사회적 반발을 자민당이 온전히 감당하게 됐기 때문이다.

국민투표법안은 공포되더라도 3년 뒤에나 발효되지만, 벌써부터 일본 내에서는 국민투표법안의 강행 추진에 대한 ‘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번에 통과된 국민투표법안이 개헌세력에게는 일방적으로 유리한 반면 호헌세력에게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들로 가득한 탓이다. 심지어 일본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예컨대, 국민투표 과정에서의 최저투표율을 규정하지 않아 과반수도 안 되는 투표율로도 국민투표가 성립할 수 있도록 했다. 개헌 자체를 반대하는 호헌운동을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사실상 쿠데타적 발상”

개헌 찬반과 관련해 유료 미디어 광고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집권당과 정부, 제1야당이 개헌세력인 상황에서 개헌 찬반 유료 광고를 하게 된다면 금전적으로 우위에 있는 개헌세력이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할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교원의 활동 규제 및 처벌 조항은 더 큰 문제다. 법안은 공무원과 교원은 개헌과 호헌에 대한 의사를 밝힐 수 없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도록 했다. 만약 국공립대 교수나 교사가 수업시간에 헌법 9조(전쟁포기, 전력보유 금지 및 교전권 금지)의 소중함에 대해 발언을 한다면 국민투표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는 평화교육을 핵심으로 하는 일본 전후 교육이념과도 충돌하는 것이지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기도 하다. 헌법 개정안에 대한 찬성, 반대를 묻는 방법(투표 방법)을 정한 규정이 없는 것도 논란으로 남아 있다.

일본 내의 헌법 여론은 묘한 ‘의식의 괴리’를 보이고 있다. 개헌 여부에 대해서는 찬성이 절반을 넘게 나오고 있지만, 헌법 9조 개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반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는 그동안 개헌세력들이 일본의 헌법이 오래된 (혹은 시대에 맞지 않는) 헌법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온 결과이기도 하지만, 또한 헌법 9조의 평화조항에 대한 지지 여론이 여전히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조건에서 만약 개헌안에 대한 일괄투표 방식을 취한다면, 헌법 9조는 ‘새로운 헌법’이라는 이미지 선전에 묻혀 도매금으로 폐기될 위험성이 높다. 최소한 헌법 9조의 ‘평화조항’이라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처지에선, 과정이 복잡할지라도 ‘개정 조항별’로 투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헌법 9조를 지키는 모임’(9조의 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고모리 요이치 도쿄대 교수는 2005년 11월 자민당이 발표한 ‘헌법개정안’은 “사실상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그 명칭부터가 ‘헌법 개정안’이 아니라 ‘새 헌법 초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새 헌법 제정은 혁명이나 쿠데타 혹은 전쟁 등에 의한 근본적 정치체제의 변혁에 수반하는 것이다. 또 새 헌법을 제정하기 위해선 새로운 선거를 통해 제헌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일본은 ‘의회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 ‘쿠데타’가 일본 ‘전후 체제’를 총체적으로 뒤바꿔놓을 것이며, 그 타깃은 헌법의 평화조항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최소한 ‘동아시아적’이다. 일본 헌법의 평화조항은 냉전의 그늘과 미국의 비호 아래서 경제발전과 군비증강을 꾀해왔던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신뢰관계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일본 평화헌법 개악을 위한 준비단계로서의 국민투표법안 성립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2007. 5. 1. 한겨레21 제6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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