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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본색 “10년을 기다렸다”

[아베本色] 극·우·본·색 “10년을 기다렸다”
1997년 자민당 강경파 주축으로 의원모임 만들고 ‘전후체제 청산’작업
일본 교과서 과거사 삭제등 역사대곡 총력… 위안부 망언은 준비된 시나리오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 장관의 담화는 일·한 양국의 관계에서 사실보다는 외교상의 문제를 우려한 것이다. 또 증언자 16명의 청취조사에 대한 아무런 뒷받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의 관여와 관헌의 직접 가담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발표한 것이란 사실이 판명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선 의원 시절인 지난 1997년 12월,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 모임’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당시 아베 의원은 “한국에는 기생집이 있어 위안부 활동이 말도 안 되는 행위가 아니라, 상당히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면서 “실제로 그들이 강제로 끌려갔다고 한다면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었을 텐데 일·한 기본조약을 맺을 때 그렇게 격렬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아무도 한마디도 안 한 것은 매우 의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후 10년이 지났다. 아베는 의원에서 일본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아베 총리는 지난 3월 1일 “종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증명하는 증언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없었다”고 밝혔다. 과거 자신의 발언을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 아베 총리는 이어 3월 5일 참의원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광의의 강제성은 있었다고 보지만 협의의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언은 없었다”면서 “다만 중간에서 업자가 사실상 강제적으로 한 일도 있었다”고 답변했다. 강제성을 ‘광의(廣義)’와 ‘협의(狹義)’로 나눠서 실제 현장에서 당사자가 위안부로 가려는 의사가 없었음에도 강제로 끌고 간 사례, 즉 협의의 강제성은 없었다고 강변한 것이다.
그렇다면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 계승 입장을 밝히면서 한국, 중국 등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해 온 아베 총리가 이런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베 총리의 문제 발언은 미리 준비한 연설이 아니라 기자들과 야당 의원들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에 일종의 즉흥적 견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 2006년 10월 2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가 일본 해상자위대 관함식(觀艦式·국가 원수가 자국의 군함을 검열하는 의식)에서 국기에 대해 경례하고 있다.
 

이런 분석은 아베 총리의 본색을 전혀 파악하지 않은 데서 나온 잘못된 판단이다. 즉 아베 총리의 발언은 고도로 계산된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이미 지난해 9월 총리로 취임하면서 일본의 ‘전후 체제’ 청산이라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의 구상을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조직은 집권 자민당 강경파 의원들로 구성된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들 모임’(이하 의원들 모임)이다. 이 단체는 1997년 2월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 모임’으로 처음 출발했다. 이 모임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은 초대 사무국장인 아베 총리와 초대 회장이었던 현재 자민당 3인자인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정조회장이다. 당시 사무차장이었던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은 현재 관방 부장관이다. 이후 이 단체는 이름에서 ‘젊은’이라는 단어를 떼어냈고, 지난해 12월 초 총회를 열고 1년간 중단했던 활동을 재개했다. 현재 회장은 “종군위안부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군에 의한 만행도 없었다”는 망언을 한 적이 있는 나카야마 나리유키(中山成彬) 전 문부과학성 장관이 맡고 있다. 이 단체는 총회에서 ‘종군위안부’에서 ‘종군’이라는 글자를 삭제하고 ‘고노 담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담화를 발표할 것을 정부에 요구키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 단체의 활동 재개는 아베 총리의 뜻에 따른 것이다. 아베 총리의 심복인 시모무라 관방 부장관은 지난해 10월 25일 “고노 담화의 전제인 종군위안부 문제는 시간을 갖고 수집한 객관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며 향후 고노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들이 들고일어나자 아베 총리는 이 단체의 활동을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구상을 적극 추진하는 ‘전위대’로 내세운 것이다.

  • 노무현 대통령,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06년 11월 18일 한·미·일 3자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아베가 정치 초년병 시절 이 단체를 만든 이유는 역사교과서 때문이다. 아베는 일본이 저지른 부끄러운 과거를 후세들이 배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자학(自虐)사관’으로 쓰여진 역사 교과서는 일본의 과거 잘못된 점만을 들추어낼 뿐 국가 발전이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그는 자신과 의기투합한 자민당의 5선 이하 젊은 의원 80여명을 모아 이 단체를 결성하고 역사교과서를 개정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한 달에 한 차례씩 모임을 갖고 문부성 과장과 교과서 회사 사장, 교과서 집필자 등을 불러 침략전쟁과 위안부 문제를 기술하고 있는 현행 교과서들의 문제점을 추궁했다. 이들은 또 고노 전 장관에게 담화 철회를 강요하기도 했다.

     당시 이들의 연구 주제는 위안부 모집 과정의 강제성 여부였다. 아베 총리가 최근 반복해 주장하는 ‘광의’와 ‘협의’의 강제성은 이 모임에서 이론화한 것이다. 노예 사냥을 하듯 군인이나 관헌이 민가에 마구잡이로 쳐들어가 부녀자를 끌고 갔다는 공문서상의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현 아베 정부에는 ‘의원들 모임’의 회원들이 수두룩하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오키나와·북방 담당상, 나가세 진엔(長勢甚遠) 법무상, 스가 요시히데(菅義偉)총무상, 와타나베 요시미(渡邊喜美) 행정개혁상, 야마모토 유지(山本有二) 금융상 등 모두 이 모임 출신으로 각료에 등용됐다. 정치자금 스캔들로 비난을 받았던 마츠오카 토시가츠(松岡利勝) 농업수산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이 모임의 부대표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마츠오카 장관은 자신의 자금관리단체가 수도료가 전혀 들지 않는 의원회관에 있음에도 2005년 한 해만 수도료 명목으로 500만엔 이상을 썼다고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허위로 기재했다. 이 모임은 아베 정부의 인재 풀인 셈인데, 이들의 연령은 대부분 아베 총리와 비슷한 50대 초반인 전후(戰後)세대이다.  

    1945년 이후 태어난 전후세대는 1억2000만 일본 인구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다. 집권 자민당의 중의원 의원만 하더라도 전체 292명 가운데 68.2%에 해당하는 199명이 전후 출생자다. 1954년생인 아베 총리는 그 동안 ‘전후세대 역할론’을 강조해 왔는데, 의원들 모임은 바로 이런 역할을 담당할 주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민당에서 전후세대 의원들의 세력화는 그 동안 꾸준히 진행돼 왔다. ‘신세기의 안전보장체제를 확립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 ‘21세기 교육을 만드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 등이 있지만 ‘의원들 모임’만큼 결속력과 영향력은 없다. 이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일본 제일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정계에 입문할 무렵에는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 출간될 정도로 일본의 국가적 자부심이 드높았다. 이들은 전쟁의 비참함과 가난 등 일본의 제국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 성장했다. 아베 총리만 해도 1964년 도쿄(東京) 올림픽이 열리고 신칸센(新幹線)이 개통되는 등 일본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는 기간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을 모르고 지냈다.  

    이들 의원 199명 중 68명이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의원이나 장관을 역임하는 등 정치인 집안 출신이다. 더구나 비례대표를 제외한 지역구 의원 142명은 2명 중 1명꼴인 60명이 2, 3, 4세 의원이다. 이들에게는 그만큼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이 있다. 아베 총리가 “드디어 전후세대가 사회의 중심이 됐다”면서 “우리 세대는 용기와 책임을 갖고 부모들이 남긴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들은 평화헌법과 교육기본법의 개정, 과거사 미화 등 ‘전후체제’의 근본을 부정하고 새로운 일본을 건설해야 한다는 의지에 불타고 있다.

    이들의 선봉장이자 리더가 바로 아베 총리이다. 아베는 2차 대전 A급 전범으로 투옥됐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安信介) 전 총리에게서 정치적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기시 전 총리는 연합국 군사령부(GHQ)가 제정한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아베의 ‘본색(本色)’은 전후세대와 제국주의 세력을 연결하는 고리라고 말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2월 31일 부인 아키에 여사와 함께 연말 극장가 화제작 ‘이오지마(硫黃島)에서 온 편지’를 감상했다. 이 영화는 2차 대전 말기 이오지마에 상륙한 미군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하다 2만여 일본군이 전멸한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그가 한 해를 마감하는 날 하필이면 일본군의 ‘옥쇄(玉碎)’를 주제로 한 영화를 본 이유는 무엇일까. 퇴임 직전까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A급 전범을 ‘전쟁범죄자’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아베 총리는 A급 전범을 범죄자로 보지 않는다. 그는 고이즈미 전 총리처럼 ‘부전(不戰)의 맹세’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집단적 자위권과 교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평화헌법을 고치자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가 이 영화를 본 것은 과거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부활시키자는 의지를 다지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실제로 그는 다음날인 1월 1일 신년사에서 “전후체제에서 벗어나 새 시대에 맞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올해는 헌법 시행 60년이 되는 해로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헌법을 우리 손으로 써야 할 때가 됐다”면서 자신의 임기 중 헌법 개정을 마무리 짓겠다고 강조했다.

    전후체제 청산 작업은 이미 가속도가 붙은 상태이다. 평화헌법과 함께 전후체제를 받치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인 교육기본법이 지난해 12월 개정됐다. 교육기본법은 1947년 제정된 이후 그 동안 한 차례의 개정도 없었다. 교육기본법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평화주의의 이념 실현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 법을 애국심과 전통 등 국가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정했다. 이 법이 개정됨에 따라 학교에서 기미가요(국가) 제창과 히노마루(국기) 게양 시 기립 등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9일 방위청을 방위성(국방부에 해당)으로 승격시켰다. 이에 따라 방위성은 총리를 거치지 않고 중요 안건을 직접 각료회의에 제출하고, 독자적으로 예산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방위청 명칭이 바뀐 것은 1945년 발족 이후 처음이다.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는 방위청에 대한 명칭 변경과 성 승격 작업은 전후 보수 강경파의 숙원 과제였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 중국의 급격한 군사대국화 등으로 조성된 국내 위기감을 빌미로 최대 현안을 해결한 것이다.
    아베 정부는 과거사를 부정하는 작업도 속속 진행 중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종군위안부에 강제 연행이 없었다는 것과 난징(南京)대학살이 과장됐다는 주장이다. 특히 교과서에 기재된 과거사를 삭제하려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일은 ‘의원들 모임’이 앞장서고 있다.  

    ‘의원들 모임’은 지난 2월 9일 자민당 본부에서 집회를 갖고 난징대학살의 사실검증을 본격 시작했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일본이 난징을 침략하면서 중국인 수십만 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중국은 당시 희생자가 30만명에 이른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난징대학살 70주년을 맞는 올해 사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고조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의원들 모임’은 이에 대한 대응 조치로 검증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 모임’은 또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고노 담화를 수정키로 하고 아베 총리에게 재조사를 건의키로 결정했다. 아베 총리는 당초 이 단체의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정부가 재조사에 나서기로 방침을 세웠다가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을 고려해 정부는 각종 자료만 제공하고 이 단체가 재조사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지난 3월 16일 각료회의에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공식 입장을 채택한 것도 이런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와 ‘의원들 모임’이 그 동안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정식 추인한 셈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내년부터 사용될 고교 2, 3학년의 교과서에 대한 검정과정에서 종군위안부의 강제동원 부분은 아예 빼버렸다. 난징대학살에 대해서도 검정 신청본은 ‘희생자 수가… 20만명으로’라고 표현돼 있으나 통과본은 ‘20만명’에 ‘십수만 명, 4만명 전후 등 다양한 설이 있으나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중국은 30만명이라고 주장함’이라는 각주를 달았다.  

    아베 정부의 이 같은 후안무치한 발언과 행동에 한국은 물론 대만·싱가포르·호주·필리핀 등 2차 대전 피해국가들이 강력 반발하자, 미국이 나섰다. 미국 국무부가 3월 26일 종군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면서 책임 있는 대응 자세를 촉구한 것은 매우 중요한 입장 변화이다. 미국은 그 동안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당사국들이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면서 중립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미국은 아베 정부가 2차 대전 피해국들을 자극할 경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민주국가들을 결속시켜 중국에 대항한다는 전략에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해 일종의 경고를 한 셈이다. 미국으로선 자칫하면 아·태 지역 국가들로부터 일본과의 동맹 관계 때문에 아베 정부를 두둔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다. 미국의 단호한 태도에 놀란 아베 총리가 4월 3일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해명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본색은 바뀌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아베 총리는 5월 3일 평화헌법 제정 60주년 기념일 이전까지 헌법 개정의 절차를 정하는 국민투표법을 제정할 방침이다. 일본의 전후체제는 전쟁 포기와 군사력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에 의해 규정돼 왔다. 평화헌법 9조는 1항에서 국제분쟁 해결수단으로 전쟁과 무력 사용을 포기하고, 2항에선 육해공군과 기타 전력 보유 및 교전권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국민투표법이 제정되면 마지막 남은 전후체제를 청산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는 것이다. 자신의 임기 중 개헌을 완수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야심을 이오지마에서 옥쇄한 수많은 영령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2007. 4. 16. 주간조선 19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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