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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와 강한 일본

고이즈미와 강한 일본  

김경민(한양대 국제정치 교수)

일본 열도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탄생하게 되었다. '고이즈미' 라는 말은 '작은 샘' 이라는 뜻인데 작은 샘이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파벌정치의 큰 물줄기를 바꿔 놓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총리에 올라서게 돼 일본열도는 사뭇 기대가 크다.

고이즈미가 총리에 선출된 것은 전통적으로 파벌정치를 구가하는 일본으로서는 대단히 예외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민당내 주류파인 하시모토 전 총리의 총리 재임명이 거의 확실시되었던 상황에서 고이즈미가 급부상한 이면에는 다음 두가지 요인이 어우러져 있다.

첫 번째 요인은 집권 자민당 내에 위기감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들은 '그 사람이 그 사람' 인 자민당 장기집권의 파벌정치에 식상할 만큼 식상해 있고 무언가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자민당 스스로가 개혁적으로 대처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가 승리한 선전전략들 중 가장 중요한 슬로건은 '탈파벌전략' 이었다. 이는 자민당을 바꾸고 일본을 바꾸겠다는 개혁바람을 일으키며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일본 국민들의 목마름을 말이나마 축축이 채워주는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강력한 리더십에의 기대감이다. 일본 국민들은 10년째 지속되고 있는 장기 불황에 희망을 잃고 있다. 경제대국 일본을 만든 정권이 자민당 정권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면 언제 그랬냐하는 것이 민심이다. 자민당의 일본정부는 엄청난 재정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경기회복정책을 펼쳤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과감한 구조개혁과 부실채권의 처리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고이즈미에 일본국민들은 강한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리더십에의 기대감은 비단 경제분야에서만은 아니다. 여타 후보들처럼 고이즈미도 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한 주변국의 관여는 내정간섭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자들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스 신사참배에 대해서도 공식참배 의사를 밝혔다.

또 군대의 보유와 무력행사를 금지하고 있는 일본 평화헌법 제9조도 개정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확실히 했다.

고이즈미를 포함한 여타 후보들이 국제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이토록 강경한 발언들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는 일본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대한 화답의 표시가 강경발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일본 국민들은 종전 50여년을 보내면서 투철한 근면성으로 경제대국 일본을 건설했지만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은 보통의 중진국에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고 있으니 그로 인한 자괴감과 상실감은 새로운 비전을 보여 줄 지도자를 갈망해 왔다. 그래서 모든 후보들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일본국민들을 위무하는 초강경 발언 일색인 것이다.

고이즈미는 이러한 국민의 요구에 시발점에 선 인물에 불과하다. 과거 몇 년간 일본의 행적을 뒤돌아 보자. 언감생심 어림도 없었던 국가와 국기에 대해 법제화를 성취시켜 일본 민족주의의 기치를 회복했고 미국과의 신가이드라인 안보정책으로 한반도와 대만 해협 유사시 자위대가 출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고 급기야 교과서의 역사왜곡도 이루어지고 말았다.

이는 일본이 무엇을 향해 가고자 하는 것을 짐작케 해주는 행보이다. 남은 것은 평화 헌법의 개정일 것이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에 획득이 될 것이다. 이제 일본은 고이즈미를 총리직에 내세움으로써 당당하고 본격적인 강대국 일본,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일본 만들기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경향 2001년 4월 26일 '시론' 기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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