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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07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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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왕실의 그늘

일 왕실의 그늘, 마사코의 한숨 연금, 재방북, 이라크 그리고 왕실. 최근 일본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 4대 화제다. 나루히토 왕세자(44)의 ‘폭탄발언’으로 불거진 왕실 관련 소동은 정치적 파장이 크진 않지만 국민들에게 주는 충격은 상당하다. 온순하기로 이름난 그는 지난 10일 유럽순방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부인) 마사코의 경력과 인격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비통한 심정을 토해냈다. 왕세자의 항변은 대를 잇는 데 전념하라는 압력을 견디다 못해 우울증에 걸려 요양 중인 마사코(40)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했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이미 한차례 유산을 겪은 뒤 딸을 낳은 마사코에게 사내아이를 다시 낳으라는 압력이 얼마나 큰 정신적 고통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더욱이 외교관 자녀로 오랜 외국생활을 경험했고 직업 외교관으로 활약했던 그에게 ‘대잇기’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외국 방문을 봉쇄하는 것은 삶의 보람을 빼앗는 인격침해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그를 동정하는 여론이 높아져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의 ‘3적’이니 하면서 ‘범인찾기’ 소동이 벌어졌고, 쓸데없는 출산 압력을 막기 위해 여성 천황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더 커지고 있다. ‘마사코의 비극’은 늘 황색신문의 조롱거리가 되거나 미혼모와의 결혼도 그다지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열린 유럽 왕실에 견줘 터무니없이 폐쇄적인 일본 천황제의 단면을 잘 드러내주는 사례다. 그렇지만 별난 이웃나라의 이야깃거리 정도로 넘기기에는 천황제가 갖는 역사적 무게가 너무 무겁다. 2차대전 패전 무렵 핵폭탄을 맞으면서까지 일본 지도부가 사수한 것은 국민의 생명이 아니라 천황제였다. 일본 지도부의 이해와 연합군사령부의 점령통치 필요성이 맞아떨어져 상징적 천황제 유지로 타협이 이뤄졌고, 이듬해인 1946년 당시 일왕 히로히토는 ‘인간선언’을 했다. 이후 유럽 왕가들이 몰락하거나 사람들 속으로 섞여들어가는 사이, 일본 우파는 일왕을 끊임없이 신에 가까운 성역의 자리에 다시 올려놓으려 안간힘을 써왔고 많은 성과도 거뒀다. 88~89년 히로히토가 쓰러져 숨질 때까지 100일 넘게 ‘자숙’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열도를 침묵으로 몰아넣은 히스테리는 천황제의 권위가 어느정도인지 실감케 했다. 이번 사건은 일왕가를 이끌고갈 왕세자마저 극단적 표현을 써가며 저항해야할 만큼 거대한 우파 세력의 힘을 엿보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국기·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이들 우파가 가장 우려하는 것이 바로 국가주의의 구심점으로 삼고 있는 천황제의 균열이다. 그것이 일왕가의 대가 끊기는 데서부터 시작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이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 전후체제의 대명사인 평화헌법과 상징적 천황제는 곧 환갑을 맞는다. 일본이 자랑스러워 할만한 평화헌법은 누더기가 돼가고 있지만, 정작 국민 의사와 무관하게 금기의 영역에 자리잡은 천황제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만약 일본 우파의 팽창주의 움직임이 본격화한다면 그 중심에는 천황제가 서게 될 것이다. 일왕가가 원하든, 원치 않든. 박중언 도쿄 특파원 parkje@hani.co.kr  2004.6.1.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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