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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08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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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얼굴을 한 일본외교

여러 얼굴을 한 일본외교 중세 유럽의 십자군은 이른바 ‘예수의 면류관’을 이교도로부터 지킨다는 명분 아래 중동으로 파병됐다. 그러나 실제로 십자군 전쟁의 목적은 정치적, 물질적 목적의 달성에 있었다. 다시 얘기되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평양방문 계획의 목적은 지난번 첫 방문 직후 귀국한 일본인 실종자 5명의 가족들을 돌려 받기 위한 것이다. 북한 특수기관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실종자 문제는 1990년부터 북-일 국교 정상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장애물은 아니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첫 방북 당시 이 문제와 관련해 유감을 표명했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당시 이 사안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평양 당국은 더 이상의 사태 발전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태의 추이는 북한의 희망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고국으로 귀환한 납북자 5명은 가족이 잔류한 북한으로 다시 돌아오기로 돼 있었으며 완전한 일본 귀환은 향후 합의과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일본으로 일시 귀국한 납북자들은 일본에 잔류하게 되고 문제는 북한 내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일본 송환 여부와 북한 당국으로부터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반북 정서가 일본내에 팽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납북 일본인들은 60년간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 북-일 관계의 비극적 희생양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은 외교전에서는 좀더 합목적적인 수단으로 바뀐다. 일본은 납북 일본인 문제를 활용해 북핵 6자회담에서 좀더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자 한다. 지난 20여년 동안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일본인 실종자 문제가 주요 화두로 떠오른 데에는 아마도 미국의 훈시가 있었을 것이다. 납치문제와 관련한 미-일의 공조 덕분에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고통받은 수백만 한국인들에 대한 보상문제도 제기될 만했다. 그러나 일본내 일각에서나마 한인에 대한 보상문제가 유사하게 제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일본인 실종자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양보와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아전인수 격의 여론만이 조성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발생한 이라크 무장세력의 일본인 납치사건과 관련해 북한에 의한 납북 일본인 사건을 대대적으로 문제삼았던 수많은 인권 운동가와 일본 국민들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른 시일 안에 피억류자들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정부에 압력을 넣을만도 한데 오히려 일본 내 여론은 이라크 내 일본인 인질들과 그 가족들을 철부지 취급하면서 냉대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일본 언론조차도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하기로 한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와의 약속을 이행해야 하는 고이즈미 내각의 입장을 일본 여론이 적절하게 뒷받침해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미국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 4월 말 발표한 테러국가 명단에 여전히 북한을 포함시켰다. ‘한 번에 한 마리씩’이라는 원칙에 따라 미국과 일본은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 금융기구의 북한 진출을 철저히 봉쇄하면서 궁극적으로 북한의 외부 접촉을 여전히 차단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과 일본의 동맹국인 한국조차도 지난 수년간 늦은 속도지만 북한 내에서 경제개혁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북한경제 현대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조언과 요구를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일본은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판단이 설 경우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의무라고 주장하면서 세계 각지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이른바 자유언론이라는 일본 언론이 납북 일본인 문제와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는 인도적인 일본 정부와 자유로운 일본 언론의 이미지와는 다소 다른 것 같다. 자국민의 안전문제는 여타 국가와의 관계, 특히 미국이라는 동맹국과의 외교적 복무, 그리고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향수와 연계하여 다루기보다는, 평소 일본이 자주 주장해 온 것처럼 인도주의와 정의 그리고 국제법의 테두리 내에서 평가하고 대응해야 할 일이다. 알렉산드르 제빈/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문제연구소 한국연구센터 소장 2004.5.18.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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