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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15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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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만 기억하는 일본

승리만 기억하는 日 꼭 100년전인 1904년 2월10일. 일본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러·일전쟁이다. 실질적인 전투는 선전포고 이틀전인 8일 일본군이 랴오둥(遼東)반도 뤼쉰(旅順)에 주둔했던 러시아 함대에 포격을 가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일본은 한반도를 차례로 짓밟고 1905년 5월27일 동해에서 일본 함대가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퇴시킴으로써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결국 대한제국은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 러·일전쟁 100년 뒤인 2004년 2월10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를 좌장으로 한 초당파 의원 40여명은 도쿄 중심부에 있는 메이지(明治)신궁을 참배했다. 메이지신궁은 러·일 전쟁 당시 일본 천황인 메이지의 위패가 있는 곳이다. 히라누마 다케오(平沼糾夫) 전 경제산업상은 참배 뒤 “메이지 시대 사람들은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을 하나로 해 국난에 대처했다. 그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조만간 ‘일·러전쟁을 배우는 모임’을 발족할 예정이다. 일본 보수파의 대표 언론인 산케이 신문은 지난 3일부터 러·일전쟁 100년 기획기사를 내보면서 당시 전쟁은 해군, 육군뿐 아니라 수많은 일본인이 전장으로 가거나 후방을 지원한 ‘국민의 전쟁’이었다고 규정, 잊혀진 표현인 ‘열도 일체론’을 거론했다. 우파 성향의 학자들은 “동양의 소국인 일본이 남하정책을 펴던 제정 러시아를 물리침으로써 세계사의 물결을 돌렸다”며 러·일전쟁의 승리를 위대한 일본의 승리로 치켜세우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역할 확대를 주장하는 일본인에게 100년전의 전쟁은 일본의 힘을 만방에 떨친 교과서다. ‘열강의 시대’ 때 사는 법이었던 군사력 증강과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않는 국익 최우선 외교력은 냉전이 끝나고 ‘복합 국제사회’로 변한 현재도 적용되는 교훈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되돌아보자. 러·일전쟁 승리로 자만심을 갖게 된 일본은 한일합방,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을 잇달아 일으켜 결국 스스로의 몰락을 초래했다. 100년전의 교훈은 일본이 옛 영화를 되찾는 게 아니라 대립의 병폐을 깨닫고 국제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일 게다. 〈도쿄/박용채특파원 pyc@kyunghyang.com〉 2004.2.11.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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