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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15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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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망언' 뿌리 드러났다

이시하라 '망언' 뿌리 드러났다
일본 중의원 선거 지원에 나선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작심이라도 한 듯 연일 인접국가의 자존심을 짓밟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한일병합은 "당시 한국인 정치가가 합의하여 결정한" 것이며 "일본의 식민지주의는 인도적이고 인간적"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다. 일본인 납치문제로 북한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다 이번엔 각성제 반입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들어 북한에 대한 보복공격을 주장하기도 한다. 오는 9일 선거일까지 또 무슨 '망언'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노릇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시하라 지사의 일련의 음험한 의도적인 발언이 단순히 극우파 정객의 객쩍은 허사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시적으로는, 해방 이후 반세기에 걸쳐 구보타.사토.후지오.오자와.와타나베.에토.아소 등 30차례를 넘게 이어지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과 사상적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공시적으로는 일본 국민 사이에 광범하게 존재하는 '이시하라 총리 대망론'처럼, 현재의 일본이 그와 같은 정치인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고이즈미 총리와 이시하라 지사의 동종의식은 고이즈미 내각 출범 당초부터 지적돼 왔다. 고이즈미가 실패하면 그 다음은 이시하라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자민당의 지도부는 이시하라의 데마고기(demagogy)에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속내를 내보이기도 한다.

그동안 일본에서 보수와 우익을 가르는 하나의 지표 역할을 해온 헌법 개정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하다. 자위대는 군대이므로 국군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며 따라서 육.해.공군 기타 전력의 보유를 금지한 헌법 제9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아사히 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 출마한 자민당 후보의 90%가 헌법 개정과 이를 통한 안전보장 강화에 찬성을 표명하고 있다.

이시하라의 '망언'은 선거를 앞두고 보수 우익세력을 결집시키고 이를 사회 전반으로 전염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1년 역사교과서 왜곡을 주도했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대표가 거들고 나서는가 하면, 전후세대로 민주당의 선거유세에 나선 마쓰자와 가나가와현 지사도 "일본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모두 좀도둑"이라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여기에 이시하라가 '망언'을 통해 인접국가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키고, 고이즈미는 이를 이용해 안보 및 치안 강화라는 보수 우익의 오랜 숙원을 아무런 국민적 저항 없이 완수하는 절묘한 숨은 그림찾기가 엿보인다. 자민당-민주당 양당의 유례없는 대접전과 군소 정당의 퇴조가 점쳐지는 이번 선거전에서 이시하라의 '망언'은 보수 우익세력의 표밭을 일구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구조적으로 21세기를 앞두고 일어난 반전.평화.민주주의를 기치로 하는 전후적 가치이념의 총붕괴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의 보수진영에 1999~2000년은 '전후 반세기 동안 꿈꾸어 오던 숙원을 불과 몇 개월 만에 실현하는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될 것이다. 주변사태법.통신방수법.신주민대장법.국기국가법의 제정과, 개헌을 목표로 하는 '헌법조사회'의 설립 등으로 안으로 인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고, 밖으로 국가주권을 강화하는 일련의 반동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본의 과거 회귀.반동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평화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김대중 정권은 위기의 소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본 문화를 단계적으로 개방하고 역사 문제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듯한 '대일(對日) 햇볕정책'을 추진해 왔다.

'망언'의 정치인 이시하라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보수우익의 견제역할을 해온 진보세력의 좌절과 무력감의 확산,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적 경제불황으로 자신감을 상실한 일본인 전반의 공격성 증대와 풀뿌리 파시즘의 만연, 그리고 '제국'미국의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일본에 대한 새로운 역할 부여와 이것을 호기로 하여 독자적인 군사역할을 강화하려는 보수 우익.강경파의 대두라는 일본을 둘러싼 정치.경제.사회적 풍토를 자양분으로 하여 자라나는 독버섯 같은 존재로 근원적인 대처가 절실한 때다.

이향철 광운대 교수.일본학 2003.11.6.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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