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우파의 꿈 가정(假定) 1. 북한 핵 사태가 극단적 상황으로 흘러 미국과 한국이 대북 처리를 둘러싸고 부딪힐 경우 일본은 어느 편에 설까. 필자의 생각은 미국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에 미국은 한국에 비해 훨씬 크고 소중한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두가지 단초가 있다. 지난 6~7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그룹(TCOG) 회의에서 일본은 대북 유화 자세를 보인 한국보다 ‘북한 핵포기가 최우선 선결요건’이라는 미국의 편에 섰다. 1993~94년의 북한 핵 위기때도 일본은 미국의 대북 공격 시나리오에 대비, 난민 대책 등을 준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假定) 2. 북한 핵 사태가 평화롭게 해결되면 일본의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다. 북한이 일본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핵문제를 풀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북한에 납치문제는 핵문제의 뒤편에 자리한다. 이는 지난해 9·17 북·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에게 납치사실을 인정한 데서도 쉽게 추론이 가능하다. 일본 정부내에서도 핵문제만 해결되면 북·일관계는 자연스럽게 풀려나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북·일관계가 정상화하면 일본의 한반도 문제 발언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 핵 사태를 놓고 일본의 움직임을 얘기하는 것은 안보 측면에서 일본내 움직임이 과거와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요즘 미국 공화당 정치인과 보수 논객들의 백가쟁명식 북한핵 해법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우파들은 주한, 주일미군 철수 얘기나 일본 핵무장론에 귀가 솔깃한 표정이다. 산케이 신문은 지난 5일 워싱턴 포스트지에 게재된 ‘일본 핵무장론’ 칼럼을 소개하면서 “칼럼의 주장이 현실성이 결여된 것이긴 해도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의 대변(代辯)이라고 할 수 있어 파문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동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철수할 경우 일본은 자연스럽게 방위력을 증강할 수 있는 구실을 갖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등장한 ‘시장가치의 동맹’이라는 논리는 흥미롭다. 아가와 나오유키(何川尙之) 주미 일본공사는 최근 일본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국가간 안전보장 문제를 염두에 둔 기존 동맹은 테러리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위협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제는 경우에 따라 이해를 함께하는 이른바 ‘시장 가치의 동맹’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핵무장은 국민감정과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볼 때 현명한 선택으로는 생각지 않는다”면서 “미·일 동맹 가치는 동맹 자체가 아니라 미국 및 국제사회가 직면한 위협 제거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 여부로 결정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일본의 적극적인 공헌을 주장한 셈이다. 이같은 주장은 북한 핵문제를 계기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일본 우파의 논리와 맥을 같이 한다. 실제로 일본 우파 논객들은 지난해 10월 북한 핵문제가 제기된 뒤 ‘자위대의 불필요한 발목을 잡지 마라’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금하고 있는) 헌법 해석을 바꿔라’ ‘테러와 싸우는 강한 사회를 만들자’는 등 ‘군사대국 일본’을 외치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한걸음씩 이를 현실화시키고 있다. 일본의 최신예 전투함인 이지스함은 대 테러전을 수행한다는 명분으로 지난 6일 인도양에 배치됐다. 미사일 방어(MD) 계획은 연구 단계에서 개발 단계로 이행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위대의 ‘부수적 임무’로 규정된 유엔평화유지활동(PKO)도 ‘본래 임무’로 격상시키는 방안이 추진중이다. 오는 20일부터 시작될 정기국회에서는 유사입법 문제가 다시 논의되며 자민당은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우파들의 숙원인 ‘보통국가 일본’의 밑그림이 서서히 윤곽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당당한 군사대국으로 세계 곳곳에 ‘히노마루’를 휘날리며 세계의 파수꾼을 자처할 일본을 볼 날도 멀지않은 듯 하다. 〈박용채/도쿄특파원〉 2003.1.9.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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