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정부는 재일동포에게 무엇인가 재일동포들은 흔히 자신들을 ‘기민’(棄民), 한국 정부의 재일동포 정책을 ‘기민정책’이라고 부른다. 식민지시대에 나라 잃은 설움을 겪을 만큼 겪고 해방을 맞이해 “이제는 독립된 조국이 생겼으니 처지가 달라지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근본적으로 개선된 것이 없는 상황을 ‘분노반, 체념반’으로 일컫는 표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 정부의 재일동포 정책은 ‘기민(欺民)으로부터 출발한 기민(棄民)정책’이다. 1965년 맺어진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동포의 징용·징병 피해에 대한 권리가 소멸됐다는 일본 사법부의 최근 판결에 대해 묵묵부답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일본 사법부의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동포의 권리 회복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하고, 동의한다면 청구권협정 때 일본으로부터 받은 3억달러의 무상자금으로 이들에게 배상해줘야 하는 모순된 처지에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다. 아마 당시 협정에 관여한 당국자들은 동포의 권리 문제를 애매모호하게 처리해놓고 “시간이 흘러가면 잊혀지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 뒤의 당국자들도 애매한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협정이 잘못됐으니 고치자고 일본 정부에 제의하는 것도 외교상 간단한 일이 아니고, 군대위안부 문제처럼 “우리 정부가 알아서 보상하겠다”고 선뜻 나서기도 재정상 어려운 일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국 정부가 동포에게 대단한 빛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한국 정부가 동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하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이마저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 동포들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북한이 저지른 일본인 납치 사건 때문에 일본 사회로부터 해방 이래 가장 심한 정신적·물질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총련계뿐 아니라 민단계도 상당수 다니는 조선학교의 학생들은 직접적인 폭력에 노출돼 있고 많은 성인들도 밖에 나서기가 무서워 두문불출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지난달 23일 동포 작가인 김석범·양석일씨 등이 납치 사건을 계기로 일고 있는 일본인의 동포에 대한 폭력 및 해코지의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는 최근 동포들이 겪고 있는 여러가지 처절한 피해 사례들이 보고됐다. 이들은 한국 정부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체념한 때문인지 일본 사회를 향해 “죄없는 재일동포에게 분노를 돌리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이 일이야말로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하고 묻고 싶었다. 오태규 도쿄 특파원/ohtak@hani.co.kr 2002.12.3.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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