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든다”
일본 ‘핵무장’ 발언의 속내/핵 재처리·로켓 기술 등 ‘위협적’ 수준
월드컵 개막식이 열린 5월31일,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은 일본이 1967년 이래 고수해온 ‘비핵 3원칙’을 부정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일본 정부가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하면서 선언한 비핵 3원칙이란, 핵을 보유하지도, 제조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 5월13일에는 아베 신조 관방 부(副)장관이 ‘핵 보유 가능’ 발언을 했다. 아베 부장관이 와세다 대학의 한 강연회에 참석해 일본의 보수 정치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말을 인용하며 “일본이 핵을 보유하지 말라는 말은 일본 헌법 어디에도 없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최근 몇 달 사이 정치인과 정부 고위 관료의 입에서 ‘폭탄성’ 발언이 잇달아 쏟아지자, 반핵 단체 등 일본 사회 일각은 이를 ‘일본 정부가 핵 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이행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현재 일본은 장차 대륙간탄도탄(ICBM)으로 사용될지도 모를 로켓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길이 50.3m에 무게 289t, 그리고 2단계로 추진되는 ‘H-Ⅱ’가 바로 그것이다. 이 로켓은 지난해 8월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이 로켓은 명목상 ‘인공위성 발사용’이지만, 미사일에 엔진을 달면 가공할 무기가 될 수 있다.
일본이 보유한 고속 증식로나 재처리 기술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현재 상업용 핵 발전소를 51개 운전하고 있다. 핵 발전소에서는 잘 알려져 있듯이 ‘핵 쓰레기’가 나온다. 문제는 일본이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순도 높은 플루토늄을 추출할 기술을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 등 핵 전문 연구기관에서 몰래 들여왔다는 것이다. 순도 93% 이상에는 무기로 쓰일 수 있다고 해서 ‘무기급 플루토늄’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일본 몬쥬 고속 증식로에서 ‘실험용’이라는 명목으로 생산 되어온 플루토늄239는 순도가 98%여서 아예 ‘초무기급 플루토늄’으로 분류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국민 사기극
재처리 시설 또한 위협적이다. 일본 핵 발전소에서 발생한 사용후 핵 연료는 앞으로 로카쇼무라에 있는 재처리 시설로 보내질 예정이다. 문제는 로카쇼무라 시설이 플루토늄 수백 t을 축적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점이다. ‘플루토늄 액션 히로시마’ 등 일본의 반핵 단체들은 이같은 상황 판단에 따라 그동안 일본이 고수해온 ‘비핵 3원칙’까지 비판하고 나섰다. 비핵 3원칙에는 고속 증식로나 재처리 시설 따위 핵 무기 관련 기술 개발·보유를 규정하는 아무런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플루토늄 액션 히로시마의 오바 사토미 대표는 아예 “일본 정부의 비핵 3원칙은 국민 사기극이다”라고 단언한다.
한국의 반핵 단체들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녹색연합 대안사무국 석광훈 부장은 "일본의 핵 무기 개발 태세는 이미 자기 완결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일본의 핵 무기 개발을 저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응 프로그램이 나와야 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이 던지는 폭탄성 발언은, 이같은 측면에서 사실상 눈과 귀를 다른 데로 돌려놓기 위한 위장 전술이라는 것이다.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시사저널660호. 2002.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