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위험한 유사입법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는 드디어 4월17일 유사법제 관련 3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입으로는 일본경제, 일본사회의 개혁을 말하면서 그를 위한 입법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자위대 함선의 인도양 파견을 위한 테러지원입법을 성립시킨 데 이어 이 법안의 성립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 법안의 취지를 “평시에 전쟁을 잊지 않고 준비해두면 우환이 없다”라는 통속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이 자명한 국가의 원칙이라면, 왜 과거 50년간 일본의 총리들은 유사입법을 제정하지 않았는가. 사회당을 중심으로 국민들 사이에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었다는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위대는 결함 있는 시스템이라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결함 있는 시스템에 거액의 국비를 투입해 온 책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일본은 2차대전 뒤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을 갖지 않는 헌법 9조와 함께 출발했다. 애초 이것은 비무장 아래 연합국과 유엔에 의한 안전보장에 의지해 나라의 안전을 꾀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연합국의 축인 미국과 중국이 1950년에 한국에서 전쟁을 하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헌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게 됐다. 53년 일본 정부는 자위를 위한 한정된 군사력을 가지는 것은 합헌이라는 해석개헌을 하고 자위대를 발족시켰다. 안전장치 풀린 자위대 그러나 자위대는 어디까지나 헌법 9조의 아래 있는 특수한 군사력으로서 2중3중의 안전장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반복해 말했던 것처럼, 전전의 일본은 자위의 이름으로 침략을 행했던 것이고, 군사력이 진정으로 자위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는 특수한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은 군법회의가 없고, 군사기밀법이 없고 유사입법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위를 위한 군사행동, 방위출동이 총리에 의해 명령된다면 자위대는 비평화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강요받게 된다. 본래라면 방위출동 때의 비상조처가 법제화돼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을 하지 않고 왔다는 것은 그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는 총리의 명령으로 이례 중의 이례, 초법규적인 조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총리는 사후적으로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침략을 받는다면 총리는 그런 명령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사정은 전후 제도의 결함이 아니고 전후 제도 특징을 이루는 것이다. 즉 자위대에 채워진 안전장치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사정은 한국전쟁 이후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진영이 일본을 침략해 오는 현실적 가능성은 없다고 미국 정부도 일본 정부도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냉전이 끝나고 미국 단독의 초대강국 체제가 출현했다. 다른 편에서는 북한의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위기에서 오는 핵개발 벼랑끝 외교의 가운데서 북-미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 한국 유사가 94년 처음으로 현실화했다. 53년 이래 북한의 군사력은 한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94년 위기 이래 한국 유사에 대비한 체제의 결함, 일본에서의 협력체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압력을 일본에 체계적으로 가해왔다. 미-일 안보조약의 재정의, 신가이드라인, 주변사태법의 재정은 모두 이런 압력에 대한 일본의 대응이다. 만약 불행하게도 북한이 38도선을 넘어 한국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면, 일본은 우방국으로서 한국을 지원하는 미군에 협력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행동을 취한다면, 그것은 북한이 자국에 대한 미국으로부터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할 때에 한정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결론이다. 또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의 한 국가로 난폭하기 짝이 없는 단정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한국 유사를 위한 미국의 요청에 전적으로 응하는 체제를 준비하는 것은 위험한 도발이 될 것이다. 북한이 자국에 대한 군사행동 준비가 완성됐다고 오판할 우려가 있다. 근시안적인 미국 추수정책 다른 한편에서 이 법으로 도움을 받을 한국 자체가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을 환영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이 북한과의 긴장을 풀기 위한 외교적 노력, 북-일국교교섭을 촉진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을 `납치사건의 해결 없이 교섭 재개 없다'는 태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채, 유사입법의 법제화를 선행시키는 것은 국가전략이 없는 근시안적인 미국 추수정책에 다름 없다. 또 스스로의 안전보장을 생각하지 않는 태도이다. 이번에 제출된 `무력공격사태법안'은 자위대법에 정해져 있는 `무력공격'과 구별되는 `무력공격사태'라는 새로운 개념을 설정했다. 그 내용은 `무력공격'에 더해 “사태가 긴박해 무력공격이 예측되는 단계에 이른 사태”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으로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이 없어도 그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지 않아도 긴박한 사태에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조선 유사에 출동하는 미군을 돕기 위해 유사입법이 발동되는 것이다. 일본은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다.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2002/4.22/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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