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 힘실은 日총선
=개헌반대 공산·사민 참패…사회 분위기 반영=
‘20→9’ ‘18→6’. 9일 치러진 일본 총선거에서 야당인 공산, 사민의 의석수 변화다.
일본의 평화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두 정당의 의석수 반감은 일본 사회의 현재 분위기를 반영한다. ‘호헌(護憲)의 상징 인물’인 도이 다카코(土井多賀子) 사민당 당수가 34년간 지켜온 지역구에서 자민당 후보에게 패배한 것은 ‘달라진 사회’를 실감케 한다. 도이 당수는 비례대표로 간신히 의원배지를 유지했다.
사민당 관계자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도 당연하다는 풍조다. 9·11테러, 납치 문제, 북핵 문제…. 이미 그런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위원장은 선거가 끝난 뒤 “헌법 개정 반대에 힘을 쏟았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토로했다. 두 당은 이번 선거 패배로 존망의 기로에 섰다.
사실 이번 총선거에서 헌법 개정 문제는 큰 쟁점이 되지 못했다.
선거를 양당 구조로 몰고간 자민당과 민주당 지도부 모두 헌법 개정에 한 목소리여서 변별력이 없었던 데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 바람을 되돌리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민당과 민주당은 각각 공약에 ‘2005년에 헌법개정 초안 마련’ ‘창헌(創憲·새 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문제는 향후 움직임이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237석, 민주당은 177석을 얻었다. 무소속 3명이 10일 자민당에 입당한 것까지 합하면 두 당의 의석은 417석이다. 중의원 전체의석 480석의 86%다. 여기에 가헌(加憲·헌법 보완)을 당 정책으로 결정한 공명당까지 포함하면 93%에 이른다. 아사히(朝日) 신문이 의원 개인별 편차를 고려해 당선자 480명의 성향을 분석한 결과 개헌론자는 320여명에 달했다.
개헌에 필요한 의석인 3분의 2를 넘어선 셈이다. 더구나 이들은 한결같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선제공격, 일본의 방위력 증강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임기중 개헌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자민당 내부에서는 이미 헌법조사회 등을 통해 구체적인 개헌안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의 정치 평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는 “자민당이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개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헌 반대세력이 적지않게 포진한 민주당의 분열을 꾀해 의석을 늘리면서 숙원인 개헌 작업을 본궤도에 올리는 일석이조의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6월 전시대비법인 유사법제를 제정한 상황에서 전쟁 포기 및 교전군 부인, 육·해·공군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에 손질이 가해질 경우 일본은 ‘보통 군대’를 보유하며 전쟁을 할 수 있는 2차대전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도쿄/박용채특파원 pyc@kyunghyang.com〉203.11.11 .경향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