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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4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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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와 동북공정 ③국제법적 해법


간도에 한인 이주 '선점(先占)원칙' 근거 한국땅
 간도와 동북공정 ③국제법적 해법

자연적 형성된 無主 중립지대 실효적 지배권·역사적 權原이 주인 결정
우리 정부는 자료확보 영유권 주장해야]



지난해 1월 중국 선양행 고려항공기에서 내려다본 백두산 일대의 모습. 간도는 우리 민족의 정기가 서리고 땀이 어린곳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간도 분쟁은 백두산정계비에 근거해 국경을 어디로 할 것인가를 따지는 법률분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분쟁은 실상 간도에 대한 영유권(領有權ㆍ점령하여 소유하는 권리) 분쟁이며, 동시에 정치적 분쟁이다.

지금까지 간도 분쟁의 논쟁점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백두산정계비의 가치, 둘째 비문 내용, 즉 토문강의 실체, 셋째 을유ㆍ정해 국경회담의 효력, 넷째 1885년 이후의 교섭사 및 선후장정에 대한 견해, 다섯째 역사적인 사실의 진위여부.

일찍이 한국과 일본은 정계비를 인정하고 토문강을 송화강의 원류로 보았으나 청은 정계비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보았다. 한ㆍ일은 두 차례 국경회담을 모두 무효로 간주한 반면, 청은 두만강 상류 200여리만 미정일 뿐 나머지는 두만강으로 국경이 획정되었다고 보아 일찌감치 견해가 엇갈리고 있었다.

백두산정계비는 국제법상 효력 없어

간도문제가 백두산정계비를 조약으로 하는 국경분쟁으로 간주되기 어려운 것은 정계비 건립과정에 나타난 국제법상의 문제 때문이다. 두 나라는 문서로 국경을 합의한 적이 없다. 설사 정계비가 어느 정도 효력을 지닌다고 할지라도 건립 당시 조선의 대표인 박 권은 백두산 동행을 거부당했고, 그래서 비문에는 조약체결의 조선 대표인 박 권의 성명과 서명, 낙인이 없다. 당시의 실질적인 조ㆍ청 국경선이 반영되지 않는 착오까지 생겼다. 정계비를 국제법상의 국경조약으로 보기 힘든 이유다.

중국에서도 을유ㆍ정해 감계회담 때부터 백두산정계비를 심시비(審視碑ㆍ특정한 자리를 확인하고 기념으로 세우는 비)로 간주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정계비를 부정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오록정(吳祿貞), 왕숭시(王崇時), 서덕원(徐德源) 등이다.

왕숭시는 목극등(穆克登)이 백두산 등을 살핀 것은 청의 일방적인 변경시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고, 서덕원은 백두산정계비는 조ㆍ중 양국이 공동으로 설립한 것이 아니라 목극등이 압록강ㆍ두만강의 수원을 확인한 표지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정계비 건립 때의 공식적인 회담기록이 없으며, 비석에 대청(大淸)이란 청의 국명만 있고 조선 국명은 없다는 점을 들었다.

실질적인 국경 압록강ㆍ두만강 아니다

정계비 건립을 전후한 실질적인 국경선이 압록강과 두만강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여러 지도에서 드러난다. 두 알데(Du Halde)의 지도 중 레지의 비망록에는 “봉황성의 동쪽에 조선국의 국경이 있다”고 하였다. 또 ‘달단중화전도(達旦中華全圖)’ 중 ‘조선왕국지도(Kaoli Koue ou Royaume de Coree)’에는 평안(PING-NGAN)의 영문자가 압록강 대안의 변책선까지 표시되어 있다.

 
목극등과 동행한 화원이 그린 백두산정계비도. 왼쪽 맨 위쪽의 큰 산이 백두산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간도문제 연구자인 나이토 코지로(內藤虎次郞)는 일본 통감부가 간도파출소에 의뢰해 제작한 ‘포이합도하연안고적도’에 붙인 해제에서 현재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를 거쳐 흐르는 부르하통하 주변의 석벽과 흙무더기를 ‘동국여지승람’(조선 성종 때 제작)에 등장하는 조선의 봉수대로 보았다. 그는 나아가 “간도지방의 한인(韓人) 거주는 매우 오래된 것이며 월간에 생긴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볼 때 청이 베이징(北京)으로 중심무대를 옮겨간 후, 한족들이 만주에 들어와 토지를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조선과 청이 약정한 ‘봉금지대’의 경계는 압록강ㆍ두만강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봉황성 남쪽에서 압록강 수계를 안은 산맥을 포함하여 두만강 북쪽의 흑산령산맥을 포괄하고, 또 노야령산맥 이남의 포이합도하를 봉금지대의 경계로 볼 수 있다.

이 지역에서 간도문제를 직접 다루었던 일본 국제법학자 시노다 지사쿠(篠田治策)는 “간도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무인의 중립지대였다”고 말했다. 이 무인지대를 조선과 청이 함께 개간함으로써 중립의 성질은 상실되고, 단순히 무주지가 되었던 것이다.

조약체결권 없는 일제의 간도협약은 무효

국제법의 법리로 볼 때 간도협약은 효력이 없다. 일본과 청의 간도협약은 법적 근거가 을사늑약인데, 이는 국제법상 원천적으로 조작된 조약임과 동시에 강박에 의한 조약이기 때문에 무효이다. 따라서 간도협약 역시 효력이 없다.

제2차 대전후 처리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조치인 1943년 카이로선언, 1945년 포츠담선언, 미일강화조약, 중일강화조약 등에 의거해 보아도 무효임이 분명하다. 일본은 간도문제 해결을 위한 조약체결 능력이 없으며, 간도는 일ㆍ청간에 논의될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은 간도에 대한 주권을 포기한 일이 없고, 간도협약의 무효를 선언할 수 있다.

간도분쟁 쟁점을 알고 문제제기 나서야

한국과 중국이 간도지역에 완전한 국경선을 정하지 못한 것은 양국 간에 광활한 무인지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봉금지역은 시노다 지사쿠가 언급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형성된 무인무주의 중립지대였지만, 19세기 후반에 봉금이 해제되면서 무주지의 성격이 변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 영유권은 양국 중 누가 더 실효적인 지배를 행사하고 역사적인 권원을 갖는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간도분쟁의 해결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첫째, 국제법상 영토취득방법의 하나인 선점(occupation)의 원칙에 의거할 때, 간도지역은 한국 영토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선점의 원칙이란 무주지를 취득할 의사를 명백히 한 국가가 그 곳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그 지배사실을 이해관계국에 통고하면 선점지는 취득국의 영역이 된다는 논리다. 따라서 간도지역에 누가 먼저 이주하여 행정기관을 설치했는가가 중요하다.

둘째, 간도지역에 이주한 한ㆍ중 양국의 주민 비율을 고려해야 한다. 1900년대 한인 이주자는 간도지역 총인구 13만명 중 10만 명을 차지하였으며, 두만강 대안은 한인이 독점하는 등 한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셋째, 이 지역에서 어느 나라가 역사적으로 평화적 주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는가 하는 점이다. 팔마스(Palmas)섬 영토분쟁사건에 따르면 “영역 취득의 권원과 관련해 발견의 권원은 성숙되지 못한 것이며, 주권은 실효적 선점에 의해서만 확립된다. 성숙되지 못한 발견적 권원은 계속적이고 평화적인 주권 발현에 기인하는 실효적인 선점의 권원에 우선할 수 없다.”

넷째, 간도분쟁의 결정적인 시점을 어디로 정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봉금정책을 양국 간에 약정한 1627년, 백두산정계비 건립 해인 1712년, 을유국경회담이 시작된 1885년, 간도협약이 체결된 1909년, 장래 한ㆍ중간에 간도분쟁의 해결절차를 회부하기로 한 시점 등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중 어느 시점이 가장 유리할 것인가를 분석해야 한다.

다섯째, 국경 획정 때 자연적 국경, 순환 등 비법률적 요소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904년 영국령 가이아나_브라질 국경분쟁의 중재판결에서 실효적 지배에 의한 국경 획정이 불가능한 경우 ‘자연 선(line traced by nature)’에 따라 국경을 정한다고 하였다. 더불어 농경지대인 간도에선 한인에 의한 대규모 개간행위도 분쟁해결을 위해 법률적으로 고려할 요소이다.

현재로는 간도영유권 주장에서 한국이 우세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간도분쟁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의 사항을 철저히 분석해서 관련자료들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간도분쟁의 해결을 위해 우선 정부가 중국에 간도협약의 무효를 통보하고, 미해결된 간도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이다.

 

 

/이일걸 성균관대 강사ㆍ정치학 박사  2004.5.4.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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