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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군관들이 본 19세기 간도땅

정찰군관들이 본 19세기 간도땅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간도를 우리 민족의 땅으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는 누르하치가 청나라를 세운 뒤 찾아왔다. 청은 만주족을 이끌고 수도인 심양으로 들어갔다. 백두산 일대를 왕조의 신성한 발상지라 하여 봉금 지역으로 선포하고 비워뒀다. 이때 우리 동포들이 이동해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17세기 후반에 정계비가 세워지고, 19세기 후반에 청이 장악하려 하자 정계비 비문 해석을 달리하며 분쟁이 일어났다. 안변부사 이중하는 꼿꼿하게 담판에 임했다.

이중하가 담판하기 10년 전(1872년)에 참으로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군관 최종범-김태흥과 하급관리 임  석근이 밀파되어 1,500리를 정탐하고 돌아온 것이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의 강한 의무감을 갖고 임무를 수행해 〈강북일기〉라는 기록과 상세한 채색지도를 남겼다.

〈강북일기〉는 간도땅의 정황이 어떠했는가를 매우 세밀하게, 그리고 심정적인 요소를 빼고 냉정하게, 가감없이 보여준다. 간도에는 이미 회상제(會上制)라는 조선인 자치기구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간도의 작은 산맥인 노령(老嶺) 남쪽에 2개소, 북쪽에 2개소가 있었다. 4개 회상제의 우두머리를 도회두(都會頭)라고 불렀으며, 그 아래에 회상을 두어 각 마을을 관리하게 했다.

최종범 일행은 마치 이주하려는 사람들처럼 위장해 노령 남쪽의 화상 도회두인 신태(辛太)의 집에서 유숙했다. 신태가 관장하는 지역은 압록강 북안부터 400리에 이르는 지역의 18개 부락이었고 조선인 인구는 193호-1,673명이었다.
노령 남쪽 또 하나의 회상기구는 도회두 김원택(金元澤)이 관장하고 있었다. 그는 150리 지역, 조선인 인구 277호-1,466명을 통치했으며 22개의 휘하 회상을 두었다. 회상들 가운데 4명이 한족이라고 한 것을 보면 한족이 조선인 기구에 흡수돼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 도회두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예를 든 신태의 회상은 청국식 소총 85정, 대총(大銃) 20정, 화승총 48정으로 무장한 310명의 군사조직을 갖고 있었으며, 김원택의 회상 조직은 대총 20정, 청국식 소총 216정으로 무장한 420명의 군사조직을 갖고 있었다. 

책에는 홍진사 일가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홍진사는 가족과 머슴 수십 명, 추종자들 300명을 이끌고 평안도 강계에서 여유있게 압록강을 건넜다. 그러나 곧 홍호적(紅胡賊)의 습격을 받아 아내와 딸과 재물을 모두 빼앗기고 30여 명이 죽었다. 추종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정탐군관들이 동포들 조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면서 신분을 속인 것과 도회두들이 압록강을 건너오는 조선 토벌대의 공격에 대비했다는 기록은 사정이 복잡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당시 만주땅에 발호하던 홍호적 마적단으로부터 동포들을 지키려는 것이 주목적이었음은 물론이다. 

정탐군관들이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한 이 기록을 보면 그때가 간도땅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을 느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때 국력이 쇠할 대로 쇠해 천추의 한을 남겼다.   

〈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2004.3.11. 뉴스메이커 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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