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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두만강 국경선 획정 청의 고압적 정황 드러났다

압록강-두만강 국경선 획정 청의 고압적 정황 드러났다

1885년 청나라가 강압적인 태도로 두만강 국경선을 주장한 외교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비시(批示)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이 문서는 을유감계담판(국경회담)을 앞두고 청이 고압적인 자세로 압록강-두만강 국경선 획정을 요구한 정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끝부분에 적힌 '광서(光緖) 11년 4월 28일'이라는 날짜를 통해 1885년(고종 22년) 9월 을유감계담판이 열리기 5개월 전에 보낸 문서임을 알 수 있다.

 

문서를 공개한 한국장서가협회 신영길 회장은 "종주국임을 자처한 청의 태도는 '비시'라는 표현에서 잘 나타난  다"며 "비시란 '지시'와 비슷한 말로 청나라가 당시에 조선을 마치 속국으로 여기고 보낸 문서임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서는 '대청국(大淸國) 훈춘(琿春) 부도통아문(副都統衙門) 변무교섭(邊務交涉) 승판처(承辦處) 봉흠수(奉欽帥) 비유(批諭)'로 시작한다. '청나라 훈춘 지역의 국경외교를 담당하는 관청에서 지역 관리가 청 황제의 뜻을 높이 받들어 너희들에게 알린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장자인 신 회장은 한학자에 의뢰, 본문을 해석했다. 문서의 내용은 두만강 이북이 300년 동안 청의 땅인데 조선의 하급관리들이 조선의 땅인 것처럼 조정에 잘못 보고해 백성들이 개간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감계담판 열리기 5개월 전 문서
문서는 1m 길이의 두루마리 종이에 800여 자의 한문으로 씌어 있다. 〈뉴스메이커〉는 문서의 일부를 발췌했다. 

"정문(조선의 하급관리가 상급관리에 보고한 공문)에 의거할 때 너희들이 너희 땅에서 쫓겨나는 현상은 본디 가엽다 할 만하다. 너희들이 비록 변방의 백성이나 모두 천자의 아들일진대 만부득이한 일이 아니라면 어찌 차마 모조리 내쫓겠는가. 살펴보건대 천자의 나라와 너희 나라가 두만강을 경계로 한다는 것은 300년에 걸쳐 모든 사람이 아는 바로서 너희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 또한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너희의 정문(공문)에서 곤궁함으로 의리를 잃고, 대국의 땅에서 경작을 했느니 강변 지역이 황무지로 있다느니 등의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하늘을 참으로 속이기 어렵다는 것이 분명하다. 너희들의 민심을 보아도 그래도 공도(옳은 길)가 살아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본관이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너희들을 위해 성심으로 알려주니 너희 백성으로 하여금 모두 그 사실을 알게 하는 바이다.

(중략)

이를 승판처(외무를 담당하는 곳)를 통해 초록을 해서 열람케 하니 유지(황제의 교지)처럼 높이 받들어 너희 백성에게 모두 보여주어라. 그래서 너희들이 내쫓김을 당한 원인이 너희 관부(관청)에서 잘못 관리한 데 따른 것임을 알게 하라. 광서 11년 4월 28일."


문서는 국경에 대한 청의 인식이 어떠했는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두만강 이북의 땅이 청의 영토인데 조선의 관리들이 자신의 땅으로 잘못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소장자인 신 회장은 "청이 사실상 조선왕에게 보낸 이 문서는 거의 반말로 꾸짖는 문투"라고 말했다. 

문서에서는 조선에 대해 이등(爾等) 즉 '너희 나라'라고 지칭함으로써 종주국과 속국의 관계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계현 전 창원대 총장(외교사)은 "황제의 지시를 의미하는 '흠'(欽), 청 정부를 가리키는 '천조'(天朝) '천'(天)이라는 표현에서 줄을 바꿔 이 글자를 맨 위에 올린 것도 청의 종주국 행세를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문서의 내용 중 주목할 만한 사실은 조선인들이 이미 10여 년 전에 두만강 건너에 경작하고 있는 사실을 청이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계현 전 총장은 "이 문서는 두만강이 자기들의 영토라고 청이 강요해왔지만 당시 이곳이 계속 분쟁 지역임을 알게  해주는 사료"라고 말했다. 노 전 총장은 "청이 이런 분쟁 상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감계회담을 열고자 했던 정황이 이 문서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청의 요구로 5개월 후인 9월 을유감계담판은 시작됐다. 하지만 조선측 대표인 감계사 이중하는 백두산정계비 답사를 고집하며 청의 두만강 경계설정을 끝까지 반대했다. 청의 대표는 이중하와 함께 백두산정계비를 답사한 후 토문강이 송화강의 지류라는 이중하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하자 그냥 되돌아갔다. 

청 대표 이중하 주장 반박 못해
문서에서는 '천자의 나라가 살피지 못한 틈을 타 경작하고 (조선 관리가) 세금을 받아들였다' '(문제가 되자 청이)  이곳에 현(일종의 관청)을 설치하고 이 지역을 관찰했다'는 중요한 내용도 담겨 있다. 

인천대 노영돈 교수(국제법)는 "세금 징수 부분은 조선이 간도땅에서 이미 국가권력을 행사한 것임을 알게 해주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또 노 교수는 "청이 이 문서에서 두만강 국경선을 주장하며 자신의 논리를 펴고 있지만 이미 조선 관청에서 세금을 받은 후에야 자신들이 관청을 설치한 것은 이 땅이 과연 누구의 땅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문서를 공개한 신 회장은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간도영유권에 대한 주장을 각종 신문과 잡지에 실어왔다. 〈백두산정계비〉라는 시노다 지사꾸의 1930년대 저서를 완역, 소개한 것도 간도영유권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간도에 대한 관심 때문에 신 회장은 1980년 중반 당시에는 거금인 70만원을 주고 청계천의 헌책방에서 이 문서를 구입했다고 한다. 신 회장은 문서의 전체 내용과 해설을 간도협약일인 9월 4일을 맞아 논문으로 써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 뉴스메이커 560호 200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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