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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영.불어업협정에서 신한일어업협정과 같은 성격의 수역은 없다


'멩끼에 에끄레오 케이스는 신한일어업협정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례'학술토론회  

           -Minquiers-Ecrehos 諸島 사건 (1953) 평석  -

                                  이장희(한국외대 법대 교수)

I. 문제제기
1999년에 발효한 신한일어업협정이 독도영유권을 훼손했는냐를 둘러싸고 국내 학계간에는 물론 시민단체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영유권훼손불가 주장자가 내세우는 유력한 논거중에 하나가 멩끼에와 에크레오(Minquiers-Ecrehos) 도서 사건에 대한  ICJ  국제판례(1953.11.17) 이다. 즉, 동 ICJ 판결은 어업협정과 영유권문제가 별개의 것이라고 판시했다고 강변한다. 즉 어업문제와 영유권문제는 서로 별개이다라는 것은 신한일어업협정에서 한일 양국가의 특수한 합의일 뿐 이것이 국제법상 보편적 국제규범인 것처럼 일반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Minquiers-Ecrehos case에 대한 ICJ  판결 취지를 좀 더 정확하게 분석하여 독도문제와 정확하게 차이점을 진단 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설사  ICJ가 그렇게 판시했다 하더라도2)  Minquiers-Ecrehos case를 분석하여 볼 때,  신한일어업협정과 같은 중간수역이 없고. 지리적 여건과 당사자의 주장 등 여러 측면에서 독도와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구명하여  Minquiers-Ecrehos case를 독도문제에 평면 적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II. Minquiers-Ecrehos 제도
( United Kingdom v. France/1953) 사건개요
 
이 사건은 프랑스 해안 근처 영국해협(English Channel)에 있는 英領  Jersey島와 불란서 Chausey 島 사이에 위치한 Minquiers와 Ecrehos 두 섬과 그 부속영지의 소유권에 관한 영국과 프랑스간의 영유권 분쟁이다.  Minquiers와 Ecrehos는 영국령 Channel 군도의 하나인 Jersey 섬과 프랑스령 Chausey섬 사이에 위치한 작은 군도로서 19세기 말 이후 영국과 프랑스간에 그 귀속에 관한 다툼이 있었다.   두 섬 자체는 사람이 살수 없어 그 자체는 경제적으로 대단치 않았으나, 그 주위가 굴 양식장으로 각광을 받기시작하면서부터 영유권보다는 어업구역(조업구역)으로서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기 시작했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1839년 굴채취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여 공동어로 구역을 설정하였다.  그 후 이 두 섬을 둘러싸고 영유권분쟁이 구체화되었다. 실제로 1869년을 비롯하여 1938년까지, 그리고 1945-1950년에 걸쳐 크게 두 차례 도서분쟁이 발생하였다.  이 도서분쟁이 처음으로 가시화 된 것은 1875년 영국이 발부한 국고지급명령서(treasury warrant, 財務令狀)에 대해 프랑스가 항의했던 1876년 이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국고지급명령서 행위(주권표시. 발현)가 1839년 영불 어업협정에 위반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는 바다에서의 어업문제가 도서(육지) 영유권문제에 영향을 준다거나 혹은 양자가 무관치 않다는 입장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양국은 1950년 12월 29 특별협정(Special Agreement) 제1조 에서 이 문제를 재판으로 해결할 것에 합의하고 1951년 12월 5 ICJ에 제소하였다.
  
IV. 판결요지
 
 1. 실효적 점유에 직접 관계되는 증거  
 
양 당사국 모두 Minquiers 와 Ecrehos에 대한 원시적 권원을 가지며 그 권원은 계속 유지되었으며 상실한 적은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본 사건은 無主地의 주권 취득에 관한 분쟁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세의 여러 사건에 기초한 간접적 추정이 아니며, Minquiers 와 Ecrehos 군도의 점유에 직접 관계하는 증거라고 판시했다. 
 
2. 결정적 기일(critical date)
 
대개 영토문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있는 사실관계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적 요소가 다른 국제분쟁에서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국제판례는 이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할 시점으로 결정적 시점(critical date)를 들고 있다.
 
그와 같은 증거 판단을 위한 결정적 기일(critical date)에 대해서 영국은 분쟁이 구체화되어 재판소에 부탁하기로 합의한 1950년 12 27 특별 협정의 체결일을, 프랑스는 1839년 8월 2  ․불 어업조약의 체결일을 주장하였다.
 
 재판소는 양주장을 배척하고 주권에 대한 분쟁이 발생한 1886년(Ecrehos)과 1888년(Minquiers)을 결정적 기일로 택했다.  1839년 양국간의 조개어업에 관한 분쟁에 관하여 의견의 차이는 있었지만, 당시 문제의 군도의 주권에 관한 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한 어업분쟁이 발생한 것은 프랑스가 처음으로 주권을 주장한 1886년(Ecrehos)와 1888년(Minquiers)이다. 그러나 본 사건의 사정상 그 후의 행위라도 관계 당사국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는 목적으로 행하여진 것이 아닌 한 재판소에 의하여 고려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3. 어업조약과 영토주권문제와의 관계
 
“당 재판소는 본 사건을 재판함에 있어서 멩끼에-에크레오 諸島의 수역이 제3조에 의해 설정된 공동어로구역의 내측에 있는지 아니면 외측에 있는지 여부를 판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러한 도서들이 공동어로구역 내에 있다고 주장될지라도 재판소는 멩끼에-에크레오의 수역 내의 ‘공동어로구역에 관한 그러한 합의’(합의된 공동어로구역의 존재)는, 이들 도서와 岩島의 육지 영토에 대한 공동사용의 제도를 포함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Even if it be held that these groups lie within this common fishery zone, the Court can not admit that such an agreed common fishery zone in these waters would involve a regime of common user of land territory of the islets and rocks, since the Articles relied on refer to fishery only and not to any kind of user of land territory). 왜냐하면 그 (합의된) 제조항은 육지 영토에 대한 어떤 종류의 사용에 관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어업에 관해서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당 재판소는 공동어로구역에 관한 그러한 합의’는 당사국들이 도서에 관한 ‘주권의 표시’(a manifestation of sovereignty)를 포함하는 ‘추후행동’(subsequent acts)2)을 원용하는 것을 반드시 배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인정할 수 없다.(Nor can the Court admit that such an agreed common fishery zone should  necessarily have the effect of precluding the Parties from relying on subsequent acts involving a manifestation of sovereignty in respect of the islets)”
 
위 판결의 전반에서는 어업협정과 영유권문제는 별개라고 판시 하면서 영국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후반에서는 ICJ는 도서에 대한 당사국들의 추후 주권표시를 포함하는 추후행동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불란서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다.  이것은 어업협정이 영유권문제에 영향을 어느 정도 줄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부연해 설명하면, 또한 1839년 이후의 행위는 배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프랑스 정부가 Minquiers섬과 Ecrehos섬에 대하여 실제적으로 영국의 영유권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 것은 각각 1886년과 1888년이다.  또한  1839년 이후의 행위에 대하여는 증거력을 배제하자고 하는 프랑스의 주장은 1839년 이후에 행한 그들의 행위와도 양립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ICJ는 이 공동어업수역이 이 섬에 관한 영토주권의 발현과 관련된 그 후의 행위를 배제하는 효과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 할 수 없다. (Nor can the Court admit that such an agreed common fishery zone should  necessarily have the effect of precluding the Parties from relying on subsequent acts involving a manifestation of sovereignty in respect of the islets). 그런데 이 문장은 보는 바와 같이 완전부정이라기보다는 부분부정(nor... necessarily)으로 공동어업수역의 설정이 영유권 문제를 검토함에 있어서 고려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으로 해석 할 수도 있다.
 
1999년 1월 29일 발효된 신한일어업협정 제15조에서는 “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어업에 관한 사항 외의 국제법상의 문제에 관한 각 체약국의 입장을 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한일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 독도영유권문제를 고려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도가 중간수역 내지 잠정수역에 들어가게 된 이유와 과정마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독도가 중간수역에 포함된 것은 한일간에 영유권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의 영유권 주장 논리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결과를 낳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독도주변의 중간수역 내지 잠정수역이  Minquiers-Ecrehos 제도 사건에서의 공동어업수역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대립하고 ICJ가 인정하는 바와 같이 Minquiers섬과 Ecrehos섬이 공동어업수역내에 놓여 있었는가 하는 것도 불확실하였다. 그리고 1839년 영불 어업협약은 프랑스가 영유권문제를 제기하기이전(1876년)이나 독도가 중간수역에 놓인 것(1999)은 영유권 문제발생이후의 일이라 것 또한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4.  ICJ  판결
 
1953년 11월 17일 ICJ는 국가권력의 계속적이며 평화로운 행사의 증거를 바탕으로 (on the basis  of evidence of continuous and peaceful exercise of state power)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세시대 사건으로부터 이끌어낸 간접적인 추정이 아니라 Minquiers와 Ecrehos 諸島의 영유에 직접 관계가 있는 증거이다”라고 하여, 이 섬에 대한 상대적으로 우월한 증거를 제시한 영국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V.  Minquiers-Ecrehos case와 독도 영유권 문제와의 차이점
 
  1. 지리적 여건상 상의 차이
 
독도는 육지본토 또는 가장 가까운 유인도로 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는 반면, Minquiers-Ecrehos 군도는 육지에 근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섬들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자연적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지리적 여건에서 매우 다르다.   
 
독도는 울릉도로부터 89 km, 일본 오끼섬으로부터 153km 떨어져 있다.  Minquiers 島 및 암초군은 Jersey도 남방 9.8 마일, 불란서 본토에서 16.2마일, 불란서 령  Chausey 도의 동북방 3.9마일, 불란서의 해안에서 6.6마일이다. Ecrehos島 및 암초군은   Jersey 도 동북방 3.9 마일, 불란서 해안에서 6.6 마일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2. 분쟁당사국 입장의 차이
 
독도에 대해서는 ‘無主地 발견’ 및 ‘역사적 권원’(historical title)이 주장되고 있지만, Minquiers-Ecrehos군도에 대해서는 오로지 ‘역사적 권원’의 다툼이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 원시적 권원(original title)    및 실효적 권원에 입각하여 영국령 Channel Islands와 프랑스 본토사이에 있는 Minquiers-Ecrehos에 대한 영유권의 존재를 각각 주장했다.  Minquiers-Ecrehos는 영국의 Channel Islands의 하나인  Jersey와 프랑스해안 사이에 있는 2개 群의 소도 및 암초들이다.  양당사국은 Minquiers-Ecrehos도서에 대해 자신들의 고대의 또는 원시적인 권원을 가지며, 그 권원은 항상 유지되어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사건은 한일 독도분쟁처럼 無主地의 영유권 취득에 관한 분쟁이라는 성격은 갖고 있지 않다.
 
3. 양국 국민들의 관심도
 
Minquiers-Ecrehos Case에서는 영불 양국 국민들이 ICJ 승패에 무관심했기에 양국 국가는 큰 정치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국제재판에 회부도 쉽게 제기했다. 반면,  우리국민들은 독도를 한국 영토주권의 상징이요,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차원에서 독도영유권 국제재판의 승패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4. “공동어로 구역”의 설정의 문제
 
1839년 영불간 어업협정은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에서 명시적으로 설정된 [중간수역] 과 같은 “공동적 어로구역“이 설정되었는지에도 차이가 있다. ICJ는 Minquiers-Ecrehos  case에서 ”공동적 어로구역 “ 문제에 대해 명시적으로 그 판단을 배제. 유보하였다. 이것은   명시적인 ”중간수역‘안에 위치한 독도문제와는 전혀 다르다.  
 
양자는 협정내용이나 섬의 지리적 위치로 볼 때도 아주 다르다. 형식논리에서 동질성이 없는 양자를 비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1898년 영불 어업협정은   Minquiers-Ecrehos 섬에 관한 영국의 영유권을 배척하기 위한 근거로 프랑스에 의해 제기되었다. 영불협정의 3개 문제조항은 프랑스 Normandy 해안과 영국 Jersey 섬의 3해리 범위수역에서는 프랑스와 영국이 각각 배타적 굴채취권을 행하고(제1조,제2조), 그 나머지 수역에서는 공동으로 어로키로 합의한 것이다.(제3조)
 
이 제3조의 규정으로  Minquiers-Ecrehos 섬을 포괄하는 모종의 ‘공동어로구역’이 설정되었다는 프랑스의 주장에 영국은 동의하지 않았다.
1898년 영불간 어업협정에 의한 ‘공동어로 구역’은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1999년 신한일 어업협정에서 명시적으로 설정된 독도의 ‘중간수역’과의 비교는 불가하다. 
  
VI. 결 론
 
독도문제와 Minquiers-Ecrehos  case는 지리적 여건, 분쟁 당사국 주장의 권원, 당사국 국민의 관심도 그리고 공동어로수역설정 배경에서 매우 상이하다.  그래서 1839년 영불어업협정에서는 ICJ 판결문에서 신한일어업협정(1999)과 같은 명시적 성격의 수역을 다루지 않고 있다.  ICJ는 공동어로수역문제에 대해 명시적으로 그 판단을 배제하거나 유보하고 있는 것 같다.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으로 설정된 독도 주변에서의  [중간수역]은  Minquiers-Ecrehos  case에서의 ‘공동어로수역’과는 여러 측면에서 전혀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위에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1953년 ICJ가 Minquiers-Ecrehos  case에서 판시한 어업문제와 영유권문제는 원칙적으로 별개라는 일부 문구를 가지고 독도문제에 단순 평면 그리고 호기일적으로 적용하기는 곤란하다. 이 어업문제-영유권문제 분리 명제가 국제해양법상 보편화된 규범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ICJ는 도서에 대한 당사국들의 추후 주권표시를 포함하는 추후행동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불란서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다.  이것은 어업협정이 영유권문제에 영향을 어느 정도 줄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국제판례를 해석 할 때 일부 문구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앞뒤의 문맥과 전체적 의미를 종합해서 평석해야 한다.   
 
- 2006년 1월17 독도본부 제3회 학술토론회 제3주제 발제문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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