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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침탈 막으려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제 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1. 서 언

  전통국제법상 1차적인 영토취득 권원(權原, title)에는 선점, 시효, 첨부, 할양, 정복 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법적인 영토권원의 범주가 여기에 제한된다고 할 수는 없다. 일찍이 팔마스섬 분쟁사건에서 막스 후버(Max Huber) 단독 중재관은 ‘발견’(discovery)을 ‘불완전 권원’(inchoate title)으로 인정한 바와 같이 2차적인 권원이 존재한다. 또한 승인, 묵인, 금반언, 역사적 응고 등의 법리가 영토취득 권원의 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고려요소가 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는 한번도 ‘영토취득의 방식’을 구체적이고 망라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는 영토분쟁 관련 국제법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며, 아직도 발전 중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특정의 영토분쟁에 있어서 모든 관련 요소와 사정이 모두 다 영유권분쟁 당사국에 의해 원용될 수 있는 것이며, 국제재판소 등 제3자에 의한 이들의 상대적 평가가 결국 당사국 중 어느 국가에의 영유권 확인․귀속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독도분쟁 존재 부정론, 실효적 지배를 통한 일본의 영유권 묵인확보론 등에 의지해, 대일 저자세의 소극적인 독도외교를 펼치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최근 경찰청장의 독도방문계획 무산, 2005년 2월 23일 일본 시마네현(島根縣)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상정 및 다카노 도시유케(高野紀元) 일본 대사의 독도망언 등에 대한 한국의 대응도 역시 기존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하에서는 독도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입장 및 자세에 대해 몇 가지 법적 문제를 제시하고, 금후 한국의 대응방향을 제시하기로 한다.

2. 일본의 ‘국제분쟁화’ 유인론과 소극적인 대일 독도외교
  
  지난 시기에 한국 정부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시비가 조치가 발생할 때마다 ‘가능하면 무대응’의 대응방식을 택해 왔다. 그 논거는 적극 대응시 일본의 독도분쟁화 기도에 말려들어갈 위험이 있다는 것, 또는 자칫 일본의 반발을 불러 일으켜 분쟁지역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행위는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과거 일본 정부가 독도영유권 주장을 하거나 일본 어민들이 주일 한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경우 등에 있어서 우리 정부는 일본의 ‘국제분쟁화 기도’에 말려들어가게 된다는 점을 들어 그러한 주장과 행동을 무시 내지 묵살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최근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안의 상정과 다카노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망언(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영토임이 명백하다)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외교통상부 아태국장)는 종전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정부의 “가능하면 독도문제에 관한 일본의 주장과 조치에 무대응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과 관련해서 가장 그럴듯한 논거는 독도분쟁을 인정할 경우우리나라는 유엔 헌장 제2조 3항과 제33조 1항에 따라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의무를 지게 되는 바, 결국 일본과 외교교섭에 성실히 응해야 하는 외에 독도분쟁이 국제기구에 회부되는 등 우리의 국익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고 또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독도문제와 관련해서 1952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일련의 외교전(외교각서 교환에 의한 독도설전)이 이미 존재했었던 만큼, 앞으로 독도문제에 대해 일본과 교섭에 응하는 것이 일정 부분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 보인다.

  ‘독도문제 무대응전략’ 혹은 '일본태도 무시전략'은 주권국가로서의 체모와 국민적 감정을 자극시키는 면이 있다. 명명백백한 자국의 대한민국의 영토라면, 우리는 독도에 대해 우리의 영토주권을 ‘당당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행사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의 독도외교는 당당함과 자신감보다는 일본의 저자세와 눈치보기,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기, 일과성 해프닝으로 치부하기, 가급적 독도문제 빨리 덮기 등으로 일관하고 있다. 어떻게 자국의 영토에 대해 그럴 수 있는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그러기에 ‘무대응’ 내지 ‘무시’ 전략으로 대표되는 대일 독도외교는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또한 ‘무시전략’ 내지 ‘문제축소 전략’은 일본이 평화적인 행동을 하는 한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독도문제 관리방안이 될 수 있지만, 독도 점령이나 무력시위 등 군사적 조치를 통해 국제분쟁화 시킬 경우에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3. 독도분쟁 확산저지론과 우리 정부 태도의 모순

  독도분쟁 부인론 내지 확산저지론에 서 있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실제의 행동․태도를 보면, 심대한 모순이 발견된다. 예컨대 허준영 경찰청장이 2005년 2월 8일 설을 맞아 고향을 찾지 못하는 경찰관들을 위로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1월 31일 외교통상부에 이에 관한 입장을 문의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가 이를 막았다.

  이에 앞서 수년 전에는 경상북도 도지사가 독도를 방문하려 했을 때도 외교통상부는 일본을 자극해, 독도문제의 국제분쟁 확산(비화) 기도화에 말려든다는 이유로 역시 도지사의 입도(入島)를 저지했었다.
  하지만 정부 관리가 제 나라 땅인 독도를 방문하는 것, 그리고 자기 휘하의 경찰관을 방문․위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는 한국의 실효적 지배권 행사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영토주권 행사마저 하려 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더욱이 한국령 독도에 대해 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문제의 확산(분쟁화)을 저지한다고 하면서, 자국의 영토관할권 행사를 자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다.

  이는 정부 입장의 자기모순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전술한 경찰청장의 설 연휴 독도순시계획을 좌절시킴으로써 영토관할권 행사를 제한하려는 것, 또한 이를 문제시 삼는 네티즌들의 비난에도 쉬쉬하면서 넘어가려는 것은 결국 독도가 ‘국제분쟁지’임을 우리 스스로 간접 시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독도가 명백한 우리 영토라면, 상급 지휘권자나 상급 지방관서장이 이곳을 방문․위문하지 못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국의 영토를 방문하는 사안의 결정에 있어서 대외관계를 다루는 외교통상부가 나서는 것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한․일간에 독도문제가 외교분쟁화될 경우 외교통상부가 나서서 국가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독도에 대한 국내관할권 행사에 있어서 외교통상부가 그 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장래 독도분쟁이 국제재판소 등에서 심판을 받게 될 때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즉 독도문제는 이미 ‘국제적 분쟁’화되어 있음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독도문제에 관하여 사안별 처리와 차별적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즉 국내적 영토관할권 행사문제와 외교적 대응문제를 분리해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지금까지 정부는 1905년 1월 28일 일본이 내각결정을 통해 독도를 편입하기로 결정했을 당시 독도를 ‘리양고도’(Liancourt Rocks, 독도의 프랑스어 명칭)라고 표기했고 독도 편입조치 사안을 대외관계를 취급하는 외무성이 참여하고 다루었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은 사실은 일본이 독도가 자국의 영토가 아니라고 보았다는 점(즉 국가 차원에서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해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지적은 적절하고도 타당한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도 국내 행정기관의 독도에 대한 관할권 행사와 관련해서 왜 외교통상부가 나서서 이를 방해(?)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대외관계 업무를 다루는 외교통상부는 독도문제에 있어 가급적 전면에 나서지 않고, 행정자치부와 경상북도 등 국내부서가 행정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기록을 많이 축적하는 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보다 올바른 선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이제부터라고 우리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자기모순을 제거 내지 최소화하는 한편, 우리의 실효적 지배 기록을 더욱 많이 축적해야 할 것이다.

4. 영토분쟁 처리법상 결정적 기일의 법리와 묵인의 문제

  독도문제와 관련해서 우리가 고려할 문제는 ‘결정적 기일’(critical date)에 관한 것이다. 영토분쟁에서 ‘결정적 기일’이란, 그 시점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국제법(특히 증거법)상의 제도를 말한다. 영유권 분쟁에서는 당사국이 권원 보강을 위해 각종 시설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인데, 국제재판에서는 일정한 시점을 정해 그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증거 능력을 인정치 않게 돼 있다. 이 경우, 정해진 일정한 시점이 바로 ‘결정적 기일’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이 ‘독도문제’내지 ‘독도분쟁’에 있어서 ‘결정적 기일’로 결정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하겠다.

  그런데 최근의 영토분쟁 판례에서 ‘결정적 기일’의 절대성이 약화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리기탄 및 시파단 영유권분쟁(Case Concerning Sovereignty Over Pulau Ligitan and Pulau Sipadan (Indonesia/Malaysa), 17, December, 2002, ICJ General List, No. 102.)에서 ICJ는 우선 양국간의 대륙붕 경계획정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진 1969년에 이 분쟁이 결정화(crystallized)되었다고 하면서, 어떠한 행위가 이전의 행위에 의한 정상적인 계속이 아니거나, 또는 분쟁당사자가 자신의 법적 지위를 개선할 목적으로 취한 행위의 경우, 양국간 분쟁이 발생한 일자 이후에 행해진 행위들은 고려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ICJ는 그 유효성을 검토함에 있어서 1969년 이전의 기간에 행해진 조치에 대해 ‘주로’(primarily) 분석할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1969년 이후의 행위들을 완전히 배척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밖에 몇몇 판결에서는 아예 결정적 기일을 설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에리트리아와 예멘간의 분쟁은 그 대표적 예이다. 즉 이 사건에서 ‘상설중재재판소’(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 PCA)는 분쟁당사국이 결정적 기일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여, 결정적 기일에 무관하게 재판부에 제출된 모든 증거를 검토하였다. 이에 PCA는 역사적 권원 및 승계에 따른 양국의 영토적 권원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최근까지 이루어진 양국의 행위를 상호 비교하여 그 상대적 중요성에 따라 영유권 귀속을 결정하였다.

  또한 아르헨티나-칠레와 칠레간의 ‘비글해협’(Beagle Channel) 사건에서도 관할 중재재판소는 “본 재판소는 결정적 기일의 개념이 이 소송에서 거의 무의미하다고 판단하였으며, 증거와 관련된 행위의 날짜에 상관없이 모든 제시된 증거를 검토하였다”고 설시한 바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정부는 ‘결정적 기일’을 내부적으로 정해 놓고, 그 이후의 현상(現狀)강화적 조치를 취하는 데 조심스러워 할 필요는 없게 된다. 가급적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와 그 강화를 뒷받침하는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많이 취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관련해서 2004년 독도 영유권문제의 근원적 해결이라는 명분으로 국회에서 의원 입법을 통해 ‘독도개발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주요 내용 은 동도와 서도 사이의 바다를 메워 경작지를 조성하고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정을 개발하는 등 섬을 유인도화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런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당시 ‘독도개발특별법’ 제정은 일본 정부와 국민들을 자극, 반발을 불러오게 된다고 하는 이유에서 정부는 이 법의 입법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일부 학자는 ‘결정적 기일’의 법리를 들어 동법이 독도의 영유권 강화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일본의 외교적 항의를 초래하는 조치는 최소화하되, 조용하게(?) 실효적 지배를 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묵인’을 가져오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문제 축소’ 혹은 ‘무시/무대응’ 전략과 상통하는 발상이다.

  물론 일본 정부의 묵인은 우리의 독도 영유권 강화, 일본의 영유권 포기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묵인 혹은 이의제기 기회의 불이용으로 영유권을 상실한 사례가 있다. 1933년 PCIJ에 의해 재판이 행해진 동부그리인란드의 법적 지위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노르웨이의 외무장관 Ihlen이 1919년 그리인란드 전체에 대한 덴마크의 영유권문제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구두약속을 한 것을 지적하는 외에도 이후 노르웨이가 분쟁지 전역에 대한 덴마크의 여러 조치를 사실상 ‘묵시적으로 인정’(묵인)했었다는 점을 들어 동부그리인란드가 덴마크의 영토라고 판시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우리 정부의 (순진한?) 기대대로 일본이 우리측의 독도 영유권이나 실효적 지배를 사실상 묵인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제로이다. 일본이 100년전 세미나현 고시로 독도를 편입할 때부터 그들의 침략적 근성이 잘 드러난 바 있다. 반세기 전 한국전쟁 기간과 정전 직후 우리 영토의 막내인 독도를 침탈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상기하면 답은 자명해진다. 실제로 일본은 기회가 있으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통해 우리의 실효적 지배에 시비를 걸어 왔다. 그런 점에서 묵인에 의지하는 소극적인 외교는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반면에 그간 독도와 관련해서 우리의 무시 내지 축소전략에 대해, 일본측의 묵인에 의한 우리의 독도 영유권 강화․확대를 가져왔다기보다는 그 반대로 일본의 새로운 영유권시비 주장과 조치를 불러왔으며, 일본에 의한 독도 관할권 침탈․훼손․잠식 기도를 초래하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1999년의 ‘신 한․일어업협정’에서 독도주변에 중간수역을 설치한 것이라든가, 일본의 독도에 대한 다케시마 지도 작성 및 국제사회에의 광범위한 배포, 온라인상이나 지도 등에서의 다케시마/독도 병기, 니혼시도가이 등 일본 극우단체의 독도상륙기도 등은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오늘날 독도에 대한 우리측(정부와 민간)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추적하고 있는 일본이 행여나 묵인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하겠다. 그 반대로 우리측의 관할권을 보다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더욱 올바른 접근이라고 생각된다.

5. 한국의 대응방향

  그러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독도문제에 대처해 나갈 것인가? 한마디로  우리 정부로서는 전략적으로 접근,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우선 우리 스스로 독도분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인정 내지 공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독도분쟁 부존재론에 입각한 기존의 ‘무시전략’이나 ‘문제축소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독도문제와 관련해서 이를 일본의 기도대로 국제분쟁화 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필요하고도 바람직하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독도 영유권 국가로서 당당하게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해 나가는 한편, 정부가 나서기 어려운 부문에 대하여는 민간부문의 활동을 조직.육성하고,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정부는 주민 이주(주민등록 전입) 허용, 호적 이전 적극 허가, 민간인 입도 범위 확대, 주변 바다 매립 및 개발, 민사.형사관할권 행사, 영해 침범선박 단속, 해상 독도관광 확대, 독도문화재단(정부 산하 법인) 설립 등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조치를 강화해야 한다. 더 이상 경찰청장이나 경상북도 지사의 입도를 제한하는 소극적인 조치로는 안 된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독도망언을 할 때 문서상의 재발방지 보장을 확실하게 얻어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말로만 재발방지 보장을 이야기 했지 이를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보다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 반드시 성의 있는 조치를 받아내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일본 대사의 기피인물 지정 및 본국 소환 요구(또는 추방명령) 혹은 주일 한국 대사의 소환도 고려해야 한다.

  한편 민간 차원에서는 독도문제의 역사적․지리적 및 국제법적 측면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와 학술토론회 개최, 독도 바로 알고 바로 알리기 운동 전개, 한국의 독도 영유권 인정을 위한 우호적인 국제여론 조성(관련 국제기구 및 외국인들에 대한 민간차원의 홍보), 독도방문을 통한 영토수호 의지  확산, 민간 차원의 독도문화사업 전개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러한 민간 활동을 직․간접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독도는 이미 지도상으로 일본에 의해 ‘사실상 침탈’되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 지도에 독도가 일본명 다케시마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독도를 영문으로 표기한 지도를 가급적 많이 국제사회에 배포하는 한편, 일본이 1905년 2월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라는 지방고시에 의해 독도를 일본영토로 만들려 했다는 사실(일종의 서류 조작 및 비실효적 ‘문서점령’)을 널리 알려야 한다. 여기서 민간단체 및 학자.전문가의 적극적인 역할이 기대된다.

  또한 1951년 9월 일본이 연합국과 대일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독도가 동 조약 제2조(일본의 영토조항)에 명시되도록 하지 않기 위해 당시 대일 정치고문이었던 미국인 Sebald를 매수했던 사실도 적극 홍보해야 한다. 이와 관련, 우리는 인터넷 강국으로서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 독도수호 담당 인터넷 전사를 양성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독도 영유권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증거 수집에도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6.25 전쟁 기간 중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려 했던 것처럼 북한 급변사태 발생, 북핵 상황 악화시, 한국의 무리한 연방제 통일 추진 시도 등의 경우에 독도에 대한 무력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독도 탈환은 물론, 한반도 영향력 유지․확대 차원에서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수년전부터 일본은 가고시마 현에서 독도탈환 작전(군사연습)을 비밀리에 수행해 왔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중․장기적으로는 일본의 군사도발에 대비해 현재 전․의경 1개 소대로 구성된 독도경비대를 군대인원으로 전환하는 한편, 군사력 증강을 토대로 독도방어훈련도 실시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2005.02.독도본부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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