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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동반자 관계의 발전 방향

김영구 (한국 해양대학교. 국제법)

1. 한일(韓日)관계의 현황

한국에게 있어서 일본은 무엇인가?

2002년 World Cup Game을 공동 주최하는 나라이다 또는 우방(友邦)이며 인접국(隣接國)이다. 다 맞는 말이지만 양국 관계를 정의(定義)하는 데 그것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 마음대로 영해(領海) 직선기선을 그어 놓고 우리 어선을 나포(掌捕)하고 있으며 한참 협상(協商)을 벌이다가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선언하고 1999년 1월 23일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라이다. 한 세대(世代) 이전에는 온갖 무도(無道)한 방법으로 우리의 부녀자들을 강제로 전선(戰線)에 끌어다가 일본 군대의 성노예(性奴隸)로 학대(虐待)하고 나서 그 전범자(戰犯者)들은 국가유공자로 보훈(報勳)하고 한국의 여성 피해자들에게는 일본국가로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강변(强辯)하는 나라이다.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사실은 한국에게 있어서 일본은 매우 중요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경제적으로 단단히 연관(聯關)되어 있으며 , 원하던 원하지 않던 관계없이 군사적(軍事的), 정치적(政治的)으로 연동(連動) 관계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을 알고(知日), 일본을 이기자(克日)고 말한다. 그러나 먼저 해야될 일은 우리 자신을 알고(知己), 우리들 자신의 비조직적이고 비생산적인 사고(思考)의 틀에서 벗어나는 일(克己)이다.

이상은 약 3년 전(1998년)에 한국해양대학교에서 한일관계에 관한 학술회의를 열고 그 결과보고서를 발간하는 서문(序文)에 썼던 글이다. 그런데 이 글을 지금 쓴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과 일본이 공동 주최하는 World Cup Game은 이제 바로 내년으로 다가와 있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긍정적인 면에서 별로 진전된 것이 없다. 중요한 사건만을 우선 돌이켜보자.

극단적인 우익(右翼) 성향의 단체인 "일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주동이 되어, 19세기이래 2차 대전 종결시까지 동양 근대사에 있어서, 일본의 한국과 중국 등에 대한 침략적(侵略的), 야만적(野蠻的), 비인도적(非人道的) 행위들을 합리화하고 이러한 피해 국가들의 국가적 자존심을 무시(無視)하고 능멸(凌蔑)하는 내용으로 개악(改惡)시킨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일본 문부성에 검정(檢定)을 신청케 되었으며, 일본 정부는 1982년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냉담하고 사무적으로 이 문제에 대처함으로서 2001년 4월, 거의 대부분 역사교과서가 개악(改惡)된 내용 그대로 검인정(檢認定)을 통과하였다. 이것이 이른 바 다시 불거진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이다.

지난 2000년 9월 17일에는 모리 일본 총리(總理)가 한국 공영방송인 KBS의 미리 준비된 질문에 대한 공식적(公式的)인 답변에서, "다케시마(독도)는 역사적으로는 물론이고, 국제법적 관점에서도 명백히 일본의 영토이다. 이것은 일본정부의 명확하고도 일관된 입장이다."라고 하는 발언을 하였다. 한국 국회(國會)에서는 여야(與野)간에 이것이 망언(妄言)이냐 실언(失言)이냐를 가지고 실랑이를 버리다가, 국민의 반일(反日) 감정이 사그러들자 흐지부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남쿠릴 열도 근해에서의 꽁치 조업 문제가 최근 어민(漁民)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관심과 분노를 유발하고 있다. 지난 7월말부터 여기에서 꽁치조업을 강행하여 상당한 어획실적을 올리고 있던 한국은 일본과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제3국의 조업을 금지키로 합의함에 따라 정책적 공황(恐惶)에 직면한 것이다. 한국은 러시아에 상당한 입어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조업에 관한 합의를 하고,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업을 강행하였던 것인데 당시 한국의 입장은 "어업은 영유권 문제와는 별개이며",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러시아와 합의해서 이 수역에서 꽁치조업을 하는 것은 "국제법과 일반적인 국가관행에 맞는 것"으로서 일본이 이를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고이즈미 수상과 러시아 푸친 수상 간에 제3국의 입어를 전면 배제시키기로 합의한 것이 지난 10월초에 드러나자 한국 정부는 일본과 러시아에게 배신당한 것으로 되고, 식량자원과 어장을 모두 잃게된 한국 국민과 어민에게 할 말이 없게 되었으며 이 일로 인해서 뿌리깊은 반일(反日) 감정이 다시 한번 한국 사회에 분출(噴出)되게 되었다.

아주 잘 기억되는 바와 같이 집권 초기부터 우익적(右翼的)인 돌출 발언으로, 우경화(右傾化)되어 가는 일본 민중의 지지와 인기를 끌어 모으던 일본 총리 고이즈미는 2차대전의 악명 높은 전범자(戰犯者)들을 일본의 호국영령(護國英靈)으로 모시고 있는 일본의 야스꾸니 신사(神社)를 지난 2001년 8월 14일, 총리 자격으로 참배하였다. 그는 이 돌출적 행동에 앞서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참배할 것이며 한국이나 중국과의 관계악화는 이후에 생각하면 된다." 고 공언(公言)하였다. 한국 정부는 당초에 이러한 일본 수상의 행보에 대해서 대단히 강경한 반발(反撥)을 보였다.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에 대한 가시적(可視的)인 태도변화의 진전이 없는 한 고이즈미의 방한(訪韓)은 실현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하고 있었으나, 일본측의 "가시적인 태도변화"가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월 15일 일본 수상 고이즈미는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내년에 공동 주최하는 World Cup Game을 통해서 한국과 일본은 온 세계 인류에게 양국이 훌륭한 동반자인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않되게 되어 있다. 2002년은 『한일 국민교류의 해』로 정해져 있다. 아마 이를 의식한 행사계획일 것이다. 실제로도 한국과 일본은 이미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년간 350여만 명의 사람이 양국을 서로 오고 간다. 2000년 현재 년간 한일교역 통상고(通商高)는 523억불(US.$)을 상회한다. 북한을 합리적 과정의 평화통일의 길로 유도(誘導)해 내기 위해서 한국은 일본의 협조가 꼭 필요하다. 한국의 경제구조가 일본의 그것에 깊게 연동(連動)되고 있다는 것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1998년 10월, 새 정권을 인수한지 얼마 안돼서 일본으로 가서 정상회담을 하고,『한일동반자 관계 공동선언』을 발표한 한국 대통령의 행위가 당시에 여러 가지로 무리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전반적인 공감대(共感帶)를 얻을 수 있었든 것은 이러한 지정학적(地政學的) 및 시대적(時代的)인 당위(當爲)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동반자(同伴者)라는 것은 단순히 공동선언(共同宣言)을 소리쳐 발표한다고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복잡하고 불행한 과거사(過去史)를 갖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즉시 서로 긴밀한 협조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에 가장 인접(隣接)한 국가이며, 세계에서 투자가능 재원(財源)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나라이지만, 한국에 투자한 규모는 1999년 현재 EU의 1/4에 불과하다. 이 것이 한국과 일본이 동반자가 되겠다고 공언한지 2년이 넘은 지금의 모습이다. (표-1 참조)



공동 주최하는 World Cup Game의 운영을 통해서 한국과 일본의 갈등(葛藤)과 여러 모로 대조적(對照的)인 모습이 적라라(赤裸裸)하게 세계인의 눈에 비춰지게 될 것이다. 결코 호의적(好意的)인 동반자가 아닌 일본과의 경쟁적 관계에서 우리의 모습이 이들 전 세계인에게 결국 어떻게 비춰지고 또 평가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분별(分別)과 분발(奮發)에 달려 있다.


2. 한일(韓日)관계의 안보적(安保的) 의미

지난 10월 15일 고이즈미 일본 수상이 그 말많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갔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총리 자신의 신사 참배 강행 등으로 한일 관계는 경색될 대로 경색되어 있으며, 더구나 최근 꽁치 어업문제로 인하여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 개인에 대해서 극도의 분노와 적개심을 갖고 있는 만큼, 본래부터 이번 서울 정상회담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주 최근까지 한국 정부는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을 거듭 천명하고, "역사 인식은 한일관계의 근간(根幹)에 해당하는 문제이므로 일본측의 성의(誠意)있는 조치가 없는 한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고 되풀이 해왔다. 어떤 정부의 고위 인사는, "일본은 이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까지 강경(强硬)하고 단정적(斷定的)인 언사를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이번 서울 정상 회담은 그 준비 단계에서 중요 현안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를 사전 조율하기 위한 외교체널의 통상적인 실무조정 조차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이례적(異例的)으로 강행(强行)되었다.

어찌해서 갑자기 한국 정부는 방침을 바꾸어서 화급(火急)하게 일본 총리의 방한(訪韓)을 받아드린 것인가? 한국 정부는 왜 일본 총리를 이렇게 부적절한 시기에 서울에 맞아들여야만 했는가?

염려하고 예상한 그대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역사교과서 왜곡과 그 자신의 야스꾸니 신사 참배 등으로 제기되어 있는 일본의 잘못된 과거사 인식에 대하여, 전진적으로 변화된 자세를 보장하는 성의(誠意)있는 약속을 하기는커녕, 재발 방지에 관한 모호한 언질조차 주지 않았다. 꽁치 조업 문제에 관해서는 오히려 이것이 영토문제(領土問題)이며 일·러 간의 북방 4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의 꽁치조업 요구는 고려 될 수 없다는 일본의 입장이 정상회담에서 공식 확인되었을 뿐이다.

고이즈미 쪽에서 보더라도 중국 정상회담시 북경 체류시간이 9시간이 않되었으며, 서울 체류시간은 6시간이 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는 바, 그의 한국 국회방문이 결국 취소되었으니 실제 그의 서울 체류시간은 6시간 미만이었을 것이다. 사실상 그는 현재 일본 국회에서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위한 『테러대책특별조치법안』을 심의하여 승인 받는 일로 몹시 시간에 쫒기고 있다. 그는 어렵사리 겨우 이 6시간의 짬을 내서 서울에 왔던 것이다.

그는 왜 서울에 왔는가?
결과적으로 이번 서울 정상회담은 한국 정부가 요란하게 문제를 제기한 과거사 인식에 대해서 일본측은 전혀 개선(改善)할 의지가 없음을 다시 확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야스꾸니 신사 참배와 같은 도전적(挑戰的) 행보를 한국이 공식적으로 수인(受忍)한 셈이 되었다. 이러한 면죄부(免罪符)를 획득하는 것이 그의 방문 목적이었을까? 부수적인 효과로서 또 부분적으로 그러한 의도(意圖)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나, 가장 본격적인 목적은 대규모 자위대를 아프칸에 파병(派兵)하는 일본의 이례적 행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지를 과시하기 위함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한국정부가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에 환영의 뜻을 표시할 리는 없겠지만 국제 테러근절을 위한 미국의 노력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한 한국이 테러 진압을 지원키 위한 일본의 파병에 명시적으로 반대할 수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지난 10월 8일 북경에서의 중일(中日)간 정상회담도 유사한 목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일본의 파병은 어디까지나 전투행위에는 참가하지 않는다는 전제(前提) 하에 추진되는 것임을 강조해서 설명하는 고이즈미에게 중국의 장쩌민은 "아시아인들에게는 일본군대의 해외 파병에 대해서는 특별한 경계심(警戒心)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는 신중한 당부를 주었다는 소식이다. 서울에서 한국 정상(頂上)과의 회담 시에도 유사한 의제가 논의되었으리라고 생각되나, 일본군 전투부대의 대규모 해외 파병에 대해서 한국국민이 당연히 갖고 있을 특별한 우려(憂慮)와 경계심(警戒心)이 얼마나 강조되어 전달되었는가는 자못 의문이다.

아시아인들의 일본에 대한 집요한 경계심과 평화헌법(平和憲法)이라는 법적인 장애를 무시하고 감행되는 일본의 해외 파병을 국제적으로 기정사실화(旣定事實化: fait accompli) 하기 위한 수순(隨順)으로 감행된 중국 및 한국과의 정상회담은 일본에게는 중요한 정치적 행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특별히 한국과의 정상회담은, 과거사 인식문제나 꽁치 조업문제 등 일본과 풀기 어려운 현안의 과제들이 돌파구도 없이 대립되어 있으며, 일본에 대한 국민 감정이 최고조로 격앙(激昻)된 시기이므로 한국 정부에 의해서 당연히 거부(拒否)되거나 순연(順延)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부적절한 시기에 강행된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염려한 대로 앞으로 한일관계에 있어서 많은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국 정부가 고이즈미의 방한(訪韓)을 거부하지 못한 무슨 절박한 이유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한일관계 전문가들 사이에도 여러 가지 추측과 논의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왜 한국 국민과 한국 정부가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대한 것을 문제 삼고 있는가? 또 문제 삼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좀더 근본적으로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일본의 한일간 과거사(過去史)에 대한 인식(認識)이란 어떤 것인가?

-일본은 공식적으로나 사실상으로 한반도 조선을 침략(侵略)한 사실을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1910년의 한일합방 조약은 일본제국(日本爪: 이또 히로부미)과 대한제국(大韓爪: 고종 황제)간에 체결된 유효하고 합법적인 조약(條約)이므로 무력(武力)에 의한 침략(侵略)과 같은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이 36년간 한국을 통치하고, 착취(搾取)한 것에 대해서도 일본은 이를 전면적으로 부인(否認)한다. 일본과 조선반도의 합방시대가 36년간인데, 일본의 조선 지배는 선의(善意)의 지배이며, 일본이 한국을 동화(同化)시키려는 노력이 2차 대전의 패전으로 결국 좌절되었으나, 만일 합방 기간이 20년쯤만 더 계속되어 일본의 지배기간이 충분히 길었더라면 한국과 일본은 완전히 동화(同化)되었을 것이며, 지배-피지배(支配-被支配)나 착취-피유린(搾取-被蹂躪)의 관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시각(視覺)으로 볼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본의 한국 통치기간 중에 일본 정부가 한국민에 대해서 취한 행동이 당시 식민통치를 행하던 다른 세계 열강(列强)의 그것처럼 다소 "공리적인 것"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만을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19세기 대한제국(大韓爪)은 독립국가를 유지해 갈 만한 능력도 기개(氣槪)도 없이 외교적인 혼란을 자초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한일간의 불행한 역사"를 낳은 책임은 시대착오적(時代錯誤的)으로 무능했던 조선(朝鮮) 측 즉 대한제국(大韓爪)에도 그 반분(半分)이 있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대체로 이상이 일본이 가지고 있는 한일 관계의 과거사(過去史) 인식(認識)이다.
이러한 일본의 역사인식은 어찌해서 한국 국민이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일까?

일본의 이와 같은 한일관계 과거사(過去史)에 대한 인식(認識)은 한국 국민이 자존심 있는 민족이라는 점과 그 국가 즉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역사적 정통성과 주권적 존재 자체를 부정(否定)하는 인식이다.
한일합방 조약은 강박(强迫)에 의한 무효(無效)인 조약이며, 1910년 당시의 국제법에 의한 경우라도 고종황제의 명시적 합의표시가 결여된 하자(瑕疵)있는 합의이므로 무효이다. 무효인 조약을 근거로 자행된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강압적 지배와 주권의 침해는 그 자체가 불법(不法)이며, 이 것이 일본의 불법적인 한국침략을 구성한다는 것을 일본 국가 즉 그 정부와 국민이 인정(認定)하여야만 한다. 인정할 뿐만이 아니라 그들 선대(先代)들의 행위에 대해서 사죄(謝罪)함으로서 한국 국민과 그 국가인 대한민국의 자존심의 손상(損傷)을 보전(保全)하여야 한다. 현재와 같은 일본의 한일 관계 과거사(過去史)에 대한 인식은 19세기이래 손상된 한국민의 자존심을 치유(治癒)하기는커녕 그 불법적(不法的)이고 악의적(惡意的)인 심리상태로 인하여 순간 순간 새로운 손상(損傷)을 가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것은 한국과 일본이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일 뿐만이 아니라 향후 국제사회에서 가치 있는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진정한 동반자(同伴者) 관계를 이룩해 내기 위한 필수적(必須的)인 전제(前提)가 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서로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고 존재할 수만 있다면, 일본 정부나 그 국민이 자기들의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 어떠한 인식(認識)을 갖고 있던 한국으로서 관여(關與)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국제사회는 필연적으로 국가와 국가간의 접촉과 신뢰관계가 요구된다. 한국과 일본이 어떤 형태로건 국가 대 국가 또는 국민 대 국민간의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면, 정당한 상호존중(相互尊重), 상호신뢰(相互信賴)의 관계가 성립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존중, 상호신뢰관계의 성립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올바른 과거사 인식을 기초로 해야하는 것이다. 일본이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대한 무력적(武力的) 침략(侵略)과 경제적 착취(搾取) 및 비인도적(非人道的) 잔학행위(殘虐行爲)를 주도한 A급 전범(戰犯) 14위를 합사(合祀)하고 있는 야스꾸니 신사(神社)를 일본의 총리가 공식 자격으로 참배(參拜)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일본이 한국과의 이러한 상호존중, 상호신뢰관계의 성립을 거부(拒否)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나 국민은 가치지향적(價値指向的)인 존재이다. 국가가 만일 그때 그때의 이익(利益)과 편리(便利)에 따라 어떤 악당(惡黨)하고도 담합(談合)하고, 어떤 사술(邪術)이라도 감행(敢行)하여 일관된 가치지향적(價値指向的) 존재로서의 특성을 포기(抛棄)한다면 그것은 마피아나 조직폭력집단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문명국가로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게 될 것이다.

우리의 주권적 실체를 유린(蹂躪)하고 우리의 강토를 침략(侵略)하여 착취(搾取)했으며 우리의 애국자와 부녀자에게 비인도적(非人道的) 만행(蠻行)을 저지른 엄연한 역사적 사실들을 합법적이고 정당한 행위였다고 강변하는 일본의 공식적인 주장(主張)과 인식(認識)을 수용(受容)한다면 이는 자존심 있는 국민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정당한 주권적 주체로서 인정받기를 포기(抛棄)하는 것과 같다.

고이즈미 총리의 한국 방문 직후, 한국 정부는 정상회담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보아, 한일 양국의 관계정상화의 기초가 잡힌 것이라고 평가(評價)하고 대일문화개방의 중단이나, 한일군사협력의 중지 등 일본에 대한 한국 측의 대응 보복조치들을 해제(解除)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고이즈미의 방한(訪韓)과 정상회담의 내용으로 종래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이 공식적으로 수정(修正)되었다고 보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역사인식(歷史認識)이야 수정되건 말건 일본과의 관계발전을 위한 전기(轉機)를 고이즈미의 방한(訪韓)에서 찾아보자고 하는 속셈인가?

전자(前者)의 경우라면, 한국 정부의 판단이 너무 순진하고, 고이즈미를 너무 모르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고, 후자(後者)의 경우라면,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정당한 국가 즉 자존심있는 국가로서의 정책적 접근에 너무 못 미치고 있다고 비판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歷史認識)을 고쳐놓는 일이 한일관계(韓日關係)의 기초적인 전제(前提)가 되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한국 쪽에서는 이 문제를 단순한 양국 국민간의 감정적(感情的) 문제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사실상 일본은 한국의 인접국가(隣接國家)이며 또 가장 영향력이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은 물론이고, 정치적, 군사적으로 한일관계(韓日關係)를 어떻게 정립하는가? 하는 점은 한국의 안전 보장을 위해서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 그러므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역사인식(歷史認識)을 올바로 개선시키는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정당히 대우받는 중요한 국가로서의 활동을 보장받기 위한 전제적 조건이며, 한국의 장기적(長期的) 안전보장 전략의 기본적 초석(礎石)이 되는 것이다.


3. 한일(韓日)관계 발전을 위한 현안과제(懸案課題)

지금까지 나타난 한일관계의 진전 과정을 종합해 볼 때, 한국의 대일정책(對日政策)은 너무 원칙(原則)이 없이 강온(强溫)의 진폭(振幅)이 크고, 그때 그때 각 국면(局面)을 미봉적(彌縫的)으로 다룰 뿐, 국익(國益)을 신장(伸張)시키기 위한 종합적이고 통일된 의지(意志)와 능력(能力)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1) 일본의 역사인식문제

우선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과 신사 참배에 연관된 이른 바 역사인식(歷史認識)의 문제를 우선 들어보자.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이것이 우리에게는 자명(自明)하고 절실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 대다수의 인식(認識)은 사실상 앞서 지적한 몇몇 유명 인사의 망언(妄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그 만큼 한일(韓日) 양국간의 역사인식의 골이 깊다는 말이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고치는 문제는, 한국 내에서 우리 한국 사람들끼리 반일적(反日的) 감정만을 분출(噴出)시키는 것으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왜 일본의 과거사(過去史) 인식을 개선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問題意識)이 한국 정부와 국민들 간에 정확히 자리 잡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물론 단순한 반일적(反日的) 국민 감정과는 다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한국 정부나 국민들 간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정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 일본의 총리가 신사를 참배하거나 중요 인사가 망언(妄言)을 할 때마다, 또는 중학교 교과서 왜곡 사건과 같은 것이 일어날 때마다 격앙(激昻)된 반일적(反日的) 언사를 서로 주고받고, 정부는 국민의 이러한 반일 감정을 어루만지기 위한 과장된 외교적 대응을 한 뒤에, 정부고 민간이고 얼마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잊어버리고 만다. 이래서는 안될 것이다.

둘째로 한국은 일본 사회에서 그 정부와 국민이 이 문제를 평균적으로 어떻게 인식(認識)하고 또 반응(反應)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현재 일본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는 일본의 과거 아시아 침략사실을 부정(否定)하는 전형적인 천황주의자(天皇主義者)이며 국가주의(國家主義)의 신봉자이다. 그의 정권은 현재 일본 국민 80%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것은 일본 사회가 보수(保守) 우익적(右翼的) 국가의식(國家意識)의 복고(復古)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본 전체가 당장 2차 대전 초기와 같은 극렬한 군국주의(軍國主義) 국가로 변모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 대다수의 인식(認識)은 일본 정부나 일부 국가주의자(國家主義者)들이 만들어 놓은 편견(偏見)을 여과없이 수용하거나 무지(無知) 또는 무관심(無關心) 상태로 머물러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일부 지식인(知識人)과 지도층(指導層)에서는 일본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 평화애호 국가로서의 주체성을 확립해서 새 시대 국제사회의 중요한 협력자로 나서기 위해서는 과거 역사의 부담을 청산하는 성실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인식(認識)이 있다. 일본의 국가 전략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대아시아 관계에 있어서 일본의 고립(孤立)과 국제사회에 있어서 일본 국가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評價)는 반듯이 극복되어야 할 과제(課題)이다.

2001년 4월 극렬 우익 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의해서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이 다시 발생하였을 때, "일본 헌법을 부정하고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는 위험한 교과서가 우리 일본 어린이들 손에 주어지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고 하여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고, 이 교과서의 채택을 저지하기 위한 시민 운동을 벌린 단체들이 일본 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바가 있다.

역사학자로서 1946년부터 일본 소학교 용 국정교과서의 집필자로 활동한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교수는 "일본인으로서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평화유지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며, 과거의 역사를 맹목적으로 미화(美化)하는 것은 일본인으로서의 자각(自覺)을 높이고 민족에 대한 애정을 기르는 올바른 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여, 국가중심주의적으로 편향된 일본 문부성이 자신이 집필한 역사 교과서 신일본사(新日本史)를 불합격 처리하자, 이에 반대하고 그 검정 처분의 부당성을 문제 삼아서 1965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 한바가 있다. 이 것이 유명한 일본의 『교과서 재판』이다. 이 교과서 재판은 1997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나오기까지 32년이 걸렸다. 최종판결에서 일본 사법부(司法府)는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 행정의 위법성을 인정하여,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교수의 오랜 법정 투쟁을 승리(勝利)로 결론지어 주었다. 말하자면 이는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역사를 왜곡해도 좋다."는 일본 내의 팽배한 국가주의적 사고가 일본 국내에서, 그 사법부(司法府)에 의해 공식적으로 부정(否定)된 사건이며 일본 국민의 역사 인식에 대한 중요한 경고(警告)가 제기되는 계기(契機)가 되었다.

셋째로는 한국 정부와 국민은 그때 그때 원초적인 반일(反日) 감정만을 분출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일본의 과거사(過去史)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한 능동적인 정책을 개발하여 하나 하나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일본 국민 및 그 정부의 역사 인식을 고쳐 놓지 않고는 일본과의 정상적인 국가 관계가 성립되거나 발전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용이하거나 간단히 성취되기에는 어려운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국민이 성실(誠實)하고 지속적(持續的)인 노력으로 일본의 역사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들을 시행해 나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러한 정책을 추진해 감에 있어서는 우선 정부가 나서야 하겠으나 한국 국민들이 민간 사회 단체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이러한 정부 정책의 진행에 호응, 협조하고 효과를 극대화 해 나가야 할 것이다.


(2) 독도 영유권문제

2000년 9월 17일 모리 일본 총리(總理)의 독도에 관한 망언(妄言)에 관해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독도문제는 새로운 한일어업협정과 관련해서 점점 풀기 어려운 문제로 되어가고 있다.

가. 독도 영유권 문제의 실상(實狀)

신 한일어업협정은 1999년 1월 22일 한일 양국간에 발효되었다. 이 협정은 유엔해양법 협약의 가동(稼動), 한일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선포 및 일본측의 일방적인 구 한일어업협정 실효(失效)조치라는 긴박한 사태의 진전과 맞물려서 협상(協商), 체결(締結) 그리고 발효(發效)라는 과정을 거쳐 서둘러 성립되었다.

이 협정은 신 해양법질서의 수용이 세계의 어느 다른 지역에서보다도 늦어진 이 동북아지역에서, 특히 생물자원의 개발과 보존에 관련된 새로운 법적 제도의 도입(導入)과 개편(改編)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는 시대적인 추세(趨勢)를 수용(受容)하고, EEZ체제의 도입에 따른 한국 측 어업계의 충격을 완화(緩和)하며, 한국과 일본 사이에 첨예한 영유권 분쟁으로 대두되어 있는 독도문제로 인하여 EEZ 경계획정이 곤란하다는 사정 등을 감안(勘案)하여, 잠정적으로 타결되었다.

특히 한일간 어업협상의 타결만을 졸속(拙速)하게 추구하기 위해서 가장 난제(難題)로 부상되어 있던 독도문제를 회피하는 방편으로 협정수역의 상당부분을, "중간수역"이라고 한국 정부가 임의적으로 호칭하는 특수한 잠정조치 수역으로 정하여 합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잠정조치 수역을 합의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한일간에 실질적으로 첨예한 분쟁 대상이 되어 있는 독도 영유권이 명백하게 한국의 권원(權原)으로 확인되고, 더 이상 훼손(毁損)되지 않기 위해서 독도(獨島)를 그 안에 내포하는 이러한 잠정적 조치수역이 합의되어서는 않된다는 비판적인 견해가 제기되었으나 이를 묵살하고 잠정적 조치수역의 합의 이외에는 대안(代案)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에 의해서 그대로 진행된 바가 있다.

이러한 우려(憂慮) 또는 비판적 견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한국정부와 일부 국제법 학자들은 이번 새 한일어업협정은 EEZ 경계문제와는 별개이며, 어업에 관한 사항만을 잠정적으로 합의한 것이므로 독도(獨島)가 중간수역 안에 들어가 있더라도 독도 영유권 문제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이 문제에 관한 우려(憂慮)와 비판(批判)에 대하여 "사실을 왜곡하여 여론(與論)을 오도(誤導)하는, 어설픈 국제법 논쟁"이라고 반박하였으며 정부는 본격적인 대국민 홍보를 실시한 바가 있다.

물론 이 새 한일어업협정상 소위 "중간수역"에서 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사항을 한국과 일본이 서로 협의하여 "권고"하고 이를 "존중"해서 실시하는 과정에서 지금 까지 어렵게 유지해온 독도에 관한 한국 영유권의 배타성(排他性)은 필연적(必然的)으로 훼손(毁損)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 협정은 어업에 관한 것만을 합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어업에 관한 중요한 문제들은 이 협정에서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일어업공동위원회 등의 실무협의에 위임되어 있고 한일(韓日)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범위에 관한 구체적이고 중대한 합의가 이 협정의 골자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이 협정은 어업에 관한 합의라기보다는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의 적용범위에 관한 합의"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잠정적 조치수역인 소위「중간수역」을 합의하기 위해서 한국의 영토인 독도로부터는 전속적 관할 범위로 합의되어 있는 35해리를 .적용하지 않았다.

"독도에서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의 이 은밀(隱密)한 방침(方針)은, 법적 요건이 극히 모호한 유엔해양법 협약 제121조 3항을 근거(根據)로 한다고 생각되나, 이 문제의 조항에 관한 이런 단순한 해석은, 국제법적 이론의 현대적 추세와 맞지 않고, 독도에 부두시설과 어민 숙소 등을 축조하고 유인(有人) 등대를 운용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도 무시하는 입장이므로 이 한국 정부의 태도는 결국 주권적 관할권의 포기(抛棄)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국내법 체제에서와는 달라서 국제법(國際法)상으로 본다면, 영유권(領有權)은 각 당사국과는 별도의 상위(上位)의 권위 주체가 확정적(確定的)으로 이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주권적 관할수역인 EEZ를 한국이 독도로부터 포기함으로서 성립된 신한일어업협정상의 중간수역 설정은, 한국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의 배타성(排他性)을 훼손(毁損)하게 된다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보면 너무나 자명(自明)한 이치이다.

본래 한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동해(東海) 중간수역에서 어업공동위원회의 자원 보존과 관리를 위한 규제조치에 관한 합의 사항은 당사국에 "권고"되고 이를 "존중"하게 되어 있어서 비기속적인 것이고, 따라서 이 중간수역은 "공해적(公海的) 성격"의 수역으로 유지되므로 "자원의 공동관리가 배제(排除)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정부와 일부 국내 국제법학자들의 주장은 현 한일어업협정의 법리적 해석상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잘못된 이론이다.

해양법 이론상 이 중간수역은 유엔해양법협약 제74조 3항에 근거한 잠정적 조치 수역이며 그 중에서도 성격상 회색잠정조치 수역(grey zone)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회색 잠정조치수역이란 배타적 경제수역 제도에 있어서와 거의 같은 비교적 충실한 어업자원의 보존, 관리조치가 시행되는 잠정적 합의 수역을 말한다. 이때에 관련 당사국간에 해양관할권 범위의 경계획정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각 당사국들은 자국 국적 어선에 대해서만 규제를 실시하는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계나 정책실무자들간에 이를 편의적으로 "기국주의(旗國主義) 방식"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분쟁지역 내에서 각 관련 당사국들이 소위(所謂) 이러한 "기국주의(旗國主義) 방식"으로 어자원 관리를 한다는 것은 무절제하고 자유분방한 어로(漁撈) 활동을 억제하여 분쟁지역의 어자원(魚資源)이 과잉개발(過剩開發)되는 것을 방지하고 어장(漁場)의 황폐화(荒廢化)를 막기 위한 방도로서는 적절하거나 충분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회색 잠정조치수역(grey zone)에서는 단순한 기국주의 방식이 아무런 조건 없이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형태의 자원 공동관리가 시도(試圖)된다. 이러한 자원 공동관리의 태양(態樣)과 조건(條件)들은 각 사례 및 경우마다 다양(多樣)하다고 보아야 한다. 대체로 어자원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 어획 노력량(勞力量: 어선 척수, 마력, 등)의 제한(input control) 또는 어획량(漁獲量: 즉 TAC) 제한(output control)관련 규제조치들을 당사국간에 상호 합의로 채택하고 이를 공동으로 또는 각 당사국 별로 실시하는 것이다. 각 당사국 별로 실시하는 경우에도 위반 어선의 상호 통보의무(通報義務) 및 결과조치의 확인 등 실질적 공동관리(共同管理) 효과를 확보하는 장치가 따르고 있다.

최근에 와서 일부 국내 학자들이 필자(筆者)의 견해에 부분적으로 동조(同調)하여, 동해(東海) 한일(韓日) 중간수역은 결국 유엔 해양법 협약 제74조 3항에 의거한 잠정적 조치 수역이며 자원의 공동관리수역이라는 점에 동의(同意)하고 있다. 이것만 해도 상당한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독도가 포함된 동해 중간수역에서 결국 한국과 일본이 어업자원의 보존을 위한 공동관리와 규제를 시행하게된다고 해도, 역시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는 아무런 침해(侵害)를 가져올 수 없을 것이라는 단서(但書)를 부치고 있다.

그러나 중간수역 안에서 현 한일어업협정 제12조와 그 부속서Ⅰ에서 규정된 바와 같은 공동관리를 위한 규제조치를 한국과 일본이 합의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독도에 대한 한국 영역주권의 배타성이 훼손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대부분의 한국 국제법학자들이 이처럼 명백한 국제법상의 이치(理致)를 간과(看過)하고, 현 한일어업협정은 독도 영유권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명(自明)한 국제법적인 당위(當爲)가 한국 정부의 한심스런 변명이나, 이들 한국 국제법학자들의 무책임하고 무식(無識)한 다수결(多數決)만으로 변경되거나 무시(無視)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은 1999년 7월 한일어업공동위원회가 가동(稼動)됨에 따라서 중간수역에서의 자원 보존을 위한 "이미 합의된"(또는 일본이 일방적으로 이미 상호 합의되었다고 주장하는) 조업규제를 즉시 채택, 실시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실무협상 단계에 들어와서 위와 같은 강한 요구를 제시하는 일본에 대하여, 한국 정부는 적절한 대응 방안의 수립에 부심(腐心)하였다.

1999년 9월 20, 21일에 서울에서 있었던 한일 양국간의 어업실무회의에서 한국 측은 일본측 EEZ수역에서의 조업을 전면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중간수역에서의 공동관리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하였다. 현재까지 중간수역에서의 자원보존 및 관리규제조치 방안을 협정 제12조와 그 부속서Ⅰ의 규정에 따라서 한일어업공동위원회에서 합의하고 권고하자는 일본의 요구를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한국의 확고한 입장은 견지되고 있다. 2000년 12월까지 합의된 내용은,

-중간수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각국의 자원조성 방안은 양국이 각각 독자적으로 실시하고,

-중간수역에서 한일 어업간의 조업마찰을 해소하고, 자원조성보호를 위해 한국의 수협(水協)과 일본의 수산회(水産會)는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서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한다.
는 것이다.

중간수역에서의 공동관리를 위한 어떠한 규제조치의 합의도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한국 측 협상단의 입장은 한국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무협상단(해양수산부)의 어려운 결단과 선택은, 한일어업협정을 해석하는 종래의 한국정부(외교통상부)의 기본입장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여러 번 지적해 온 것처럼, 이러한 한국 정부와 일부 국내 국제법학자들이 주장하는 "어업협정과 독도 영유권 문제는 분리(分離)되어 있다."는 주장은 현 한일어업협정의 법리적 해석상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잘못된 이론인 것이다.

다행히도 해양수산부 실무협상단이 이런 착오에 빠진 이론에 안주(安住)하다가는 국가 영토(領土)를 상실(喪失)하게 되는 필연적 과정이 시작된다는 것을 유의하고 어려운 결단과 선택을 해낸 것이다. 어업협상에서 직접 일본과 규제 조치의 내용을 협의하고 채택해야하는 실무적 안목(眼目)이 종래 한국정부와 일부 국제법학자들의 다수설(多數說)이 고집하는 잘못된 법적 가설(假說)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일어업협정의 실질적 내용을 간취(看取)하게 된 것이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이러한 한국 측의 새로운 강경방침(强硬方針) 만으로 궁극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측이 중간수역에서 자원 관리를 위한 공동적 규제 조치의 합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1999년 한일어업협정에 명시되어 있는 조약상의 협의 의무(Pactum de negotiando, de consultando)와 합의 의무(Pactum de contrahendo)를 위반하는 것이 되므로, 언제까지나 이러한 공동적 규제 조치의 합의 자체를 거부하는 강경 방침이 계속해서 수용되거나 유지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국의 강경방침이 무너지는 순간, 독도에 대한 한국의 배타적 영토 주권은 훼손(毁損), 상실(喪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 한일어업협정의 법적 구조(構造) 위에서 독도를 지킨다는 것은 아무리 우수한 협상단(協商團)에게 있어서도 성취가 불가능한 임무이다. 이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한일어업협정의 씨나리오인 것이다. 그러므로 독도는 지금 아주 위험하게 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은 이 어업협정을 즉시 종결하고 재협상을 개시하여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신한일어업협정과 관련하여 독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영토정책이 기본적으로 시정(是正)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 독도문제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 지난 2001년 3월 21일 한국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의 본안(本案) 판단 중, "(4) 영토권의 침해 여부" 항목에서 재판부는 "이 한일어업협정으로 인하여 독도의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한 영토권이 침해되었다는 청구인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할 것이다." 라고 판결하고 있다.
대체로 헌법재판소가 이러한 판결을 한 이유를 정리해보면,

1) 이 중간수역은 ...그 설정에 있어서 어느 일국의 일방적인 양보로는 보이지 않고 또한 상호간에 현저히 균형을 잃은 설정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2) 이 어업협정은 배타적 경제수역을 직접 규정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배타적 경제수역이 설정된다고 하더라도 영해를 제외한 수역을 의미하며, 이러한 점들은 이 사건 협정에서의 이른 바 중간수역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할 것이므로, 독도의 영유권 문제나 영해문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지 아니한 것임은 명백하다 할 것이다.

라고 판시(判示)하고 있다.

위 판결을 보면, 이 판결에서 헌법재판소가 이 중간수역은 "공해적(公海的) 성격"의 수역으로 유지되므로 "자원의 공동관리가 배제(排除)될 수 있다."고 보는 정부 입장의 성립여부에 대한 법적인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헌법재판소는 이 판결에서 한일어업협정이 중간수역 안에 독도를 위치하도록 규정함으로서 한국의 영토주권을 침해한 것인가의 여부를 판단하려고 했다. 결국 이 법원은 "한일어업협정이 중간수역 안에 독도를 위치하도록 규정함으로서 한국의 영토주권을 침해한 것이다."라고 주장한 청구인들의 주장을 "이유 없다."고 결론지었는데, 이러한 결론의 근거가 된, 두 가지 판결이유에 대해서 보기로 하자.

1) 중간수역 획선에서 한일(韓日)의 균형
-독도 문제에 대한 기본적 접근방식의 문제-

헌법재판소 판결의 첫 번째의 이유는,
"이 중간수역은 ...그 설정에 있어서 어느 일 국의 일방적인 양보로는 보이지 않고 또한 상호간에 현저히 균형을 잃은 설정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중간수역이라는 잠정적인 합의수역을 획정함에 있어서, 한일(韓日) 간에 각국의 연안에서 전관수역 35해리의 기준을 똑 같이 적용하면서 동쪽 한계선 동경 135°30′ 및 서쪽 한계선 131°40′을 합의 한 것 등이 일본으로서도 상당한 양보를 한 것으로 보이므로 "상호간에 현저히 균형을 잃은 설정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이 된다.

이같은 판단은 중간수역 문제에 관한 정부의 공식 입장을 합리화하는 어용적(御用的) 주장을 편 어느 법학교수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고(思考)"[sic]를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논리이다. 특히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한국과 일본이 [연안으로부터 35해리인 전관수역 기준]을 똑 같이 독도에 대해서 적용함을 자제(自制)한 것"이므로 이것이 "서로 균형을 이룬 것"이라고 본 것인데, 이러한 논리는 독도의 영유권에 관한 한 한국과 일본을 동일한 지위로 간주한다는 전제(前提)에 서야만 가능한 입론(立論)이다.

독도는 한국의 영토이며, 지금까지 역사적 사실이나 국제법상의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영토적 주권은 일관되게 훼손되지 않고 유지되어 왔다. 물론 현재 한국이 실효적인 지배를 하고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한국과 일본의 국제법적인 지위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결코 대등(對等)한 것은 아니며, 주관적으로 한국이 이를 대등한 지위로 상정한다는 것은 더구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위 독도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입장이라는 것이,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국제법상 우리 고유의 영토이며, 우리가 실효적으로 점유하면서 독도와 그 영해에 대해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독도문제는 한일(韓日)간의 영유권 분쟁이 아니며, 한.일간 외교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 어느 만큼의 진실(眞實)된 의지(意志)가 담겨 있는 것이라면, 일본과의 중간수역 획정에 있어서 "균형감각적 조정(調整)"이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고(思考)"와 같은 것은 들어설 여지가 없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한국의 공인(公認)된 최고재판소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가 이러한 부적절하고, 불합리한 판단을 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언젠가는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어떤 국제법정(國際法廷)에서 한국 최고재판소의 이 판결을 쓸모 있게 인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2) 독도문제와 한일어업협정은 결국 분리(分離)될 수 있는가?

한국 헌법재판소 판결의 두 번째의 이유에 관해서 보면,
"이 어업협정은 배타적 경제수역을 직접 규정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배타적 경제수역이 설정된다고 하더라도 영해를 제외한 수역을 의미하며, 이러한 점들은 이 사건 협정에서의 이른바 중간수역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할 것이므로, 독도 영유권 문제나 영해문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지 아니한 것임은 명백하다 할 것이다."[sic] 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정부의 해명(解明) 중에서 "이 한일어업협정의 대상 수역은 영해(領海) 이원(以遠)의 EEZ에 대한 것이고(협정 제1조) 따라서 중간수역도 결국 독도의 영해(領海) 이원(以遠)의 수역에 대한 합의이므로 독도의 영유권 문제나 영해문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지 아니한 것이다."라는 논리를 지지(支持), 석명(釋明)하는 취지로 이해되는 바, 그 법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정부측의 표현보다도 오히려 더 모호하고 비논리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서 최고재판소의 판결로서는 조금 더 다듬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그러나 생각건대 이는 아주 중요한 논거(論據)이다.

-중간수역에서 한일간에 자원의 공동관리가 성립되어도 독도 영유권 문제는 분리되는가?
지금에 와서 "중간수역은 공해적(公海的) 성격"의 수역으로 유지되므로 "자원의 공동관리가 배제(排除)될 수 있다."고 보는 한국정부 입장은, 더 이상 한일어업협정의 해석상 이론적으로 성립되기 어렵다고 하는 점에 동의하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중간수역에서 『자원의 공동관리』를 일본과 함께 설사 실시한다고 해도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주장을 덧부치고 있다. 즉, "중간수역에 있어서의 자원 공동관리는 독도의 영해(領海) 이원(以遠)의 수역에 있어서의 공동적 관리에 대한 합의이므로 이러한 어업에 관한 합의는 독도의 영유권 문제 및 그 영해 12해리의 배타성 문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지 아니한다." 라는 입장으로 돌아간다.

즉 다시 말해서 영해 12해리 범위만이 국가 영역권(領域權)의 대상이고, 그 외측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은 이른 바, 국가영역 범위는 아니므로 여기에서 생물자원에 대해서 타국과 공동적 관리(condominium)가 성립한다고 해도 그 것은 국가 영역주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아니한다는 취지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연안국의 생물자원 개발, 보존 및 관리에 관한 주권적 권리가 타국과 공동적으로 행사되는 것으로 인하여, 그러한 EEZ 관할권의 기초가 된 연안국 육지에 대한 지배권이 훼손되는가? 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가? 하는 문제로 집약된다.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연안국의 생물자원 개발, 보존 및 관리에 관한 연안국의 권리는 주변 수역에 대한 관할권으로서는 영해(領海)나 심지어 대륙붕(大陸棚)에 대한 권리와 비교해서도 상당히 제한적인 특성을 갖고 있으나, 그 자체는 역시 주권적 관할권으로, 연안국은 200해리 EEZ내의 사람과 자원에 대해서 최고의 권위로 배타적으로 명령, 강제할 수 있어야 하며, 타국으로부터 그 제도가 허용하지 않는 간섭(干涉)을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잠정적 조치 수역에서 -즉 회색잠정조치 수역(grey zone) 등에서- 자원의 공동관리가 양 당사국에 의해서 진행되려면, 필연적으로 양 연안국은 그 합의수역 내의 사람과 자원에 대해서 각기 최고의 권위로, 배타적인 지위에서 명령, 강제할 수 없게될 것이며, 서로 해양법상 EEZ 제도가 허용하지 않는 간섭을 상대방 국가로부터 받게되는 것을 배제할 수 없게된다.

합의된 잠정조치 수역 안에 독도와 같은 영토분쟁이 있는 육지가 없는 일반적인 경우 -즉 통상적인 grey zone-에는 위와 같은 주권적 권리의 배타성(排他性)이 제한되는 사례의 축적(蓄積)이 있다고 하드라도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EEZ에 대해서 양국의 법적 지위는 대등하기 때문에, 이 "배타성이 제한되는 사례"를 어느 일방이 자국에게만 유리하게 원용(援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양 당사국간의 최종적인 경계가 확정되면 이러한 주권적 권리의 배타성(排他性)의 제한은 당연히 치유(治癒)된다고 보아야 한다.

합의된 잠정조치 수역 안에 독도(獨島)와 같이 영토분쟁이 있는 육지가 있을 때, 위와 같은 주권적 권리의 배타성(排他性)이 제한되는 사례의 축적(蓄積)은 영유권의 귀속을 판단함에 있어서 어떤 일방 당사국 즉, 일본에게 강력한 주권적 권원(sovereign title)을 입증할 수 있는 계기(契機)를 부여할 수 있다. 일본은 "배타성이 제한되는 사례"를 자국에게 유리하게 원용(援用)할 수 있게된다. 그러므로, 자원의 공동관리가 성립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그 연유된 영토(領土)의 공동영유(共同領有)로 추정(推定)되는 것은 아니지만, 필연적인 과정을 거쳐서 결국 한국의 영역 주권을 훼손하게되는 것이다.

국제법에 있어서 영토(領土)에 대한 국가의 권원은 언제나 상대적(相對的)이란 점에 유의해야만 한다. 국제법에서는 언제나,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확정적으로 성립되는 영토적 권원을 보장하는 그러한 제도는 없다. 국가의 영역권은 각 개별 국가의 주권적 권한 행사의 실적(實積)과 권리관계의 변화에 따라, 어떤 특정 국가의 권원(權原)으로 확정적으로 응고(凝固)되는 경우도 있고, 상실(喪失)되는 경우도 있다. 주권적 권리는 포기(抛棄)될 수도, 재취득(再取得) 될 수도 있다. 국가의 영역권은, 특히 "다툼이 있는 영유권"은 그것이 취득되거나 성립될 당시의 국제법에 의하여 입증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법률적 사실은 그 사건 당시의 법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한다."라는 법의 일반 원칙에서 연유되는 이론이다.

여러 국제판례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영역권의 귀속(歸屬)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분쟁이 계류된 전기간 동안의 당사국 행위를 전체적으로 면밀히 추적해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사국들은 영유권의 주장과 국권의 행사를 일관성(一貫性) 있게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주권적 영역권이 획득되는 또는 확정되는 정형적(定型的)인 공식(公式)이란 없다. 다만 각종의 거증(擧證) 사실들에 적절한 법리를 적용하고 결합하여 얼마만치 분쟁 상대국의 논리보다 더 강력한 주권적 권원(sovereign title)을 입증하는 가에 관건(關鍵)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최고재판소이므로 그 판결은 한국 국내법에 관한 한 최종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독도 영유권 문제는 결국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적으로 판단될 것이며 한국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판단하였는가 하는 것은 최종적인 결론이 되지 않는다.


다. 독도 영유권 문제의 올바른 접근방법

독도문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대응자세 전반(全般)에 대한 반성이 차제(此際)에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싶다.
독도문제는 사실상 첨각열도(尖閣列島)나 북방 4도(北方 4島) 등 일본이 연루된 도서(島嶼) 영유권 분쟁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명백하고 당연한 한국의 영토에 대해서, 일본은 근거없는 권원(權原)을 주장함으로서, 그 군국주의적 우월감이 수 백년 전부터 우리의 자존심을 유린해온 뼈아픈 역사적인 과제(課題)이다. 더 이상 우리들의 나태(懶怠)와 우매(愚昧)함이 인접국의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조장(助長)하는 불행을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이든 테러든 국가간의 충돌(衝突)은 증오심이 그 원인이며 이러한 증오심은 침략자나 테러분자에게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경우에 그 피해자(被害者) 자신의 어리석음과 나태(懶怠)에도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1) 독도문제에 관한 대일정책(對日政策)의 반성(反省)

독도 영유권에 대한 한국의 대일정책(對日政策)이야말로 원칙(原則)이 없이 강온(强溫)의 진폭(振幅)이 컸으며, 그때 그때 각 국면(局面)을 미봉적(彌縫的)으로 다룰 뿐, 엄연한 국가 영토를 지키기 위한 통일된 의지(意志)와 능력(能力)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① 독도와 관련해서 한국 측이 첫 번째 초강경(超强硬) 대일(對日) 자세를 보인 것은 1996년 2월이다.
일본 하시모토 총리가 200해리 경제수역을 독도에서 기점(起點)하겠다는 발언을 하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신중론(愼重論)을 펴는 외무부를 질타(叱咤)하고, 정부대변인의 특별 논평을 통해서 일본의 주장을 공격적(攻擊的)으로 반박하였다.

[소위 "버르장머리를 고쳐준다."는 김 대통령 발언 사건]
한국은 1996년 5월 9일부터 열린 한일(韓日)간 어업협정 개정을 위한 실무자 회의에서, 독도문제에 관련된 기본 입장으로, "EEZ는 양국간의 경계가 획정된 이후(以後)라야 협정 적용수역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므로 경계획정 협상과 어업협정 개정의 협상은 동시(同時) 연계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1996년 6월 23일 제주도 한일 정상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서 포기되었다.

이 정상회담에서 하시모토 일본 수상은 3월 방콕에서 있었던 ASEM회의 논의의 연장으로, "신 해양법 협약상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제도의 도입과 관련해서 필연적으로 제기될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영유권 문제와 어업협정은 별개의 문제로 하여 해결하자."라고 답변하였다. 김동조 전 주일대사는 그의 회고록에서, "이 한일(韓日)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의 발언에 김영삼 한국(韓國) 대통령이 말려들은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김대통령의 이 발언은, "한일간에 독도에 관한 영유권 문제가 현안으로 존재한다."는 일본의 주장을 묵살하지 않고 인정한 셈이 되는 것이다. 김동조 전 주일대사는 "일본 언론까지 나서서 김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태도 변화를 『유연한 자세...』 운운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사실이 잊혀지지 않는 다."고 회고하고 있다.

당시 한국정부의 이러한 강경 자세는 1월부터 독도에 관해 일본 정부가 취한 일련의 공격적인 태도에 격분하고 있던 한국의 민심을 예민하게 읽고 있었던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감각과 동년 4월 11일에 예정되어 있었던 총선 등을 의식한 정당정치적인 배려 등이 작용한 것이며 일본에 대한 단호한 영토정책이 새롭게 마련된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의 양보(讓步)로 한국은 종래의 기본 입장을 수정하여, 1997년 3월 6일부터는 경계획정 문제(영유권 문제를 전제로 하는)와 어업문제를 분리 협상하자는 일본의 주장을 받아드렸다.

한국은 이어서 같은 해 10월 8일 한일 어업실무자 회의에서, 동해에서 독도를 포함한 수역에 잠정조치수역을 설정하는 안에도 결국 동의하였다.

② 독도와 관련해서 한국 측이 두 번째 강경(强硬)한 대일(對日)자세를 보인 것은 1997년 12월과 1998년 1월이다.
1997년 말까지, 한일(韓日)간 어업협력 실무협의의 주요쟁점은 1974년 북부대륙붕경계협정상 제35번점 이북의 [잠정합의수역]범위를 획정하는 문제로 집약되었다. 제7차 실무회담(97.11.29.) 이후 일본은 한국에 대하여 어업협정의 조기 타결을 강력히 요구(본래 협상 타결의 시한(時限)을 97년 7월 20일로 주장했던 것이지만 다시 97년 12월말까지로 협상 시한을 통보하고 있었다.)하고 12월에 일본 외무차관 및 외무장관이 연속적으로 방한(訪韓)하여 독촉하였다. 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는 전속관할수역의 범위 문제에서 34해리를 고집하고 잠정합의수역의 동측한계를 136°로 할 것을 고집하여 어업협정의 조기 타결을 완강하게 거부(拒否)하였다.

잠정적 합의수역을 설정한다고 하는 중요한 문제까지를 이미 양보해 놓고 있었던 한국정부로서는 구체적 협상에 있어서 전속관할수역의 범위에도 34해리로 접근되어 있었으며 동측한계선이 동경 136°가 되든 135°가 되든 그것은 사실상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였던 것인데 당시 임기가 얼마남지 않았던 김영삼 정부가 이런 것을 이유로 그처럼 완강한 반대의 입장을 견지했던 것은, 금융위기 사태로 국민의 신망(信望)을 상실해가고 있었던 당시에 또 하나 의 정치적 악재(惡材)가 될 수 있는 이 잘못되어 가는 한일어업협정의 최종 타결을 차기 정부로 미루어 보자는 속셈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침내 일본이 구 한일어업협정을 1998년 1월 22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사태로까지 가게되었는데 한국 김영삼 정부는 이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 강경조치로서 동 1월 24일 일본 주변수역에 대한 한국정부의 어업자율규제조치를 정지(停止)시켰다.

일본의 협약 일방파기조치는 구 한일어업협정상 효력정지조항에 따라 합법적으로 실시한 것이나, 신어업협정의 타결을 위해서 양국이 협상 중에 있었던 만큼, 협상내용과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종결조치를 감행한 것은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합리적 협력관계를 추구해야 할 현대 국제사회의 기본적 의무에 반하는 것으로서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보복적 조치로서 어업자율규제조치를 정지(停止)시킴으로서 일본측이 부담할 국제윤리적인 책임을 해소(解消)시키는 효과를 가져 왔을 뿐이다. 왜냐하면 어업자율규제조치란 사실상 구 한일어업협정의 합의내용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는 비기속적(非羈束的) 조약으로서 이를 일방적으로 정지(停止)하는 것도 일본의 일방 파기행위 못지 않게 국제윤리적으로 심각하게 비난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정부의 이러한 일련의 강경조치는 독도 영유권을 확보한다든지 어업협정의 내용을 국익에 맞게 관철하는 문제에 정책초점이 있었다기 보다는 비등(飛騰)하는 국민의 반일감정(反日感情)에 정치적으로 영합(迎合)할 수 있는 극적(劇的)인 방도를 찾는 데에 몰두해 있었든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방법으로 구사(驅使)된 한국 측의 소위 대일(對日) 강경조치(强硬措置) 즉 어업자율규제조치의 정지(停止)는 김대중 정부에 와서 1998년 7월 2일 아무런 명분도 없이 다시 재개(再開)되었다.

③ 독도와 관련해서 한국 측이 세 번째 강경(强硬)한 대일(對日)자세를 보인 것은 1999년 9월이다.

이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999년 9월 20, 21일에 서울에서 있었던 한일 양국간의 어업실무회의에서 한국 측이 일본측에게 EEZ수역에서의 조업을 전면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중간수역에서의 공동관리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한 사건을 말한다.

이러한 강경(强硬) 입장이 법적으로 취약(脆弱)한 것임은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앞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 강경 입장은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아무런 명분이나 이유도 없이 슬그머니 양보(讓步)와 온건책(穩健策)으로 변할 수 있다. 즉 중간수역에서의 자원 공동관리를 수용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독도에 대한 한국 영역주권의 배타성이 훼손되기 시작한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그대로이다.


2) 독도문제에 관한 대일정책(對日政策)의 대안(代案)

[1] 한일어업협정은 즉시 폐기되어야 한다.

자명(自明)한 결론은, "잘못된 현재의 한일어업협정을 즉시 전면적으로 폐기(廢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韓日) 양국이 합의하기만 하면 이 어업협정은 언제라도, 즉시 폐기(廢棄)될 수 있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폐기할 수 있는가?

이 협정에는 협약 종료에 관한 규정이 있다. 3년의 유효기간이 만료된 이후에는 어느 당사국이라도 일방적으로 이 협정을 종료(終了)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2002년 1월 22일 이후에 한국은 일본과의 합의없이도 일방적으로 이 협정의 종료의사를 일본에 통고(通告)할 수 있으며 그 통고 6개월 후에 이 협정은 종료된다.

한국과 일본간에 다른 대체할 수 있는 어업협정을 다시 체결하지 못하거나 또는 지금 있는 불완전하나마 이 어업협정마저도 -한국 측의 일방적인 종결 선언 등으로- 없게 되는 경우에 동해(東海) 바다는 무협정 상태가 되어 양국의 우호관계가 저해(沮害)되는 것은 물론, 어업분규와 영유권 분쟁이 표면화됨으로서 오히려 독도 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破局)으로 갈 것이라는 것이 이 협정 체결 당시 한국정부의 판단이며, 공식적으로는 지금도 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이른 바 이 "무협정 상태의 공포"는 이 협정을 졸속으로 타결하여 비준, 발효시킨 때로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일본에 대한 모든 양보(讓步)와 회피(回避)의 이유(理由)요, 명분(名分)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현재와 같은 어업협정이 있는 것은 한일(韓日)간에 어업협력 문제와 독도영유권 문제에 관련한 분쟁을 방지한다는 의미에 있어서 한국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a) 어업협력의 측면

우선 어업협력의 측면을 보면, 2001년 한국어선의 일본측 수역에의 입어할당량에 대한 실제 어획소진율(消盡率)은 입어할당량 10만 9천톤의 17%(1만 8천톤)를 밑돌고 있다.(표-2 참조) 또한 최근 일본해상보안청 순시선들의 한국 어선에 대한 공격적(攻擊的)이고 극한적(極限的)인 규제로 인하여 한국어선들의 합법적인 일본수역 입어는 앞으로 위축(萎縮)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된다.

더구나 협약 발효후 3년차가 만기(滿期)되는 2002년 1월 22일 이후는 한일 양국의 입어할당량을 등량(等量)으로 조정토록 되어있는 바, 그렇게 되면 양국 공히 상대방 수역에서의 조업은 실질적으로 그 중요성을 상실(喪失)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대체어장의 개발과 근해 양식어업의 진흥(振興)으로 이러한 일본 수역에서의 어획 결손(缺損)을 보완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시켜 나가야 한다. 즉 현재와 같은 한일어업협정의 테두리는 어차피 어업협력의 면에서도 그 의의를 상실하는 것이다.

-b) 영유권 및 어업 분쟁 방지의 측면

"무협정 상태의 공포"란 사실상 한일어업협정을 졸속(拙速)하게 타결, 발효시켜야 했든 집권 초기의 김대중 정부와 하시모토 정부의 교감(交感)에 의해서 조작된 『허구(虛構)의 최면(催眠)』이다. 한중어업협정이 한일업협정 보다 1년 6개월이나 뒤늦게 발효된 지난 2001년 6월 31일까지, 동해(東海)보다도 자원의 고갈과 환경의 훼손이 심각한 황해(黃海)와 동중국해(東中國海)에서 한국과 중국은 무려 40여 년을 "무협정 상태"로 견디어 온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도 황해(黃海)를 석권(席捲)하며, 한국 측 수역에로 공격적인 어로(漁撈)를 감행하여 한국 측 연안에서 년간 3천억원 이상의 어자원을 수탈(收奪)해 가는 중국 어선의 횡포는 전혀 급한 상황이 못되고, 동해(東海)에서 우리 어부들이 일본측 수역에 들어가서 다소 무질서한 조업을 하게되는 사태가 그다지 극한적인 위험상황이었단 말인가?

-현재 한일 양국간에 그 법적인 인식이 모호하고, 그렇기 때문에 소위 입어의 규제가 시행되지 않는 중간수역에서는 한국 어선들의 남획이 자행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이 사태를 중시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가 외교적으로 처리하기 곤란한 어업분쟁이 이 지역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 한일어업협정이 한일간의 어업분쟁을 방지해 준다는 믿음은 이미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어업협정은 영유권 분쟁을 방지(防止)해 주고 있는가?
앞에서 누누히 지적한 것과 같이 이 협정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일본의 독도에 관한 입지를 강화시켜주고 있다. 이 협정은 독도 영유권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의 법적인 지위를 대등한 것으로 공인(公認)한 관련 당사국의 합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독도에 관한 영유권 분쟁의 실재(實在)를 공식적으로 확인(確認)하고, 부각(浮刻)시킨 국제법상 법률행위의 증거이다. 이 협정 그 자체가 영유권 분쟁을 도발(挑發)시키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2] 대안-1 :

어업에 관한 일본과의 합의를 보류(保留)하고, 배타적 경제수역 잠정경계합의의 타결(妥結)에 양국간의 협상 노력을 집중한다.

배타적 경제수역의 한일간 잠정적 경계로는 독도-오끼 중간선과 울릉도-오끼 중간선의 half effect line 을 제시한다.
한일(韓日) 간의 해양 경계획정에 있어서 특히 독도의 경우는 그 간의 영유권의 논의가 한일(韓日) 간에 심각하게 있어 왔다는 점과 이를 성숙된 분별과 이해로 해결해 간다는 정치적인 고려가 개입될 여지가 있으므로 이러한 정치적 고려의 형식으로는 이 반분효과(半分效果) 인정 방식이 가장 수용되기 쉬운 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3] 대안-2 :
EEZ 어업협력에 관한 일본과의 대체합의를 타결한다.
위요지(圍繞地 ; enclave)를 설정해서 독도문제를 분리하는 방안

현 한일어업협정 체제와 유사한 합의의 구조를 유지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독도 문제를 확실하게 이 어업협정과 분리(分離)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다면, 독도 주변에 종횡(縱橫)으로 폭(輻) 약 24해리 정도의 장방형(長方形)인 위요지(圍繞地 ; enclave)를 설정해서 이 구역에 대해 어업협정의 적용을 명시적으로 배제토록 하는 방안이 제안될 수 있다.

첨예한 법적 견해의 대립이 있거나 일률적인 법적 원리의 적용이 모순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 즉, 특수한 도서(島嶼)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에 분쟁해결의 방식으로서 이러한 섬을 위요지(圍繞地)로 분리(分離)할 수 있다.

한일어업협정의 경우에 EEZ경계획정 문제와 어업질서의 재정립 문제를 기술적으로 분리한다는 점에는 1997년 4월 이후 한국과 일본 양국의 의사가 합치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충실하며 독도영유권 문제를 어업협정의 내용과 분리시킨다는 목적을 법적으로 충실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위요지(圍繞地 ; enclave) 설정방안이 현실적이다.
이 방안의 장점과 제한점은 다음과 같다.

[장점]
한국의 121조 3항 해석에 관한 지금까지의 입장에 관해서 재론(再論)하지 않음으로서 독도 영유권에 대한 한국의 주장을 일본이 간접적으로나마 받아드리도록 해야 하는 부담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도에 대한 한국의 현실적 점유 형식이 어업협정의 시행과정에서 법적인 영향을 받음이 없이 존속될 수 있다는 것을 보장받을 수 있다.

[제한점]
한일간에 독도 영유권의 분쟁이 존재함을 명시적으로 전제로 하는 방안이므로 지금까지 독도영유권에 관한 한일간의 분쟁 자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온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양보를 해야 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한국이 독도 영유권에 관한 분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지금의 입장이 법적으로 아무런 의의가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분쟁의 존재를 인정하고 양국간에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성숙된 자세의 재정립을 위해서는 의미있는 발전이 될 수 있다.

독도로부터의 한국의 접속수역만이 보장될 뿐, EEZ관할을 주장하지 못하는 상황은 현재와 동일하다. 즉 1999년 한일어업협정을 합의할 당시 한국이 121조 3항을 빌미로 독도로부터의 35해리 전속적 관할 수역을 포기하였는 바, 이 위요지 설정 방안에서는 이러한 전속관할 수역 포기상태가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방안은 양국간의 영유권 주장의 대립 사실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과도적인 조치로서, 양국간의 영유권 분쟁을 타결하고 EEZ경계에 합의할 때까지 한국이 전향적으로 그 EEZ관할 주장을 유보한 것으로 명시한다면, 소위 영토로부터의 적법한 국가 기능과 권능의 행사를 무단히 포기, 중단한 것으로 원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협상 과정에서 일본은 외형상 한국의 중요한 양보를 전제로 한 해결방안에 협조하는 것이 되므로 일본측은 한국 측 제의를 수용하는 국내적 명분을 얻고, 한국 측은 협상 추진력이 강화된다. 이것은 조약의 개정(改正)에 해당되므로 한국과 일본이 합의(合意)만 하면 동해(東海) 중간수역에 대한 협정 적용구역 변경사항으로 이러한 내용을 추가(追加)하는 것이 가능하다.

(3) 남쿠릴 꽁치 조업 문제

지난 7월말부터, 남쿠릴 열도 동쪽 수역에서 조업에 착수한 26척의 한국 꽁치잡이 어선단은 일본이나 러시아측으로부터 아무런 방해를 받음이 없이 꽁치어군을 쫓아 서서히 남쿠릴 열도 북동쪽으로 올라면서 조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온과 기상상황이 꽁치잡이에 적당한 상태가 계속되어 러시아측으로부터 받아놓은 1만5000t의 쿼터량을, 조업허가 시한인 11월 15일 이전에 모두 채우고 귀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한·일 어업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한국의 꽁치 어업은 일본 산리쿠수역 12해리 이원에서 쿼타에 대한 아무런 제약없이 연간 3∼5만톤씩 조업이 이루어졌으나, 신한·일어업협정체결에 따라 종전의 산리쿠수역 12해리에서 어장성이 낮은 35해리이원으로 조업수역이 축소되고 쿼타제한을 받아 경제성있는 조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국 어선은 러시아 남쿠릴수역에 진출하여 러측으로부터 민간 상업쿼타(민간업체간 계약에 의해 배정)를 확보하여 조업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정부는 2001년부터 쿼타배정 방식을 국제경쟁입찰 방식(Auction)으로 전환하였다. 한국정부는 안정적인 쿼타확보와 지금까지 명태의 경우에서 보아왔듯이 정부쿼타('00 입어료 : $161/톤)가 상업쿼타('00 입어료 : $230/톤)에 비해 쿼타료가 저렴하고 조업조건도 유리한 점을 감안하여, 2000년 12월, 한·러어업위원회를 통해 러시아와 적극 협의하여 국제입찰방식이 아닌 정부쿼타로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러 정부 간에 꽁치 입어에 관한 정부쿼타를 합의하자 일본측은 남쿠릴은 자신들이 영유권을 가진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의 꽁치입어를 저지하겠다고 나서서 분쟁이 제기된 것이다.

한국 해양수산부는 지난 7월,“일본은 우리 어선이 문제지역에서 꽁치잡이를 개시할 경우 어선나포라도 할 기세이지만,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이곳에 들어와 우리 어선을 나포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면서 “우리로서는 국제법적으로나 관례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급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외교부는 우리 어선들이 남쿠릴 열도 주변수역에서 꽁치조업에 착수한 데 대해 일본 정부가 공식 항의해온 것에 대해서 “우리 꽁치어선의 조업은 영토문제와는 무관한 순수한 상업적·어업적 문제로서, 영토문제에 관한 어느 일방의 입장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거듭 밝히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實狀)은 이미 일본과 러시아가 제3국 조업 금지의 원칙에 합의하고 있었으며 이것을 전제로 러시아와 일본이 각기 대체어장 등의 협의를 위해 우리 정부 대표와 접촉하고 있었든 것이 최근 뒤늦게 밝혀져서 정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비등(飛騰)케 하고 있다.

이 문제를 중심으로 외교 문제를 다루는 우리 정책 당국의 성실성과 기본적인 상식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으나 국제법적 이론에 약한 우리 정부의 실력(實力) 또한 차제(此際)에 철저히 지탄받아야 한다. 즉, “우리 꽁치어선의 조업은 영토문제와는 무관한 순수한 상업적·어업적 문제로서, 영토문제에 관한 어느 일방의 입장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하는 한국 외교부의 일방적인 신념(信念)에 대해서 주의(注意)를 기우릴 필요가 있다. 지금 이러한 일방적인 신념이 일본이나 러시아에 통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남쿠릴 열도는 일본과 러시아간에 영토분쟁이 있는 곳이다. 영토분쟁은 땅덩어리에만 관한 것이므로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어업에 관한 합의를 하는 것은 성질상 분리(分離)될 수 있는 별개의 문제라고 하는 논리는 1999년 한일간의 어업협정 체결시 한국과 일본이 전제로 한 논리이다. 한국 정부는 일방적으로 이러한 논리가 남쿠릴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독도에 대해서 설명한 것처럼 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어업에 관한 합의가 영유권 문제와 궁극적으로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경우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독도의 경우에 한국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는 것은 한국 측이 배타적 권원을 포기(抛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소지(素地)가 있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가 쿼타배정 방식을 국제경쟁입찰 방식(Auction)으로 전환하였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가 여기에 개입한 것은 참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즉 남쿠릴에서의 꽁치 조업은 이 지역의 국제법적 예민성을 감안해서 철저히 민간 차원에서 접근을 시도하고 정부는 오히려 배후에서 우리 어민의 이익을 간접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어야 한다.

4. 결론

21세기에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동반자로서 국제사회에서 주동적 역할을 완수하는 길은 한일 양국이 보다 전진적으로 서로의 기본 자세를 스스로 고쳐나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우선 한국은 일본에 대한 정책에 있어서 먼저 원칙(原則)과 기본(基本)을 설정하지 않으면 않된다. 국민의 대일 감정을 무마하려는 과장된 강경태도(强硬態度)와 무원칙적(無原則的)인 양보(讓步), 영합(迎合)의 교차가 반복되는 한 양국간의 관계는 갈수록 불행하게 발전되어 나갈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날조(捏造)하고 맹목적으로 미화(美化)하므로서 강력하고 위대한 일본의 모습을 강조하려는 국가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일본의 자세는 갈수록 일본을 국제적으로 고립화시키며 당연히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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