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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한일관계와 임나일본부설

- 제목 : 고대한일관계와 임나일본부설
- 때 : 2005년 12월 13일(화) 저녁7시
- 곳 : 인사동 독도본부 강의실
- 강사 : 연민수 교수(한일관계사학회 회장)

- 강의요지-

일본의 임나일본부 문제는 일찍부터 일본고대사의 문제로서 취급되어 왔고 일본의 가야지배라는 등식으로 불변의 논리로 일본의 해외 식민기관으로 규정되어 왔다. 이것은 신공황후의 삼한정벌론과 더불어 일본인의 의식을 규제해 왔고 한국에 대한 우월의식, 지배의 정당성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이기도 하였다. 이 문제가 70년대에 이르기까지 본격적인 재검토가 보이지 않은 것도 출선기관설을 당연시하는 학문적 풍토 때문이었고 이는 일본인들의 대한인식의 반영이기도 하였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쳐 임나일본부설의 재검토가 시작된 이후의 일본학계의 연구의 주요 경향은 금관국 멸망을 일본부 성립의 중요한 기점으로 삼고, 군사적 성격을 띤 일본사절이 안라에 파견되어 일본부를 구성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재지의 왜계가야인이나 현지 가야지배층과의 합의체를 구성했다는 견해도 있으나 일본부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관인층은 일본에서 파견된 인물로 구성되었다는데는 이견이 없다.「在安羅諸倭臣說」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단순히 생각하면 안라에 파견된 일본사절이라는 의미가 되나 일본부의 중심체가 일본의 주도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 되어 가야에 대한 일본의 강한 영향력을 강조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또한 가야제국이 일본에 의지할 밖에 없었다는 역사적 연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역사적인 연원이란 가야제국이 일본의 조공국이고, 상하관계였다는 것이다. 요컨대 지배기관설을 부정한다고 해도 어떠한 형태로든 가야제국은 일본의 영향력하에 있었다는 근자의 임나일본부에 대한 일본학계의 일반적 경향이다. 근강모야신 군대의 도해, 임나4현의 백제에의 할양 등이 일본의 개설서나 교과서에 통설처럼 실리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임나일본부의 문제는 일본학계에서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닌 살아있는 실체이다.

임나일본부 문제는『일본서기』흠명기 밖에 나오지 않으며「백제본기」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었다고 보인다. 그것은 일본부 문제가 백제주도의「임나부흥회의」라는 일련의 기록 속에서 부수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임나부흥회의는 백제의 가야침투계획안으로 일본 천황의 명에 의해 백제가 실행하고 있었다는 내용은 후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이 삽입된 것은 개변된「백제본기」부터이고『일본서기』편찬때에 편찬이데올로기에 의해 더욱 강조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일본부를 일본의 지배기관과 같이 설정하고자 했던『일본서기』편자는 일본부 관련기록을 완전히 개변시키지는 못했다. 일본부 관인으로 되어있는 인물들이 실은 일본천황과 백제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든지, 오히려 가야제국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부분적 기록까지 고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일본부경, 일본부신, 일본부집사 등 일본에서 파견된 사신과 같이 용어를 붙여 놓았지만 그 속에 담긴 그들의 행동까지 모두 개변하지는 못했다고 보인다.「백제본기」가 원래 주장하고 있었던 것은 가야제국이 백제의 부용국이었다는 것이고 금관국 등의 부흥을 명목삼아 가야에의 세력권을 확대시키고자 한 것이다.「백제본기」의 기술대로 백제는 가야지역으로의 군사적 진출과 본격적인 내정간섭을 시작하였다. 가야제국의 반발은 당연히 예상되어고 특히 중심국이었던 안라국의 반백제적 경향은 확산되었고 이에 대항하는 기구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백제측의 인식에서는 일본부였고, 반백제적 본산인 일본부를 해산시키기 위한 일련의 노력이 전개되었다. 일본부라는 용어는「백제본기」에서는 다른 명칭이었던 것이 倭府 혹은 倭宰로 개변되면서『일본서기』편찬단계에서 비로서 일본부로 정착되었다고 생각된다. 6세기전반 가야제국의 독립보존을 위해 활동했던 인물, 그 집단이 속했던 기구가 바로 임나일본부였다. 그것은 안라국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가야제국 공동의 합의체로서 성립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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