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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강역

- 제목 : 발해의 강역
- 때 : 2005년 10월8일(토) 낮4시
- 곳 : 인사동 독도본부 강의실
- 강사 : 서병국 교수(대진대학교, 동양사)

- 강의요지-

대제국 고구려의 멸망으로 동북아시아에서는 고구려 유민과 고구려의 지배를 받던 말갈족 등 여러 종족들이 정든 고향 땅을 떠나 낯선 이국 또는 객지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이른바 ‘민족대이동’이 30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 민족 대이동으로 우리 민족은 영토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으나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 이북의 옛 고구려 땅을 차지하지 못함으로써 광활한 지역이 우리의 역사적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흘러 고구려가 과거 통치하였던 속말말갈의 땅에 발해국이 들어섬으로써 민족대이동으로 빚어진 민족적 대혼란은 수습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평양이북의 영토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면 발해국은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가.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나 그 옛 땅인 압록강 이북으로는 진출하지 못하여 그 곳은 비어있는 진공상태의 땅이 되었다. 이러한 진공상태는 건국의 다시없는 조건이었고, 여기에 세워진 것이 바로 발해국이다. 발해국이 당나라의 통치권 밖에 세워졌으므로 발해국을 세울 종족은 고구려 유민이거나 말갈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고구려 사람과 말갈 사람은 고구려 시대는 물론 고구려 멸망 후에도 상호의존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협조관계로 이루어진 것이 발해국의 건국이다. 원래 고구려는 다민족 국가로 그 옛 땅에 세워진 발해국도 같은 성격의 국가이다. 특히 영주 땅에서 거란족이 주동하여 일으킨 반당 봉기에서 말갈족이 고구려 유민에 합세, 가담한 직후 발해국이 세워진 것은 발해국 역시 다민족 국가였음을 보여준다.

다민족 국가라 하더라도 다방면에 걸쳐 주도하는 종족이 있게 마련이다. 다민족 국가인 당나라에서 주체 세력이 한족이었듯이 발해국에도 분명 주체세력이 있었다. 고구려 시대 말갈계와 고구려계와의 관계라든지 발해국 건국 이후 어떤 세력이 나라를 이끌어왔는지를 보면 고구려계가 주체세력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신당서』「발해전」의 “속말말갈이 발해국을 세웠다”는 기록만을 맹종하고 그것을 근거로 발해국이 당나라의 지방 정권 또는 속주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이렇듯 중국은 발해국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부터 떼어내 자신들의 역사 안으로 끌어들여 놓고 있다. 이는 발해국의 주체세력이 어느 종족이었느냐 하는 문제를 제대로 연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동북지방을 쓸모 없는 땅이라 여겨 포기하였으나 지금 중국은 이 지역이 비非한족에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배타적 영토라는 명분으로 고구려계의 잔영을 말끔이 쓸어내려 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학자들이 발해국을 자국의 역사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이의 구체적인 행동표현이다.

발해국의 역사연구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발해국이 고구려 유민들의 국가라는 사실을 다각도로 연구하여 이 문제를 끝없는 미해결의 쟁점으로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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