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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사회

얄팍한 사회
정말이지 얄팍한 사회다. 역동성의 크기만큼 천박성을 함께 간직한 사회다. 최근 벌어진 두 사건은 오늘 이 사회의 깊이를 그대로 드러냈다.

MBC의 '음악캠프' 생방송 중에 벌어진 알몸 노출 사건을 보자. 가장 먼저 우리를 실망시킨 건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경찰과 기자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생방송인 줄 몰랐다"는 어처구니없는 변명까지 했다. 그 순간 그들은 '확신범'에서 '파렴치범'으로 전락했다. "한국 사회의 성의 이중성에 도전하고 싶었다"거나 하다못해 "한국 사회, 엿 먹어라"라고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러니 40여 년 전 '도어스'의 짐 모리슨에서부터 최근의 '그린데이'나 '레드 핫 찰리 페퍼스'에 이르는 성기 노출 퍼포먼스의 역사를 읊어댈 수도, "숨막히는 효율성과 합리성에 대한 근원적 거부"(강헌 한국대중음악연구소장)라는 철학적 배경을 내세우기도 어색하게 됐다.

그 뒤의 모습은 어떤가. 경찰은 대학가 인디밴드를 비롯한 유흥업소의 퇴폐행위 단속에 나선다고 했다. 서울시는 퇴폐 공연을 하는 밴드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한다고 했다. 인디밴드는 상업성과 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마음껏 음악을 해보겠다는 데서 출발했다. 획일성을 거부하는 비주류 문화가 문화의 다양성을 형성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이들의 얄팍한 대응에 입이 벌어질 뿐이다.

안기부 도청사건을 보라. 국민의 70% 이상이 테이프의 공개를 바란다는 게 여론조사 결과다. 공개에 찬성한 사람들에게 '당신을 정부기관이 도청해 그 내용을 공개한다면 찬성하겠는가'라고 물어보면 고개를 저을 게 뻔하다. 그런데 왜 남의 도청 테이프는 듣고 싶어하는가. '기껏해야 1000명'(진대제 정통부 장관) 속에 나는 포함되지 않아서인가, '잘난 사람들'이 뒷전에서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엿보고 싶은' 가학적 심리 때문인가. 공인의 발언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는 정도가 명분일 것이다. 그러나 공인이라 할지라도 도청을 감수해야 할 의무는 없다.

정치권의 모습은 더욱 우습다. 열린우리당은 특별법을, 한나라당은 특검법을 만들어 테이프 공개의 위법성을 없애려 한다. 양측 모두 위헌 요소를 갖고 있는 줄 알면서 밀어붙인다. 혹은 정치권의 '빅뱅'을 기대하면서, 혹은 공개해도 나는 손해 볼 게 없어서, 혹은 공개에 반대하면 약점 있는 것으로 오해받을까 두려워서. 도대체 이게 뭔가. 법의 안정성이나 개인의 인권 보호 등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기반마저 무너뜨리면서 정치적 이기심만 채우면 되는 것인가. 까짓것 이왕 시작한 것 끝까지 가보라. 왜 검찰 손에 있는 274개 테이프만 대상으로 삼는가. 그런 논리라면 안기부가 도청한 수천 개 테이프의 기록까지 모두 까발리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테이프에 등장한 인물들을 싹쓸이하고 도청 대상이 아니었던 사람들만으로 새 나라를 만들어보면 좋을 텐데 말이다.

국정원의 진상 발표 후의 풍경도 가관이다. 국정원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얼마나 도청에 반대했는지 누누이 강조하면서 "1998년 5월부터 2002년 3월까지 유선전화와 휴대전화를 불법 감청했다"고 시인했다. 그런데도 김 전 대통령 측은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분을 폄하했다"고 화를 냈고, 민주당은 대북 송금 특검까지 들먹이며 "국민의 정부에 대한 참여정부의 공격"이라고 군불을 땠다.

DJ가 입원하면서 사태는 극에 다다랐다. 요 며칠간 청와대와 여당은 DJ의 심기를 가라앉히기에 바빴다. "본질은 YS 정권의 도청"이란 데서부터 "국정원이 성급했다"는 비난까지 나왔다. 예우 차원? 아니다. 호남 민심이 완전히 돌아설까 두려웠던 것이다.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은 "DJ정권은 책임질 과오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러니 검찰과 국정원이 DJ 시절의 도청 실태를 제대로 밝히는 것은 물건너갔다. 대통령과 여당이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으므로. 아마도 결론은 'DJ 시절 도청은 했지만, 마약사범과 산업스파이 혐의자가 대상이었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염원한다. 역동성 있으면서도 지킬 것은 지키는 사회를. 솔직하되 천박하지 않은 사회를.


김두우 논설위원 2005.8.2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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