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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판치는 세상

영어가 판치는 세상

연세대 뒤 안산의 정상에 오르면 봉수대가 복원돼 있고 주변 낭떠러지 위로 설치돼 있는 난간에 ‘휀스에 기대지 맙시다’라고 쓰인 푯말이 있다. ‘휀스’가 영어의 ‘fence’임을 알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광주에 있는 부모님 산소의 성묘길에 자주 이용하는 성남에서 광주로 나가는 산업도로변의 자동차 정비 업소 간판 상호 위에 ‘쇽옵’ 띄어서 아랫줄에 ‘소바’라는 전문 광고가 붙어 있는데 수십번 지나다니면서도 ‘쇽옵소바’가 무슨 뜻인지 모르다가 그것이 영어의 ‘shock absorber’임을 뒤늦게 알고 우리 부부가 무릎을 치며 웃었던 적이 있다.

그 후 영어 단어의 한글 표기를 볼 때마다 우리 부부는 ‘쇽옵소바’를 외친다. 컴퓨터 프로그램 전문가들의 용어에 ‘콘텐츠’라는 것이 있다.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처음에는 컴퓨터 전문 용어인 줄 알았다가 그것이 ‘contents’임을 뒤늦게 터득했다. 그리고 그것을 ‘내용’이라고 하면 안 되는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우리 부부는 미국 유학을 여러 해 다녀온 터라 뒤늦게라도 알아보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궁금하다. ‘내용’이라고 하기보다 ‘콘텐츠’라고 하면 무언가 특별한 것 같아 보인다.

요즘 거리의 간판에 한글로 표기한 영어 단어가 판을 치고 있다. 지나치다는 객관적 기준의 제시는 어렵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지나친 영어 단어의 한글 표기가 전국적인 영어 장려 정책의 부산물일 것 같긴 하지만 그것으로 영어 실력이 늘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영어 실력을 위해서는 영어로 표기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을 두고 영어로 표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영어 습득을 위해 초등학생의 조기 유학이 유행하고 있고 그것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려고 하는 마당에 영어 단어의 한글 표기는 아예 문제도 안 될 것 같다. 국민학교라는 말을 없애서 그렇지 초등학교로부터 중·고교에 이르기까지의 교육은 실은 국민을 국민으로 만드는 교육이 아닌가. 초·중·고교를 나오고 군대를 다녀오는 과정에서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부터 외국에서 교육 받게 하는 것은 국민 교육을 그 외국에 맡기는 일은 아닌지, 가정에서 쓰는 한국말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추었을 뿐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한국인을 만들자는 건 아닌지, ‘아’와 ‘어’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한국 사람 사이에서도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 오해가 일어나는데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과 영어를 쓰는 한국인 사이에 얼마나 의사소통이 자유로울지 모르겠다.

그것은 한국적 사고와 미국식 사유 방식 사이의 충돌의 문제를 안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만 잘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듯이 영어를 강조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가 한국 사람의 영어 교육에 지장을 가져 왔다고 말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한국 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제대로 쓰고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는 대학에서 시험 답안지나 학위 논문을 심사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금방 인식한다. 이 문제는 인터넷의 보급에 의하여 더욱 심각해졌다고 생각된다. 컴퓨터상의 의사소통에는 정확한 한국어 문장의 구사가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어 전문의 학과나 사람(국어학자나 문학전공자) 이외에는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도 자기 생각을, 특히 철학적 사고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정확하게 한국어로 표현할 줄 모르는 지성인 세대의 성장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점은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의 고등교육에서 실시하고 있는 그 나라 말의 작문 교육을 우리나라의 그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에는 한국어 작문 교육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람 모두가 영어를 다 잘해야 하는지 의문이고, 영어 배우기를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국내에서도 본토 영어 구사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시설과 원어민 교사를 갖추어 철저한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비싼 돈 들여 영어 연수를 떠나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조만간 확고한 어문 정책을 갖추지 않으면 몇 십년 후에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언어 가운데 한국어가 포함될지도 모른다.

/ 최대권 서울대 헌법학 명예교수  2003.7.4.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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