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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귤나무

제주 귤나무

문종(文宗)은 풍류를 아는 시인이었다. 언젠가 제주도에서 진상된 귤 한 쟁반을 집현전에 보냈는데 다 먹고 보니 쟁반 바닥에 친필 시 한수가 쓰여 있었다. 「단향목은 코에만 향기롭고 /기름진 음식은 입에만 마땅한데 /나 제주 귤을 사랑하는 뜻은 코에도 향기롭고 입에도 달기 때문이다.」 해마다 제주 귤 수만개가 진상되었는데 이 귤이 올라오면 특별히 과거를 치러 인재를 뽑기까지 했는데 진품(珍品)이 올라와 경사스러워서가 아니라 귤이 코에 향기롭고 입에 달 듯한 인재(人材)를 상징한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일본서기」에 신라로부터 귀화한 다지마(田島間守)가 730년 상세국(常世國)에 가 귤을 일본에 처음 들여왔다 했는데 상세국은 바로 제주도다. 귤은 이미 고대에 적도 해류를 타고 제주도에 표착(漂着), 삼국시대에도 재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척 탐스러웠던지 고려 때 귤나무 두 그루를 12마리의 소를 동원해서 대궐 안의 동산에 옮겨 심었는데 잘 자라지 않았던 것 같다. 제주도에는 조선조 중기만해도 금감(金柑) 유귤(乳橘) 청귤(靑橘) 등 아홉 가지의 귤이 철철이 나왔으며, 귤을 파먹는 벌레의 천적인 개미를 길러 생업을 삼는 사람까지 있었으니 널리 재배되고 있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반면 수탈도 대단했다. 병자호란 때 척화신인 김상헌(金尙憲)의 제주도 기행문를 보면 제주목사는 7~8월에 섬 안을 돌며 나무마다 열린 귤수를 헤아려 낱낱이 적어 두었다가 납품 개수와 대조했고, 개수를 채우지 못하면 벌을 주었기로 민가에서는 귤 보기를 독약같이 하고 이를 마구 베어버렸다 했다. 더러는 열매 하나하나에 꼬리표를 달아 놓기도 했고, 나무 베는 것을 들키면 잡아 가두기에 뿌리를 통째로 뽑아 버리거나 나무그루에 송곳으로 구멍을 파고 후춧가루를 담거나 상어뼈를 박아 놓음으로써 울면서 자연사를 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가렴주구로 절품돼 가던 제주에 1300여년 전 일본에 건너갔던 손자나무를 옮겨 심어 한때 귤나무 두 그루면 한 자녀 대학을 가르친다 하여 대학나무라는 별명을 얻더니 과잉 생산과 외래 과일들이 소비를 파먹고 들어 시름나무가 되어 지금 대거 베어내는 감귤 최악의 파동이 일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책 부재는 가렴주구보다 가공함을 말해주는 제주 귤나무다.

2003.3.18.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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