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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 누가 해치는가

한·미관계 누가 해치는가

한·미관계에서 아주 당연시되어 온 두 개의 명제가 있다. 하나는 미군은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국익을 위하여 이롭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그 명제들은 보충될 여지없이 절대적으로 참일까? 그러한 명제들을 신주처럼 모시는 것은 오히려 너무 순진한 일은 아닐까?


우선 미군이 한국의 안보에 기여한다지만, 한국의 안보를 절대적으로 고려하는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군사전략은 무엇보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 순위에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안보, 그 둘이 일치하면 그것은 양국에 모두 다행이지만, 항상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1950년 한국전쟁과 이후 냉전체제의 남북 대결구도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으나, 과연 지금도 그런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하여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한국의 안전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안전과 군사적 패권을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핵무기 비확산 체제가 흔들려 자신의 지구적 패권에 금이 가고, 9·11 이후 불거진 바와 같이 미국의 안보에 중대한 결함이 생기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강경파들 사이에서 주변국이 다치더라도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감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는 불일치할 수 있다. 서로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 미국의 군사전략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봉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물론 미국으로서도 자신들의 지구적 패권이 세계의 안보에 기여하는 것이 되면 좋을 것이며, 우리로서도 여전히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미국을 필요로 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한·미관계가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적 관계이며,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조율해야 하는 관계라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이며, 따라서 우리의 안전과 이익을 위하여 좋든 싫든 미국과의 관계는 돈독히 해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여도, 자칫 위험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예컨대 초강대국이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심지어 부당한 횡포를 보이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약소국으로서 강대국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자는 것은 처세의 기법일 수는 있어도, 상급의 지혜는 못된다.


강자와의 유착관계가 도를 넘게 되면 그것은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초강대국이라고 하여 항상 이성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이익은 물론 심지어 자국의 이익에도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보다 세계를 위협하는 데로 나아갈 수 있다. 초강자가 될수록 그 힘을 정의의 척도에 가두어 두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법이다. 부시 정부가 ‘불량국가’들을 응징한다고 호언하는데, 세계는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강자가 무원칙하고 이기적인 힘의 행사에 나설 때, 그에 대하여 무조건 추종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옳지 않음은 물론, 후에 언제고 다시 강자에게 속절없이 희생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관계이다. 목숨을 같이 할 수 있는 동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호 안전을 존중하고 보편적 원칙에 맞는 길을 가지 않는다면, 그 동지관계는 오히려 위험하다.


미국과 한국의 몇몇 언론들은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한·미 우호관계를 해친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지금 한·미관계를 해치는 쪽은 과연 어느 쪽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세기도 바뀌었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조건도 바뀌었다. 우리 정치사에서도 ‘시대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미관계의 재정립이라는 요청이 너무 성급하다고 하면, 한·미관계의 재인식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정태욱/영남대 교수·법학〉 2003.1.20.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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