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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공교육 집착이 낳은 교육적 퇴행

싸구려 공교육 집착이 낳은 교육적 퇴행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때아닌 시험 열풍이 불고 있다. 모의 수능시험 실시가 허용되자 광주시에서는 무려 12번 정도의 시험을 치르고 있다. 여름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와 두 번의 시험을 봤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대학입시라는 지뢰를 피할 수 없으니 고등학교의 살풍경은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중학교와 초등학교에서조차 시험 열풍은 가라앉을 줄 모른다. 인천에서는 10월 2일, 중학교 전 학년을 대상으로 시 교육청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여 이 점수를 각 학교 중간고사 점수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전구 16개 시 도 교육청 중 절반 이상이 이러한 실정이다. 초등학교는 더하다.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시험 점수를 관리하는데 심한 곳은 월별고사가 부활되어 어린 학생들에게 숨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도 단위학교가 아닌 지역 교육청, 시 도 교육청이 앞장서 시험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의 유물, 그것도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일제고사 열풍이 전국을 휩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국이래 최대의 시험이 치러진다!

역시 문제의 진원지는 교육부이다. 교육부는 2002년 들어 두 세 가지 국가 평가 계획을 발표하였다. 연초에 발표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계획이 그것이다. 초 3 6학년, 중 3학년, 고 1학년을 대상으로 국가수준에서 연말에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지난 6월에는 초등학교 3학년을 특화하여 전국의 70만명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학입시를 제외하고 동일 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건국이래 최대의 시험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국가수준 획일적 일제고사가 올해만 치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인적자원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하면, 2005년에 성취도 평가 대상 학년이 4-5개가 될지 아니면 초중고 모든 학생이 될지 모르지만, 해당 학년의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수준 획일적 일제고사를 실시하게 된다. 더구나 이러한 일제고사를 통한 전국적 성적 비교가 학교평가로 이어질 것이다. (학교평가는 올해 100개 학교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이후 점차 확대하여 4-5년 주기로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실시될 계획이다.)
자, 사정이 이러하니 각 시 도 교육청, 지역 교육청, 단위학교는 앞으로를 대비하여 준비를 단단히 할 수밖에 없다. 무슨 준비를? 시험 점수 높이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수십년의 대학입시를 통해 그 방법론이 축적되어 있다. 진도 일찍 끝내고 모의고사를 자주 봐서 시험문제 맞추는 연습을 충분히 하는 것이다. 결국 최근 벌어지고 있는 각 지역의 시험 열풍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가 국가고시를 강행하는 이유

국가 주도 일제고사의 실시가 불러올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것인데 교육부는 왜 국가고사 실시를 강행하는 것일까? 표면적으로 교육부가 국가고사 실시의 당위성으로 내세우는 것은 학생들의 학력 저하와 기초학력 부진학생에 대한 국가의 책임지도이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대로 초등 3학년에서 기초학력 부진아로 진단된 학생은 전체 학생의 1% 안팎이다. 문제는 이 학생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도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지도 대책을 세우면 되지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을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학생들의 학력 저하 역시 매우 다른 상황판단을 할 수 있다. 즉, 각종 국제비교 학력평가에서 우리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더구나 90년대 중반 초등학교 열린교육에서부터 시작된 학력관의 변화는 일제고사 점수로는 판별 될 수 없는 것들이다. 즉, 암기력, 정답 찾기 문제풀이 능력이 아니라 종합적 이해력, 사고력, 판단력, 창의력, 문제 해결력 등 수년 동안 우리 사회가 학교교육을 통해 얻고자 했던 학력은 선다형 지필고사를 통해서는 측정이 불가능한 것들인 것이다.
교육부가 주장하는 국가고사 실시의 근거는 매우 빈약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 오류에 빠져있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실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시험 점수에 의한 한 줄 세우기가 아닌 특기와 적성에 따른 여러 줄 세우기, 시험 점수라는 결과가 아닌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한 의미부여를 높게 하겠다던 수행평가 정책의 도입 등 현 정부의 교육개혁 정책과 최근 이루어진 국가고사의 부활은 사실상 정면 배치되는 정책인 것이다. 따라서 국가고사의 부활은 사실상의 현 정부 교육개혁 정책의 포기이다. '평가를 위한 교육'이라는 구시대적 작태가 공공연히 자행되면서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새로운 현실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몇가지 사례들을 보자.

저는 부산에 있는 여고생입니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할 수 없이 고민을 말씀드려 봅니다. 지난 목요일에 전국적으로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실시한 학업성취도 평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2학년 12반 교실에는 12반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반의 공부 잘 하는 학생들도 함께 시험을 봤다는 겁니다. 다른 반에서 온 학생들은 12반 학생의 학번을 도용하여 대리 시험을 봤다는 거예요. 학년 부장선생님이자 담임선생님의 지시이므로 할 수 없이 12반이 아닌 사람이 12반 행세를 하게 된 셈인데, 이것이 무엇을 위함인가는 어린애도 짐작을 할겁니다. 학교 성적을 외부에 고득점으로 보고하기 위해서겠지요. 하지만 빤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일을 보는 저로서는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잃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부산의 한 고등학생(2001년 7월 1일)
오늘 초등강남의 한 교사를 만났다. 초등강남의 성취도 평가는 6월 18일. 그 선생님 말씀. "예년과는 학교가 너무 달라졌다. 부교재 업자들이 공공연히 학교를 돌아다닌다. 학교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성적을 올려야 한다. 다른 학교에 져서는 안 된다는 등의 얘기가 오간다. 지금까지 나는 부교재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솔직히 고민이다. 교육청에서 성취도 평가를 하니 우리 반이 다른 반에 질 경우 나는 뭐냐?" 이 선생님의 고민은 모든 선생님의 고민일 것으로 보인다. 이제 초등학생들도 시험엣 자유롭지 못하구나, 아이들이 시험 지옥에 빠지는 구나, 여러 줄이 아닌 한 줄로 세우는 교육이 판을 치게 되겠구나... -서민태(전교조 울산지부 초등강남 남부지회장)

차라리 교육부를 해체하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7-80년대 그 어디쯤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그토록 고치고자 했던 우리 교육의 병폐가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왜 정부는 이러한 교육적 퇴행을 앞장서서 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싸구려 공교육에 대한 강한 집착을 발견할 수 있다. 선다형 지필고사를 통한 교육의 질 관리는 그야말로 싸구려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 교실 칠판 백묵만 있으면 과학 실험도, 현장 학습도, 다양한 체험도, 토론도 다 대신할 수 있다. 더구나 시험을 위한 보충학습은 학부모들의 경제적, 즉 사교육에 의존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싸구려 교육이 아니지만 국가가 지불하는 학교 교육에 대한 비용 측면에서는 싸구려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기성세대의 빈곤한 문제해결 능력이다. 열린 교육이네 새물결 운동이네 하면서 새로운 교육개혁을 부르짖었지만 사실 중장기적인 전망도 없이 구호만 외친 골이 되어버렸고, 이러한 정책에 반응하는 아이들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결국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이 80년대 평가정책의 부활인 것이다. 구타 없이 지도를 못하는 우리 축구 지도자들에게 히딩크의 지도력은 많은 도전을 안겨주었다. 우리 교육계에도 히딩크가 필요한 것일까?

흘러간 강물을 되돌릴 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것은 문화의 세기에 걸맞은 사회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삶의 공간, 특별히 학교를 문화의 공간으로 꾸며주어야 하고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허용해 주어야 한다. 체험하고 느끼고 만들고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는다면 청소년들의 현재 삶과 우리 사회의 미래 모두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어른들은 가라. 교육부는 가라. 차라리 교육부를 해체하자. 최소한의 삶의 조건 마련을 위하여.

<김영삼(전교조 정책연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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