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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특구 영어 상용화의 위험

경제특구 영어 상용화의 위험  

25일치 ‘왜냐면’에 실린 이대로님의 ‘영어 때문에 허둥대는 정부가 한심하고 답답하다’는 글에 동감하면서, 이왕의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이 안고 있는 문제, 경제특구와 관련해 정부에서 거론해온 ‘영어 공용, 영어 상용화, 영어 서비스, 영어 사용여건 개선’ 등의 방침이 두루 안고 있는 몇가지 실제적 위험성과 빈틈을 덧붙여 짚어 볼까한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이 방침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중대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여기서 영어 공용에 대한 일반적인 뜻매김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범위이기 때문이다. 모든 공적 분야에서 영어를 한국어와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만 ‘영어 공용’으로 볼 수는 없다. 일정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영어를 한국어와 동등하게 대우한다고 할 경우에도 영어 공용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영어 공용 주장은 대부분이 이런 것이다. 영어로 된 문서라도 그것이 외국인이 제출하는 것일 때는 영어 공용과 무관한 것처럼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어쨌든 그 부분에 한해서는 영어로 된 문서가 한국어로 된 것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적인 법률 관계라고 하는 것은 ‘당사자 가운데 적어도 하나의 주체가 공적인 기관인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외국인이라고 해도 역시 우리 정부와의 관계는 공적인 법률관계인 것에 변함이 없다.

문화관광부 등 정부에서는 별로 문제가 없다고 보는 듯한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과 시행령’(이하 특별법)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법조문이 모호하다. 특별법에 외국어로 작성된 문서를 그대로 공문서로 정부에 제출하게 할 수 있다는 듯한 표현이 보이는 점, 법률에는 대충 규정하고 나머지는 시행령에 포괄 위임하고 있는 점, 시행령마저 ‘그 밖에 외국인 투자가의 편의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이라는 일반조항을 두고 있는 점 등 문제가 적지 않다. 모호한 법은 악용되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특별법 제 19조에 “… 외국어로 작성된 공문서를 접수·처리함에 있어 외국어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 문제다. 이 조항은 ‘외국어로 작성된 문서를 그대로 공문서로 정부에 제출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외국어로 작성된 문서를 그대로(한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정부에 제출할 수 있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공문서는 한글과 한국어로 작성된 것이어야 한다. 외국어로 작성된 문서를 덧붙일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까닭은 후에 소송이 걸리게 되면 어느 것이 기준 문서이냐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만약 외국어로 작성된 문서가 그대로 공문서가 되고, 소송에서도 그 외국어 문서가 법적 해석의 기준이 됐을 때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 외국어 문서는 우리나라 사람이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리 문제를 발견하기가 곤란하다. 정부에 뜻밖의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 소송이란 증거싸움이고, 결국 문서에 있는 자구 하나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기 마련이다. 외국인의 편의를 위한 일이 자칫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큰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소송이 우리 법원으로 가게 됐을 때 판사고 변호사고 외국어 문서는 골치아플 수밖에 없다. 어차피 한국어로 번역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현재 그렇게 하고 있다) 만약 우리말 번역을 하지 않고 그대로를 가지고 소송을 하게 된다면, 사법부의 영어 공용화라는 사태로 번지고 말 것이다.

이런 부작용을 막거나 해결하기 위해선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당장 ‘영어만을 위한 공무원’이 너무 많아지게 된다. 그렇다고 실무자가 ‘외국어로 작성된 문서’를 가지고 일을 처리할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없을 테니 어차피 우리말로 번역하는 절차는 그대로 남아있게 될 것이고, 이래저래 ‘작은 정부’와는 멀어지게 된다.

게다가 ‘제주 특별법’은 영어 외에 다른 외국어에도 그런 길을 이미 열어두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너도나도 경제특구 만들겠다고 뛰어들 태세인 점을 보더라도 이 문제는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가게 될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금처럼 공문서 제출 단계에서 한국어로 번역해 제출하게 하는 것뿐이다. 정부가 할 일은 그 번역과정을 지원해주는 데 그쳐야 하는데, 여기에 너무 깊이 개입하는 것도 현명하지 않다. 번역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 정부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 서비스’라는 말에 속아서 사태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일정 분야, 일정한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외국어 편의는 필요하지만, 그 서비스 과정까지 정부가 떠맡게 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기업은 누구나 자기 책임 아래 사업을 해야 하고, 외국기업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외국어 서비스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은 정부가 부담해도 되겠지만, 그로 인해 사후에 벌어질 책임까지 정부가 부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해야 한다. 그러므로 ‘외국어로 작성된 문서’를 그대로 정부에 제출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외국어 문서가 그대로 제출되는 순간 정부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제정될 경제특구에 관한 법률은 이런 점에서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위험한 악법을 만들지 않기를 당국에 촉구하면서, 일반시민과 여론 주도층의 관심을 환기하고자 한다.

송영상/ 한글문화연대 회원 2002.7.27.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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