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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때 돼지머리를 쓰지 말자

고사때 돼지머리를 쓰지 말자  

"굿이나 동제(洞祭)등 각종 고사에 돼지머리를 올리는 것은 무지함을 스스로 나타내는 민족의 수치"라는 주장이 돼지해를 맞아 제기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피가 뚝뚝 흐르는 돼지목을 잘라 올리는 것은 중원을 뺏은 한족(漢族)이 한민족(韓民族)의 말살을 위해 계획적으로 꾸민 의식이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의식은 한족이 패권을 잡고 많은 왕조가 부침(浮沈)을 계속하는 사이 민간으로 파고들어 자연스레 민속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한민족측에서는 '돼지꿈을 꾸면 재수가 있다' '재물이 생긴다' '길몽이다'등 돼지를 상서로운 동물로 보는가 하면 한족은 돼지시(豕)는 죽을 사(死), 시체 시(屍)등 네 번째 숫자 4를 불길한 것으로 격하시켰다는 것이다.

한자문자학회 김재섭 회장은 멧돼지나 돼지는 역사이래 최초로 중국 중원에 나라를 연 조선족 여러 부족의 상징물(토템)의 하나라고 했다.

문자학상 돼지를 뜻하는 시(豕)나 해(亥), 돈(豚), 저(猪)는 고조선시대 한민족 출신의 첫임금인 전욱고양(고구려 고씨가 되는 시조)의 넷째아들(四方冊封씨) 집안의 심벌마크, 족표(族標)라는 것이다.

기원전 2천여년 청동으로 만든 제기에 그려진 돼지 모양의 그림글자(금문)는 그동안 명확히 해석하지 못해 학자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작년 6월 77세로 타개한 중국의 금문학자 낙보기(駱寶基)씨가 이를 한민족 동이계의 시조 염제신농(炎帝神農)과 한족의 시조 황제헌원(黃帝軒猿)손자인 전욱고양의 여섯 아들 중 넷째아들 집안을 상징하는 동물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하면서 밝혀진 것이다.

낙씨의 이같은 해석은 한국학이 찾고 있는 고조선 해석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뿐더러 동양3국의 고대사 해석에 신기원을 열게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988년 방대한 고대 청동기 명문을 정리, 발표한 낙씨의 저서<금문신고(金文新攷)>에 의하면, 동양 최초의 국가인 조선은 기원전 2517년 상원갑자원년(上元甲子元年)으로부터 기원전 2300년까지 217년간을 조선과 조선을 이은 한(韓)나라의 시대, 즉 염제신농(한민족)과 황제헌원(한족)계열이 사이좋게 번갈아 가며 왕위에 오르던 시대라고 결론짓고 있다.

돼지와 돼지배 부분에 축구공 모양, 四자의 초기 문자같이 생긴 이 명문은 송나라 때 학자 설상공(薛尙功)이 모은 <역대종정이기관지(歷代鐘鼎彛器款識)> 권3에 실려 있다. 설씨는 이를 당나라(기원전 1900) 때의 제사용 술단지인 '시유'라고 해석했으나 낙씨는 '저유'라고 했다. 이에 덧붙여 돼지배 부분에 그려진 그림글자를 넉사(四)로 풀고 전욱고양의 넷째아들 표시라고 못박았다.

글자의 발음상으로 '저'자 보다 '시'자가 더 4자에 가깝다. 한국어 음에는 사(Sa)인데 일본은 시(Si,し), 중국도 시(Si,쓰)라고 읽고 있어 더욱 옛음에 부합된다고 보고 있다.
돼지새끼를 돼지 돈(豚)으로 읽는 것 또한 돼지꿈을 꾸게 되면 돈이 생긴다는 전(錢)과 서로 연계된다.

실제로 넷째아들 사방책봉의 장남인 백익(伯益)은 우(禹)임금의 사위다. 아사달로 추정되는 곡부(曲阜, 산동성 태산 아래 위치)에서 조선사람으로는 청동으로 돈을 만들었던 마지막 임금이었다고 해석해 냈다. 백익은 임금이 되어 장인인 우임금의 제사를 치르기 위해 안양(安陽; 하남성 안양시, 역사상 殷墟로 불리는 곳)에 갔다가 미리 음모를 꾸미고 기다리고 있던 처남인 하족(夏族) 계(啓; 우임금의 아들)의 쿠데타에 의해 같이 갔던 모든 신하들과 호위병들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살육을 당했다.

백익의 이같은 참변의 현장은 19세기말에 발굴, 공개되었으나 학자들은 수많은 유골이나 명문을 보고 은(殷)나라 사람들은 임금이 죽으면 노예를 희생으로 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지배적인 학설이었다.

백익을 표시하는 청동기 명문은 4자를 의미하는 글자 위에 돈을 의미하는 붕(朋)자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돼지는 백익 때까지 이 가계의 영광스런 심벌이었으나 이때부터 넷째집안이 도륙을 당했다 해서 돼지 시(豕)가 죽을 死로 또는 시(屍), 재수없는 四자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주장이다.

곡부에서 서북쪽으로 피해간 백익의 후예들은 후에 진나라를 세우고 진시황을 탄생시킨다. 이, 백, 마, 배, 염, 조, 황, 강, 손, 양, 갈씨와 그후 박씨, 김씨 성이 이 가계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백익을 없애고 왕권을 잡은 계(啓)는 하족 400여년의 탄탄한 전제왕조시대를 열게 된다.

대구 계명대학 김양동 교수(서예과)는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알면 함부로 돼지머리를 쓸 수 없을 것"이라며 "올 돼지해부터라도 각종 고사에 돼지머리를 올리지 않는 캠페인을 벌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5.1.28일자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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