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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27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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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한국 국보 2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

    백제의 불상인가, 신라의 불상인가?

        현재 한국의 국보중의 국보 금동미륵반가사유상 2구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보 제78호와 제83호가 그것인데, 이 유물들은 어느 지역 어느 절에서 약탈해 온 것인지 출처가 분명치 않다. 국보 제83호는 1912년 이왕가박물관이 당시로서는 어마마한 거액인 2600원을 주고 일본 약탈자들로부터 사들인 것이다. 총독부는 유물 약탈의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채 반가상의 반출지를 추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범인들은 원위치와는 거리가 먼 듯한 다른 지역을 말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수수께끼를 남겼다. 그것은 악당들의 고의적인 증거인멸 술책이었다. 이후 전문가들은 뚜렸한 증거나 자료도 없이 범인들이 퍼뜨린 풍문에 따라 경주 남쪽에서 출토된 것이라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경주지역 출토설'이 신뢰성이 없는 것은 1925년 이네다라는 일본인이 '조선에 있어서의 불교예술 연구'라는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1910년대에 충청도 벽촌에서 올라왔는데 삼국시대 말기의 대표적인 미술품이며, 또 독일의 박물관 기사도 와보고는 십만금도 아깝지 않은 진품이라고 하였다." 이네다는 합방 전부처 한국으로 건너와 충남 계룡산에 머물면서 한국의 불교움놔와 유물을 조사한 사람이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에 대해 "충청도 벽촌에서 올라왔다"고 단정적으로 쓴 데는 그만한 확실한 정보와 내막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믿어진다. 만일 경주가 아니라 충남의 어느 벽촌이 정확한 반출지였다면 반가상은 신라가 아니라 백제불일 수도 있다는 가정이 성립된다. 일찍이 고유섭은 "그것이 백제의 것인지 신라의 것인지 확실치 않다"라고 했고, 가장 본격적인 문제 제기를 한 황수영은 '역사학보'에서 '충청 백제설'이 전혀 표면화되지 못하고, 오직 '신라 경주설'만이 신봉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유물을 거액을 주고 다시 사들이게 만든 일제의 만행도 통탄할 일이지만, 그것보다도 유물의 근거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자칫 역사를 왜곡되게 만든 일본인의 행위에 더욱 분노할 일이다. 반가상은 과연 백제불인가, 신라불인가?

     

     

한송사 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반송되어온 석조불

        한일협정으로 1966년에 일본정부가 한국에 반환한 과거의 약탈 및 불법반출 문화재 가운데 도쿄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던 한송사 석조보살죄상은 귀국 즉시 국보 제124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의 희귀한 백대리석 조각품으로, 목이 부러졌으나 깨끗이 붙였고, 이마의 백호로 끼워졌던 보석이 탈취당한 것만 제외하면 거의 완전한 형태의 걸작 미술품이었다.
       한송사가 폐사된 후 인근의 칠성암이란 암자에 옮겨져있던 것을 1911년 와다라는 강릉측후소 기사가 반출했다. 그는 불상을 양도하라고 윽박을 지르고 약간의 돈을 주고서 좌상을 탈취하였다. 그리고는 주문진 선착장으로 운반한 뒤 배에 실어 도쿄의 제실박물관(지금의 국립박물관)으로 보냈다. 그후 이 석불은 '와다가 기증함'이란 카드와 함께 55년동안 도쿄국립박물관에 진열되어 있었다.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

    행방불명된 경판의 일부

        1969년 문화재관리국의 조사를 위탁받은 연구진은 처음으로 낱낱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팔만대장경판 중 10여장이 분실되었음을 알아냈다. 보고된 분실 경판은 18장인데, 이 숫자 역시 불확실했다. 그것을 언제 어떻게 도난당했는지 정확한 내막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과거 총독부 기록에 의하면, 1937년에 해인사의 주지가 미나미 총독에게 4장의 대장경판이 도난되었음을 신고했었다. 당시 팔만대장경의 인경 때에 작업장의 경비책임을 맡은 자는 악질 순사부장으로 유명했던 일본인이었다. 총독부의 조사에서 청취된 증언에 의하면 그 순사부장이라는 자가 경판을 몇 장 빼갔가고 했다. 그 자의 집에서 누군가가 경판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었으나,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경판의 일부가 분실된 채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순금귀고리(국보 제90호)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참상을 빚어낸 도굴

        1910년을 전후해서 10여년간 개성과 강화도 부근의 고려고분과 1925년을 전후한 대동강 하류의 낙랑고분의 대대적인 도굴은 지난날의 한국의 매장문화재가 얼마나 철저하게 유린되고 수탈되었는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수만 점 혹은 그 이상의 유물이 조직적으로 마구 도굴된 것이다. 이후 일본 무법자들은 낙동강 하류와 경주지역에 무수히 널려있는 가야와 신라의 고분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1917년 총독부 고적조사위원이었던 이마시니라는 일본인 조사보고서에서 약 1천기 이상의 고분이 완전히 도굴되었으며, 고분이 도굴로 인해 황폐된 참상은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고 썼다. 그는 또 다른 증언에는 '분노를 금할 수 없는 고분 도굴범은 조선인 중엔 없으며, 모두가 도의를 상실한 일본인의 소행'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부분이 있다. 이마시니는 서울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가야유물이 일본인에게 팔려가는 것을 보고 메모를 작성했는데, 그 목록에는 순금귀고리, 순금팔찌, 곡옥, 관옥, 유리옥, 기타 옥류, 검두, 무기류, 마형대구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 곡옥과 순금팔찌, 관옥 등은 교토대학으로 들어갔다.
       이같은 무법 도굴이 성행하자 총독부는 뒤늦게 아직 성한 고분 100여기를 서둘러 발굴했다. 이 때 부장품은 마차 20대, 화차 2칸 분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일본인들이 파헤친 수천 기의 고분에서는 출토 유물이 과연 얼마나 쏟아져 나왔는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 도굴품들은 즉시 전국 각지와 일본인 수집가의 수중으로 사라진 것이다. 순금귀고리의 경우만 적은 기록에 의하면 학술적 발굴조사를 거친 것만해도 70여쌍에 이른다니, 도굴된 수는 대단히 많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청자상감유죽연로원앙문정병(국보 제66호)


     영국인 개스비가 일본인에게 샀던 것을 간송이 되사온 국보

        1914년 전후로 일본 도쿄에 변호사로 정착한 개스비라는 영국인은 고려자기에 대단한 매력을 느꼈던 인물이었다. 그는 어떤 값을 치루고라도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손에 넣는 수집에 있어서 정열적인 사나이었다. 그는 고려자기에 있어서 대단히 높은 안목을 지닌 수집가였던 동시에 문화재 애호가이기도 했다. 그가 일본인들로부터 사들인 고려자기에는 고려시대의 걸작인 '청자삼감유죽연로원앙문정병(국보 제66호)'과 '백자박산향로(보물 제238호)'가 들어 있었다. 그와 일본인의 다른 점은 개스비는 문화를 즐기고 애호했던 문화재 수집가였던 반면,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훌륭한 유물을 부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불법반출, 도출, 강탈 등의 온갖 수법을 동원하여 유통시켰다는 점이다.
       개스비가 일본과 서울의 일본인들에게서 샀던 고려자기들은 1937년 그가 일본을 떠나면서 간송 전형필이 되사들였다. '개스비 컬렉션'으로 불리는 그의 수집품들은 방대한 수량의 최우수 작품으로 이름이 높았고, 전형필은 일본에 있는 골동품 상인을 통해 그가 고려자기를 판다는 정보가 있으면 지체없이 연락하라고 미리 일러두었다. 개스비 컬렉션이 일본인이나 다른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개스비는 일본 안의 정치적인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머지 않아 패망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는 자신의 수집품을 모두 처분하고 본국인 영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전형필은 곧바로 일본으로 달려가 개스비의 고려자기를 어마마한 거액을 주고 모두 되사들였다.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면 십 몇억에 해당하는 돈이라고 한다. 개스비는 훌륭한 한국의 유물이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의 손에 다시 돌아가는 것을 환영했다고 한다. 전형필이 되사들인 개스비 컬렉션에는 국보 '창자상감유죽연로원앙문정병'과 보물 '백자박산향로' 뿐만 아니라 '청자기린유개향로'(국보 제65호), '청자오리청수적'(국보 제74호),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보물 제241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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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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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사 석조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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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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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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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상감유죽연로
원앙문정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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