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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반환은 역사의 자존심

문화재 반환은 역사의 자존심

문화 민족주의와 문화 국제주의

역사적 관점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방대하게 문화재가 불법 유출된 경우는 식민지화와 전쟁을 통한 약소국의 문화재 약탈이다. 특히 서구 유럽 열강을 비롯한 많은 제국주의 국가들은 민족우월주의나 문화우월주의 등을 주장하면서,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영토 점령이나 경제 약탈을,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식민지 문화나 점령 국가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미명 아래 공적 기구를 통해 본국으로 방대한 양의 문화재를 조직적으로 유출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일제는 교활하게 이른바 문화정책으로 식민 지배 개념을 전환, 1933년 《조선고적도보》 전 15권을 발행하고,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공표했다. 표면상으로는 문화재 보호시책을 표방하는 듯하였으나, 실상은 문화재 약탈을 위한 수단으로써 우리의 문화재를 조사·발굴해 일본으로 강제 이송하기 위한 것이다. 그 중에는 우리 선조들의 묘를 파헤쳐서까지 고려청자를 훔쳐가는가 하면, 아예 석탑이나 ‘자선당’ 같은 궁궐 건축의 일부를 송두리째 옮겨가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문화재 반환을 둘러싼 제 이론은 ‘문화유산이 풍부한 나라’와 ‘문화유산이 빈곤한 나라’의 양분법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이는 정치적으로 유사한 상황을 경험한 나라들을 두 범주로 나누어 정리하기 위한 것인데, 예를 들어 이집트·그리스·한국·멕시코 등은 문화유산이 풍부하나 식민 지배나 이와 유사한 정치 구조를 경험한 적이 있는 나라들이고, 반면 독일·일본·영국·프랑스 등은 침략 국가들로서 실상 문화가 빈곤한 나라는 아니나 상대적 빈곤감이나 정복욕으로 인해 끊임없이 그들의 ‘문화 창고’를 채우려 했던 나라들이다. 전자는 ‘문화민족주의’적 견해에 바탕을 둔 국가들로서 약탈당한 문화재를 반환받으려 하고 있고, 후자는 ‘문화국제주의’에 근거를 둔 국가들로서 약탈한 문화재의 취득 방법과 소유권에 대한 상황적 적법성과 문화재의 인류 공동 재산으로서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양자의 시각차는 다음 네 가지 이론들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보존론 대 구제론. 문화국제주의 국가들은 문화재 반환을 거부하고 계속 소유하려는 주된 이유로서 제3세계 국가들의 과학적 보존 시설의 빈곤을 들고 있다. 그러나 문화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나라들은 어쨌거나 자국의 문화는 그 나라에서 보존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과학적 보존 시설은 UNESCO나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등 국제 기구의 기금과 도움을 받아 점차 구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대표적 사례로서 비록 아직까지 반환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영국과의 반환 협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그리스의 엘진 마블(Elgin Marbles)을 들 수 있다.

그리스의 최우선 문화 정책은 강대국에게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는 일. 그리스의 문화적 피해를 일컬어 미술사가들이 “그리스는 2천 년 동안 약탈당해 왔다.”고 표현할 정도다. 그리스는 엘진 마블을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이 끝나면 바로 자국으로 반환해줄 것을 주장했지만 영국에서는 이 제안을 일거에 거절했다. 그 후 1982년 그리스 정부는 외교 창구를 통해 엘진 마블의 공식적 반환 요청을 거론했고, 영국 정부에서도 이에 관한 위원회가 만들어져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게 됐다.

영국은 이를 반환해 주지 않는 이유로서 문화재 구제론을 들고 있다. 첫째, 그리스의 악명 높은 스모그로 인해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이 손상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엘진 마블은 단지 그리스의 문화유산이 아닌 세계의 문화유산이므로 당연히 과학적 보존 시설이 완비된 문화 선진국에서 보존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이러한 구제론의 선행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대응 방안으로서 1989년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설립에 착수했다.

사실 이 반환에 대해서 영국 내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작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영국 정부는 대영박물관에 보관 중인 엘진 마블을 그리스에 반환할 생각이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던 중 영국과 그리스의 불꽃 튀는 반환 협상에 기름을 붓는 일이 발생했다. 1930년대 대영박물관의 한 큐레이터가 2천5백 년 역사를 지닌 엘진 마블을 깨끗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금속성 도구를 사용, 치명적 손상을 입혔으며 다시 색상을 복구하기 위해 갈색 왁스로 광택을 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런던 주재 그리스 대사는 대영박물관의 무책임하고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비난하면서 엘진 마블이 반환돼야 한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출했고, 영국 정부는 이 보도가 사실 과장된 것이라고 발뺌했다. 그러나 문화재 구제론을 표방하며 과학적 보존 시설을 자랑하던 대영박물관은 국내외 관련 기관으로부터 질책의 대상이 되었고, 이로 인해 그리스와의 반환 협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반환을 둘러싼 시각 차이

둘째, 현 문화재 보유국은 다른 소장 문화재와 동등하게 외국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법리적 소유권의 합법성을 강조하는 반면, 제3세계 국가들은 문화재의 이동 경위가 불법 유출임을 강조하며, 소유권이 불법인 경우는 원산국으로 당연히 반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재는 문화라는 요소와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재화라는 요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지만, 문화재 보호법상의 문화재라 함은 그 ‘경제적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예술적 가치’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문화재 소유권은 문화재를 소유할 권리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문화재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영구 보존하고, 그것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국가의 문화 발전과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권리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재는 개인의 소유보다는 국민 또는 민족 모두의 공유 재산이어야 하며, 문화재는 그 문화의 창조자인 원소유국에 소재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거를 제공한다. 더욱이 이동 경위가 적법하지 않으면, 이에 대한 소유권은 법적으로 무효다.

문화재는 일단 원위치나 원소유자로부터 그 위치를 옮기게 되면, 물리적인 손상뿐 아니라 여기에 깃든 정신 및 역사적 사실에 대한 손상을 입게 된다. 문화재는 생성된 배경과 역사를 감안할 때만 국가 민족 유산으로서의 성격이 되살아나며, 그것이 원래 있었던 환경에서 보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 문화민족주의적 견해인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를 되찾으려는 국가는 현실적으로 문화재가 어떤 불법적 경로를 통해 반출되었는지 입증할 수 있는 문서와 이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예컨대 과거에 무지몽매한 상인이 국보급 문화재를 쌀 한 가마니에 팔았을 경우, 관련 문서가 없는 한 상거래의 적법성을 논하기는 애매하다. 반환 대상이 되는 문화재들은 일반적으로 불법 유출된 문화재가 거의 대부분이지만, 사실 외관상 합법적 경위로 유출된 문화재라 할지라도 같은 범주에 포함돼야 한다. 엘진 마블의 경우에도 주 터키 영국 대사였던 엘진이 1810년 당시 그리스 점령 터키 당국과의 적법 절차를 걸쳐 이를 본국으로 이송했고, 1816년 6월 7일 공식적으로 영국의 문화재로 등록했다.

소유권과 이동 경위의 적법성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경우, 일반적으로 소송을 제기해 사법재판소의 판결에 의존한다. 국내외 두 가지 예만 살펴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고위급 관계자들은 문화재를 강제로 한곳에 모았을 뿐만 아니라, 제3국으로 판매까지 해 전후 원소유자들이 자신의 소유물을 찾기 힘들게 됐다. 1932년 멘젤은 벨기에에서 샤갈의 그림 한 점을 3천8백 프랑에 구입했으나 나치 독일의 침략으로 그 그림을 놔두고 피신했는데, 6년 후 그림이 독일 소유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편 55년 펄스는 이 그림을 파리의 한 화랑에서 2천8백 달러를 주고 구입했다가 몇 년 후 리스트에게 4천 달러를 받고 되팔았다. 62년 멘젤은 이 그림이 리스트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뉴욕재판소는 그림의 이동 경위와 소유권의 적법성에 근거를 두고 리스트에게 원소유권자인 멘젤에게 그림을 돌려주거나 현재 시세인 2만2천5백 달러를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리스트는 그림을 멘젤에게 반환했고, 펄스로부터 2만2천5백 달러와 소송에 소요된 경비 일체를 배상받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천4백 년의 역사를 지닌 고구려 <반가사유상>이 1991년 일본으로부터 원소유지 평양으로 반환, 한국사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적이 있다. 해방 당시 한 일본인 악당에 의해 일본으로 불법 약탈됐으나, 50년 후 재일교포 오일환 씨가 구입, 자발적으로 평양으로 반환된 것이다. 이 불상은 1931년 일제강점기 때 고구려 궁터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높이가 32센티미터다. 뒷면에는 고구려 수도승 연이 생명의 존재를 기념하기 위해 1천 개의 조상을 만들 것을 지시해 부병이라는 수도승이 539년에 제작한 것이라는 내용의 비문이 46개의 한자로 명시되어 있어 서지학 발전에도 큰 역할을 담당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세 번째 이론적 근거로서 미학적·역사적 완전성을 들 수 있다. 약탈 침략국들은 그들의 대형 박물관이 많은 관람객이 찾는 중요한 문화 기관이기 때문에 해당 문화재의 역사성·미술성을 세계적으로 널리 홍보하고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1810년 이집트를 침략한 나폴레옹은 그 나라를 유럽 고고학자들에게 개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집트문명사 연구에 한 획을 긋게 했다는 것이다. 문화재는 어느 한 민족이나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온 인류의 공공 소유물이라는 문화의 세계성을 강조하면서,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를 모두 원소유국으로 반환해 준다면, 그 박물관은 텅텅 비어 타문화에 대한 학술 활동과 문화 교류가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반면 문화민족주의적 입장에 있는 약소 국가들은 학술 연구의 기회는 원산국의 국민들에게 당연히 우선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외규장각 도서처럼 고문서가 희귀본·유일본, 특히 역사적·문화적 중요성을 지녔을 경우엔 우선적으로 자국의 학술 발전을 위해 반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엘진 마블의 경우도 그리스는 “머리는 대영박물관에, 가슴은 아테네에 있는 조각상”이라고 비유하며 그 반환을 강조하고 있다.

미학적 완전함과 역사적·문화적 중요성에 주안점을 두고 반환된 사례로서 1996년 11월 29일 삼성문화재단이 기증받는 형식으로 일본에서 반환받은 자선당을 들 수 있다. 말이 자선당이지 사실 돌아온 것은 1백10톤짜리 유구석 2백88개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과연 경북궁의 일부인 우리의 자선당은 누구의 손에 의해 어떤 목적과 경로로 일본으로 약탈됐고, 그나마 왜 잔여 유구만 되돌아온 것일까?

1430년에 세워진 자선당은 경복궁의 여러 전각 중에서도 역사가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동궁의 내전이자 침전이었고, 아울러 학문 수양을 하던 서재와 같은 곳이었다. 정면 7칸·측면 4칸의 39평짜리 단아한 이 목조 건물은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방을 두었고, 그 주위를 툇마루와 협실로 둘러싸는 모습이다. 당시 일제 총독 데라우치가 경복궁 내에 침략의 본산 조선총독부를 세우기로 한 후, 자선당은 1915년 이른바 시정 5주년 기념 물산공진회라는 만국박람회 장소로 사용되면서 한 칸에 15~27원에 거래되었다. 당시 자선당이 강제 철거한 그들의 이유는 “박람회를 개최하는데 궁전의 누각들이 거추장스러워서”였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1910년의 경복궁 파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울분에 차 기록했다.

“경복궁을 헐어 매도했다. 경복궁은 모두 4천여 칸으로 매 칸의 가격은 15원에서 27원이었다. 이 때 한국인과 일본인의 원매자는 80여 명이었으며, 3분의 1은 일본인 기타이에게 매도하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 곳에 장차 대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데라우치 마사다케나 민족 원흉 이토 히로부미 등과 가까웠던 오쿠라 기하치로라는 일본인은 경북궁·창덕궁·덕수궁 등의 궁궐 건축과 유물에 대해 조사를 시작, 1876년부터 1917년까지 한국의 문화재를 약탈했다. 자선당도 관부연락선을 통해 1916년 도쿄 자신의 집으로 이송, 이듬해 복원한 후 ‘조선관’이라는 현판을 달아 사설미술관 형태로 개관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자선당의 지상 목조 건물은 소실됐다. 단지 기단·계단·주초 등은 손상되지 않고 표면에만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았을 뿐이다. 현재 자선당은 강영전·교태전 등과 함께 경복궁 정비 사업으로 복원 중이다.

 이보아(예술행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월간미술 1998.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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