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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분쟁 처리법상 결정적 기일의 법리와 묵인의 문제

독도문제와 관련해서 우리가 고려할 문제는 ‘결정적 기일’(critical date)에 관한 것이다. 영토분쟁에서 ‘결정적 기일’이란, 그 시점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국제법(특히 증거법)상의 제도를 말한다. 영유권 분쟁에서는 당사국이 권원 보강을 위해 각종 시설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인데, 국제재판에서는 일정한 시점을 정해 그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증거 능력을 인정치 않게 돼 있다. 이 경우, 정해진 일정한 시점이 바로 ‘결정적 기일’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이 ‘독도문제’내지 ‘독도분쟁’에 있어서 ‘결정적 기일’로 결정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하겠다.  

그런데 최근의 영토분쟁 판례에서 ‘결정적 기일’의 절대성이 약화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리기탄 및 시파단 영유권분쟁(Case Concerning Sovereignty Over Pulau Ligitan and Pulau Sipadan (Indonesia/Malaysa), 17, December, 2002, ICJ General List, No. 102.)에서 ICJ는 우선 양국간의 대륙붕 경계획정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진 1969년에 이 분쟁이 결정화(crystallized)되었다고 하면서, 어떠한 행위가 이전의 행위에 의한 정상적인 계속이 아니거나, 또는 분쟁당사자가 자신의 법적 지위를 개선할 목적으로 취한 행위의 경우, 양국간 분쟁이 발생한 일자 이후에 행해진 행위들은 고려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ICJ는 그 유효성을 검토함에 있어서 1969년 이전의 기간에 행해진 조치에 대해 ‘주로’(primarily) 분석할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1969년 이후의 행위들을 완전히 배척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밖에 몇몇 판결에서는 아예 결정적 기일을 설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에리트리아와 예멘간의 분쟁은 그 대표적 예이다. 즉 이 사건에서 ‘상설중재재판소’(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 PCA)는 분쟁당사국이 결정적 기일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여, 결정적 기일에 무관하게 재판부에 제출된 모든 증거를 검토하였다. 이에 PCA는 역사적 권원 및 승계에 따른 양국의 영토적 권원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최근까지 이루어진 양국의 행위를 상호 비교하여 그 상대적 중요성에 따라 영유권 귀속을 결정하였다.

 

또한 아르헨티나-칠레와 칠레간의 ‘비글해협’(Beagle Channel) 사건에서도 관할 중재재판소는 “본 재판소는 결정적 기일의 개념이 이 소송에서 거의 무의미하다고 판단하였으며, 증거와 관련된 행위의 날짜에 상관없이 모든 제시된 증거를 검토하였다”고 설시한 바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정부는 ‘결정적 기일’을 내부적으로 정해 놓고, 그 이후의 현상(現狀)강화적 조치를 취하는 데 조심스러워 할 필요는 없게 된다. 가급적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와 그 강화를 뒷받침하는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많이 취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관련해서 2004년 독도 영유권문제의 근원적 해결이라는 명분으로 국회에서 의원 입법을 통해 ‘독도개발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주요 내용 은 동도와 서도 사이의 바다를 메워 경작지를 조성하고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정을 개발하는 등 섬을 유인도화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런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당시 ‘독도개발특별법’ 제정은 일본 정부와 국민들을 자극, 반발을 불러오게 된다고 하는 이유에서 정부는 이 법의 입법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일부 학자는 ‘결정적 기일’의 법리를 들어 동법이 독도의 영유권 강화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일본의 외교적 항의를 초래하는 조치는 최소화하되, 조용하게(?) 실효적 지배를 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묵인’을 가져오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문제 축소’ 혹은 ‘무시/무대응’ 전략과 상통하는 발상이다.

 

물론 일본 정부의 묵인은 우리의 독도 영유권 강화, 일본의 영유권 포기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묵인 혹은 이의제기 기회의 불이용으로 영유권을 상실한 사례가 있다. 1933년 PCIJ에 의해 재판이 행해진 동부그리인란드의 법적 지위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노르웨이의 외무장관 Ihlen이 1919년 그리인란드 전체에 대한 덴마크의 영유권문제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구두약속을 한 것을 지적하는 외에도 이후 노르웨이가 분쟁지 전역에 대한 덴마크의 여러 조치를 사실상 ‘묵시적으로 인정’(묵인)했었다는 점을 들어 동부그리인란드가 덴마크의 영토라고 판시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우리 정부의 (순진한?) 기대대로 일본이 우리측의 독도 영유권이나 실효적 지배를 사실상 묵인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제로이다. 일본이 100년전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를 편입할 때부터 그들의 침략적 근성이 잘 드러난 바 있다. 반세기 전 한국전쟁 기간과 정전 직후 우리 영토의 막내인 독도를 침탈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상기하면 답은 자명해진다. 실제로 일본은 기회가 있으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통해 우리의 실효적 지배에 시비를 걸어 왔다. 그런 점에서 묵인에 의지하는 소극적인 외교는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반면에 그간 독도와 관련해서 우리의 무시 내지 축소전략에 대해, 일본측의 묵인에 의한 우리의 독도 영유권 강화·확대를 가져왔다기보다는 그 반대로 일본의 새로운 영유권시비 주장과 조치를 불러왔으며, 일본에 의한 독도 관할권 침탈·훼손·잠식 기도를 초래하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1999년의 ‘신 한·일어업협정’에서 독도주변에 중간수역을 설치한 것이라든가, 일본의 독도에 대한 다케시마 지도 작성 및 국제사회에의 광범위한 배포, 온라인상이나 지도 등에서의 다케시마/독도 병기, 니혼시도가이 등 일본 극우단체의 독도상륙기도 등은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오늘날 독도에 대한 우리측(정부와 민간)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추적하고 있는 일본이 행여나 묵인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하겠다. 그 반대로 우리측의 관할권을 보다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더욱 올바른 접근이라고 생각된다.


- 제성호교수(중앙대 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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