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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25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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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재가뒤, 일측 보안상 미 용산기지에서 전화로 보고

용산 미군기지에서 전화로 박 대통령 '독도밀약' 재가 소식 고노에 알렸다"

▶전 <요미우리신문>
서울특파원 시마모토 겐로(嶋元謙郞ㆍ80) 
‘독도밀약'의 당사자 7명 중 일본 측의 유일한 생존자인 전 <요미우리신문> 서울특파원 시마모토 겐로(嶋元謙郞ㆍ80)와는 지난해 11월22일의 인터뷰를 포함해 모두 3회에 걸쳐 약 5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도밀약뿐 아니라 본인의 한국생활 등 많은 사연을 들었다. 1961년 3월, 일본 기자로는 최초로 한국특파원으로 서울에 온 그에게 한국은 80세가 된 지금까지 그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판사로 한국에서 근무한 장인 후지무라 에이(藤村英)는 유명한 일화의 소유자다. 후라무라는 조선총독부 총독 미나미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데리고 있던 조진만을 최초로 일본 판사로 만들었는데, 그는 나중에 한국의 3대 대법원장이 됐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중 중요 대목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독도밀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문건이 이 세상에 있었습니까? 있었다면 어디에 있습니까?

“있습니다. 1965년 1월, 일본에서 당시 부총리에 해당하던 고노 이치로가 만든 문건을 그의 비서 우노 의원이 서울로 가져가 정일권 총리에게 전달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독도밀약'의 실체입니다.”

-당시 시마모토 선생은 그것이 건네지던 자리에 있었습니까? 있었다면 그 연유는 무엇이고 장소는 어디였습니까?

“나는 김종필 씨가 외유를 떠나고 정일권 씨가 총리가 된 직후인 1964년 6월 초 정일권 총리를 만나 고노를 한일 정치협상의 파트너로 삼을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옮겨지게 돼 자연히 서울에서 모든 것을 돕게 됐습니다. 문건이 건네진 장소는 성북동에 있던 박건석(당시 범양상선 회장) 씨의 자택이었습니다. 그의 자택에는 홈바가 있었는데, 거기서 당시 독도밀약에 관여하던 사람들이 만났지요. 박건석 씨의 자택을 이용한 것은 아마 그가 정일권 씨와 동향 출신인지 하여 북한에서 같이 피난온 처지로 막역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노 의원이 정일권 총리에게 고노 건설장관의 메모를 전할 때 누가 있었는지요?

“우노 의원, 정일권 총리, 김종락 씨, 당시 외무차관 문덕주 씨, 그리고 나 다섯 사람이었군요.”

-어떤 형태의 문건이었습니까? 그리고 어떠한 내용이 들어있었는지요?

“A4 용지에 일본어로 타자를 친 종이 4장 정도로 기억합니다. 우선 한 장에는 독도문제를 ‘앞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일단 해결로 본다'는 내용이 쓰였고, 또 한 장에는 4개 조항이 쓰여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한일기본조약의 2조에 관한 것으로, 당시 한일합방의 실효 시점에 대해 한일이 대립했는데 이를 ‘이미'라는 단 한마디의 부사로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놀라며 ‘고노 상이 고수'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고노 건설장관이 김종락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언제이고 누가 안내했습니까?

“최초로 만난 것은 1964년 여름, 8월 말께로 기억합니다. 고노의 사무실로 안내한 것은 고노 파벌의 호프라고 불리던 나카소네 의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고노의 대리인 우노, 정일권 총리의 대리인 김종락 씨가 한국과 일본을 왕복한 것이군요?

“그렇지요. 당시 김종락 씨는 빈번히 서울과 도쿄를 오갔고, 우노 의원은 서너 번 서울에 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독도밀약의 형성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무엇입니까?

“글쎄요. 그때 나는 서울에서 자동차를 타고 다녔는데,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이던 박종규 씨가 내게 ‘빨리빨리' 다니라고 8282라는 자동차 넘버를 준 것이 기억에 남는군요. 그리고 고노 장관의 제의가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이를 급히 알리기 위해 1월13일 우노 의원과 함께 용산 미군 정보국에 가서 그 사실을 전화로 알리고, 고노 장관은 그 전화를 받자마자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소식을 기다리던 사토 총리에게 전화를 하는 등 긴박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노대니얼(정치학 박사ㆍ월간중앙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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