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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7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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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뜻'으로 '독도밀약'에 나섰고, 극비 유지 위해 문건 불태웠다

'영감의 뜻'으로 '독도밀약'에 나섰고, 극비 유지 위해 문건 불태웠다"

▶김종락 당시 한일은행 전무 
‘독도밀약'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전 필자는 김종락이라는 인물을 알지 못했다. 그가 3공화국 이후 한국정치의 산 증인인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친형이라는 사실은 필자에게 더욱 충격이었다. 우리 현대사 자료를 뒤지면서 김종락이라는 이름 석 자가 내비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연락할 수 있었던 것은 전 <요미우리신문> 서울특파원 시마모토 겐로의 소개였다.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모자를 쓰고 나타난 88세의 김종락은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2007년 1월 서울에서의 면담, 그리고 3월 일본에서 서울로 한 국제전화를 통한 인터뷰의 주요 부분을 정리한다.

-한일 국교정상화는 박정희 정권의 최대 과제였습니다. 당시 금융계에 종사하던 김 선생님께서 고노 이치로 일본 건설장관과 중차대한 협상을 맡게 된 연유는 무엇입니까?

“당시 일본 정치가들이 가장 신뢰하던 JP와 형제로서 ‘자의 반, 타의 반' 외유 중이던 JP의 틀림없는 대리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영감(박정희)'의 신뢰가 있었으니까…. 나는 일본에서 성장하고 일본 여자와 결혼한 사람이어서 일본인들의 생각을 잘 알아요. 또한 ‘혁명동지'이니 영감으로서는 내가 JP를 대신해 일본 정치가들과 협상할 수 있는 적격이라고 보았을 거야.”

-1964년 당시 차기 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되던 고노는 한일협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지녔던 것으로 아는데, 그를 어떻게 한일회담의 주역이 되도록 설득했습니까?

“당시 자민당에서는 여덟 개의 파벌이 각축했는데, 당인파의 거두이던 오노가 쓰러진 후 고노가 실력가로 부상하고 있었지. 그런데 한일협상을 지지하던 일본의 정치가들이 그를 설득할 수 없었어. 따라서 한국에서 그를 설득해 달라는 거야. 결국 이 임무를 내가 맡게 되었는데, 만나자마자 자유진영의 선봉이 되지 못한다면 친소주의자라는 라벨을 떼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총리가 되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지. 이 말이 먹혀들어간 것 같아. 지금 돌이켜보면 어디서 그러한 용기가 나왔는지 나 자신도 궁금해.”

-당시 고노의 인상은 어떠했습니까?

“말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 가장 큰 인상이었지. 그리고 배포가 큰 사람이었고…. 한 번 결정한 것은 밀고 나가는 결단력과 행동력이 있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그와는 식사도 한 번 같이하지 않았어요. 그는 술을 전혀 안 마시는 정치가로 유명했고, 또 총리가 되기 위해 매사에 주의가 깊었던 것 같아.”

-독도문제가 가장 큰 난관이었는데, 이를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 일단 해결로 간주한다'는 아이디어는 누구에게서 나온 것입니까?

“내가 낸 것이야. 고노와 거의 두 달을 협상해 웬만한 것은 다 정했는데 막판에 독도문제를 들고 나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다 치우고 서울로 돌아간다고 겁을 주었지. 그랬더니 우노 의원이 한 이틀만 참으라고 막았어요. 그래서 이틀 후 다시 만나 내가 그 안을 제시하자 그가 명안이라고 하더군.”

-당시 독도문제 외에 가장 중요한 안건은 무엇이었습니까?

“사실 당시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언명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내는 것이었지. 고노와의 협상을 통해 그 일을 해냈어. 이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당시는 생각했지. 당시 일본 사회당은 거대정당이었고, 그들은 한일협상을 전면적으로 반대했어요.”

-독도문제를 ‘미해결로써 해결한다'는 내용이 든 고노의 메모는 어떻게 됐습니까?

“내가 시끄러운 문제가 될 것 같아 태워 버렸어. 당시 고노와의 협상을 적어 놓은 나의 기록도 모두 태웠어요. 서울과 도쿄(東京)를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쉬지 않고 정서한 기록들도 있는데, 안타까워요.”

-그게 언제였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전두환 씨가 정국을 주도하기 시작한 때였는데, 정확한 일자는 기억이 안 나. 고노와의 비밀협상은 세상이 모르는 일이었고, 영원히 비밀로 하기로 한 것이 당시의 약속이었어. 이 일을 김종락이 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도 모르는 것으로 돼 있었으니까.”

-한국에서는 끝까지 아무도 몰랐습니까?

“웬걸. 역시 당시에도 일부 알게 되는 사람이 있었지. 내각 수반이었던 김현철 씨,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 씨 등은 알고 있었어. 외무장관ㆍ주일대사 등에게도 철저히 비밀로 했는데,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이동원 외무장관, 김동조 주일대사, 차균희 농림장관 등의 반발이 대단했지. 그러나 이는 모두 ‘영감의 뜻'에 따라 한 것이고, 그래서 한 번은 대한항공 조중훈 사장 집으로 모두 불러 정일권 총리가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도 했어요.”

-일본에서는 어땠습니까?

“다른 것은 모르지만 협상 상대였던 고노는 당시 총리이던 사토에게 모두 보고하고 협의한 것으로 알아요. 고노와 사토는 최대의 정적이었지만, 사토 총리는 고노를 자민당의 사실상의 부총재로 깍듯이 대우했고, 서로 중대사를 논의하는 사이였어요. 이 협상이 끝나고 1965년 봄 도쿄에 갔는데 사토 총리가 나를 식사에 초대하더니 무릎을 꿇고 일본식으로 인사하며 ‘고노를 통해 다 들었습니다' 하면서 감사를 표시하더군요.”

뱅커로서 정권의 명운이 달린 비밀협상을 해낸 김종락 씨는 수 명의 당사자 외에는 영원히 비밀로 부치기로 했던 약속이 새로이 대두하는 ‘새카만 후배' 전두환 세력에 의해 세상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했다. 따라서 그 비밀을 지키는 길은 근거를 모두 태워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결심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처럼 독도문제를 ‘미해결의 해결'로 하자던 고노와 정일권 사이의 약속은 ‘제창'이 아니라 ‘극비'였다. 그 비밀을 ‘한ㆍ일 우정의 해'라던 2005년 김종필 씨가 살짝 공개하려던 것이 불발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 42년이 지난 오늘 햇볕을 보게 되는 것이다.

노대니얼(정치학 박사ㆍ월간중앙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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