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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네현 ‘다케시마의 날’ 제정 미-일 강화조약에 ‘근거’ 없어

[역사로 보는 한주]시마네현 ‘다케시마의 날’ 제정 미-일 강화조약에 ‘근거’ 없어 

일본이 독도에 ‘다케시마(죽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1905년이었다. 그해 1월28일 메이지 정부는 각의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라 이름붙여 시마네현 관할지로 삼았고, 시마네현은 2월22일 그 사실을 고시했다.

2005년 3월16일 시마네현 의회는 고시 100돌을 맞아 그날(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다는 조례를 제정했다. 올해 2월22일 시마네현은 다케시마의 날 공식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 주장하는 근거로 들먹이는 또다른 하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그렇게 정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다케시마 영유권을 주장하기 1년 전인 1904년 2월23일 ‘한일의정서’가 조인됐는데, 외부대신 서리 이지용과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했다. 이지용은 다음해 11월17일 내부대신 자격으로 제2차 한일협약(을사(보호)조약) 체결에도 가담해 이완용 등과 더불어 ‘을사 5적’이 된 자다. 제1차 한일협약은 1904년 8월22일 체결됐다. 한일의정서, 1차·2차 협약은 그해 2월8일 일본군이 인천 앞바다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함으로써 시작된 러-일전쟁에서 조선을 이용하기 위해 강제한 사실상의 일방적 조처였다. 그리하여 조선은 외교 재정 등의 자율권을 완전히 빼앗겨 실질적인 식민지상태가 됐다.

국제법상의 ‘무주지(사람이 살지 않는 땅) 선점’ 원칙에 따라 독도는 자기땅임을 먼저 선언한 자국 것이라는 일본의 일관된 논리의 출발점이 여기다. 수천만이 사는 유주지 조선땅 전체를 들어먹을 판에 무주지 선점 선언은 예행연습이었을까. 이런 조선 식민화 과정을 비밀리에 보장해준 나라가 영국이요 미국이었으며, 1905년 7월29일 일본 외상 가쓰라 다로와 미국 국무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주고 받은 ‘가쓰라-태프트 밀약(각서)’은 제국주의국가들끼리 팔고 산 노예문서의 한 전형이었다.

미국은 그뒤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일본 강화조약’이라는 또 한차례의 화려한 쇼를 벌인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8일에 체결되고 다음해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초안에 애초 연합국 일원이자 전승국으로 명기됐던 한국은, 100여만 재일동포를 공산주의자로 몰면서 그들을 전승국민으로 대우하게 되면 일본이 망한다고 강변한 요시다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와 일본 부흥을 아시아전략의 핵으로 삼았던 존 포스터 덜레스 미 국무부 고문의 담합으로 명단에서 빠져버렸다. 그 요시다의 외손자가 지금 일본 외상 아소 다로다. 최대 피해국인 남북한과 중국은 초청받지도 못했고 소련 등도 체결을 거부한 가운데 패전국 일본과 미국이 미-일 안보조약이라는 동맹관계를 동시에 따로 맺은 그들만의 ‘강화조약’. 그 조약 어디에 ‘독도는 일본땅’이 명기돼 있다는 건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2006. 3. 10.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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