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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8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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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서양인의 독도발견

19세기 서양인의 독도발견

도는 그 위치가 한국과 일본 사이 한국해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고, 그 근해는 한난류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안개가 자주 발생한다. 19세기 중반 서양의 포경선이나 함정들은 항로상에 존재하는 위험한 바위섬을 그들의 해도와 수로지에 기록하게 된다. 이로써 독도는 서양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를 맞아 우리나라의 연안에도 서양의 함정 혹은 포경선 등이 출몰하였다. 독도 역시 이 시기에 서양배에 의해 측량되었고, 수로지(水路誌)나 해도(海圖)에 기록되어 서양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현재 기록상 독도를 최초로 발견한 서양배는 미국의 포경선 체로키(Cherokee)호다. 즉, 체로키호 선장 제이콥 L.클리브랜드의 항해일지 4월 16일자에 의하면 ‘終盤에 two small islands’를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두 개의 작은 섬’ 그것은 바로 독도이다. 당시 포경선들이 사용하고 있던 해도에는 독도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체로키호는 4월 17일 오전 4시에서 12시 사이에 독도를 발견하였다. 이는 독도발견에 관해 현재 밝혀진 자료 중 서양최초의 기록이 된다. (이하 미국포경선의 항해일지에 대해서는 이승진,「일본의『水路誌』와 미국포경선의 航海日誌 검토」(『鬱陵文化』제5호, 울릉문화원, 2000)를 참조)

1849년 1월 27일에는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꼬르(Liancourt)가 울릉도가 바라보이는 해상에서 독도를 발견하였다. 리앙꼬르는 본국으로 돌아가 1850년 4월 19일 항해보고서를 제출했다. 1851년 독도는 발견한 배의 이름을 따 ‘리앙꼬르岩’이라 이름 붙여져 프랑스 해군의 수로지와 해도에 실리게 되었다. ‘리앙꼬르岩’이라는 이름은 그 후 서양세계에서 가장 널리, 또 가장 오래 기록되었다.

이후 1854년에는 푸쟈친제독이 이끄는 러시아 극동원정대가 한반도의 동쪽해안과 일본열도의 서쪽해안을 측량하는 과정에서 독도를 발견하였다. 러시아는 16세기 후반부터 점차 시베리아로 진출하여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베링해협과 북태평양까지 진출하였다. 러시아로서는 당시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일본서해안과 조선동해안에 대한 보다 정확한 지리적 정보와 협력국가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극동원정대가 일본과의 외교교섭에 실패하고 러시아로 돌아가던 1854년 4월 6일(러시아 구력) 원정대 소속 함정 올리부차호가 독도를 발견하게 되었고, 함정의 이름을 따 독도의 서도는 올리부차, 동도는 올리부차호가 흑해함대에 소속되어 있던 1846년까지의 함정의 첫 이름 메넬라이를 기념하여 ‘메넬라이’로 이름 붙여졌다. 독도에 관한 울리부차호의 탐사내용은 바스토크호의 울릉도 관측내용 및 팔라다호의 조선 동해안 측량내용과 함께 러시아 해군지(海軍誌) 1855년 1월 호에 실렸고, 1857년 러시아 해군성 수로국이 작성한 「조선동해안도」에 조선의 부속도서로서 표기되었다. 그리고, 1882년에는 「조선동해안도」의 수정판을 발간했는데, 여기에는 1860년에 독도의 위치에서 3.5마일(5.6㎞) 정북 방향, 5마일(8㎞) 북서쪽 10도 방향, 14마일(22.5㎞) 북서쪽 61도 방향에서 정밀하게 관측된 3개의 독도그림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1855년 4월에는 영국함정에 의해 독도가 발견되었다. 역시 발견한 함정의 이름을 따서 호넷(Hornet)으로 명명되어, 1856년 영국해군의 '수로잡지'에 실렸다. 그런데, 프랑스 해군이 '수로지' 1856년판을 통해 영국이 발견했다는 섬(호넷-독도)이 이미 프랑스 해군의 해도에 올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후 영국의 수로지와 해도에서도 독도는 리앙꼬르암(Liancourt Rocks)으로 기록되었다.

한편, 위의 체로키호 이후에도 동해에는 미국 포경선에 의한 고래잡이가 계속 되었는데, 독도를 기록한 항해일지가 많이 발견된다.
1849년 3월 18일에는 윌리암 톰슨(William Thompson)호가 “울릉도 동남쪽 40마일쯤에 어떤 해도에도 없는 ‘3 Rocks’을 보았다”고 기록하였다. 바로, 세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독도를 보았던 것이다. 이는 조선 성종조에 독도를 三峰島로도 불렀던 우리의 기록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또한, 캠브리아(Cambria)호는 1849년 4월 28일에 울릉도를, 29일에는 海圖에 실려 있지 않은 ‘the small islands’를 보았다고 적고 있다. 더욱이, 이 일기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그림까지 그려두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최초로 알려져 있던 프랑스의 해군함정 콩스탄틴(Constantine)호가 1855년 11월 17일 그린 독도그림보다 6년여 앞서는 것이다.

그리고, 플로리다(Florida)호는 1857년 3월 27일 ‘Dagelet Rock(울릉岩)’을 보았다고 하며, 4월 3일에는 ‘울릉도’는 뒤쪽에 ‘울릉岩’은 앞쪽에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또 4월 7일에는 울릉도와 울릉岩의 중간쯤에 배가 있었는데, 모두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Dagelet Rock(울릉암)은 바로 독도를 가리킨다. 이 기록은 독도가 울릉도(Dagelet Island)의 생활권에 속한 울릉도의 子島 혹은 屬島임을 말해준다. 즉, 바다 가운데서 울릉도와 함께 조망되는 새로이 발견한 암석 독도를 Dagelet Rock이라 호칭함으로써, 플로리다호는 독도를 울릉도(Dagelet Island)의 屬島로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세력들은 동점하여 오고 있었다. 그리고, 식민지 경영 혹은 무역을 위해 현지의 정보를 열심히 수집했다. 그것은 가능한 정확한 것이어야 했다.

독도는 그 위치가 한국과 일본 사이 한국해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고, 그 근해는 한난류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안개가 자주 발생한다. 19세기 중반 서양의 포경선이나 함정들은 항로상에 존재하는 위험한 바위섬을 그들의 해도와 수로지에 기록하게 된다. 이로써 독도는 서양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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